정치인을 '성직자'로 만들지 마라!... 25년 선거전문가의 촌철
지금 우리 정치는 3김시대보다 훨씬 더 후퇴
[최보식의언론=박동원 논설위원(폴리컴 선거컨설팅 회사 대표)]
고 2때인 1983년. 박종환 감독의 청소년대표가 FIFA 청소년선수권 4강에 올랐다. 귀국 후 박 감독의 TV 인터뷰가 생생하다. 작전을 묻는 아나운서의 질문에 박감독은 5가지 전술을 칠판에 그려가며 설명했다.
고인이 된 분에게 실례가 될지 모르겠지만, 어린 내 눈에는 그건 전술이 아니었다. 상대의 전술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우리의 일방적 공격루트였을뿐. 그냥 어린 선수들을 몰아부쳐 어거지와 운으로 만든 4강이었다. 그 시절에는 그게 통했던 것 같다.
요즘 우리 정치를 보면 마치 81년 박종환 감독의 공격 일방 축구를 보는 느낌이다. 전략과 전술 없이 그저 자기들의 생각대로 무대포로 밀어부친다.
정치는 고도의 전술행위다. 아니 사회, 역사, 심리, 문화, 수사(修辭) 등등 모든 학문과 기제를 총동원하여 치루는 협상, 타이밍, 절제와 인내, 미래 가능성의 예술행위다.
독일을 만든 '철의 재상' 비스마르크는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이다'라 했다. 정치란 완벽의 기술이 아니라 가능성의 기술, 차선을 모색하는 기술이라 했다.
DJ도 "정치를 잘 해 모든 국민이 자유와 정의를 누리게 될 때 더 없이 아름다운 예술이 된다. 국민의 일부, 특정 세대만이 아닌 모든 국민에 기쁨을 주는 원대한 예술"이라 말했다.
예술의 본질은 인간 내면 깊숙이 숨겨져 있는 근원적 욕망을 끄집어내어 성찰케 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기교나 기예는 설득의 장치일 뿐 그 자체가 예술은 아니다. 놀라울 정도로 정교한 조각품을 보며 조각가의 처절한 고통을 교감한다. 아리도록 아름다운 선율을 듣고 작곡가의 번뇌를 느낀다. 대문호의 수려한 문장을 통해 인간의 본성을 공감한다.
소통, 대화, 타협은 마음에서 시작된다. 전체주의에 대항한 형식 민주주의의 오류를 겪고서야 정치와 민주주의가 욕망을 다루는 마음의 문제란것을 깨달았다. 종교나 유심론이 아니다. 선악의 동질성, 인간의 한계와 다양성에 대한 인정, 욕망과 부조리에 대한 서로의 이해가 선행되지 않고는 민주주의도 정치도 불가능하다.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과도한 욕망, 부조리와 타협없는 원리주의는 늘 세상을 망가트려왔다. 부조리 한점 없는 깨끗한 세상을 만들고자 금욕주의 신권정치를 펼친 피렌체 성직자 군주 사보나롤라는 시민들에 의해 화형 당했다. 손바닥 굳은 살 확인하며 먹물들 몰살한 크메르 루즈, 러시아 혁명, 공산주의 등 인간의 욕망을 거세하려던 모든 시도와 체제는 망했다.
세상의 고통과 부조리를 일거에 해결해줄 메시아를 바라는 대한민국 국민들은 과도하게 완벽한 정치인을 바란다. 정치인에 세비를 주지 마라, 국회의원 수 줄여라, 의전 없애라, 후원회 없애라... 등등 정치인들에게 성직자적 자세와 도덕성을 요구한다. 생각해보라. 그들도 우리와 같은 욕망을 가진 인간일 뿐이다. 다만 공적 사명감을 공인으로써 의무를 다할 뿐.
시대의 변화에 맞게 변해야 하는 건 맞지만 과도한 기준과 잣대로 재단하는 건 옳지 않다. 왜 3김 시대처럼 괜찮은 정치인들이 점점 줄어들고 사적 욕망에 충실한 이상한 정치인들만 나올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정치인에게 과도한 도덕주의와 자신도 지키지 못할 이중적 잣대를 들이대기 때문이다. 한 사회의 욕망과 습속은 정치인이라 해서 다르지 않다.
지금 우리 정치는 3김시대보다 훨씬 더 후퇴했다. 3김 성취 시대를 겪으면서 느낀 건, 그들은 서로 색깔과 지향은 달랐지만 서로를 섬멸하는 정치를 하지 않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존중 같은 게 있었다. 그들도 싸웠지만 타협의 통로는 늘 열어 놓았다. 카메라 앞에서 싸웠지만 뒤에선 투덜거리면서도 손 잡고 타협했다. 국민들도 정치인들에게 과도한 도덕주의를 강요하지 않았다.
정치는 물위에 뜬 백조와 같다. 우아하게 보이지만 물밑에선 쉴틈없이 다리를 휘젓는다. 불의한 짓을 허용하고 봐주란 의미가 아니다. 그건 그것대로 단죄해야 하지만 정치에서 필요한 최소한의 부조리는 용인할 수 있어야 된다. 때론 정치적 목표를 위해 정도에서 벗어나 타협할 때도 있는 것이다. 정치는 결과로 말할 뿐이다. 과도한 도적주의와 원리주의 얻은 인기는 금새 허물어진다. 정치인을 '성직자'로 만들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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