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역시 이란전쟁의 출구 찾는 신세!...동맹은 '보험'아닌 '거래'
미국이 이란에 ‘한 달간 휴전’과 15개 조건을 제시
[최보식의언론=김정기 세계스마트시티기구 사무총장]
중동에서 벌어지는 전쟁을 단순한 지역 분쟁으로 보면 반드시 오판하게 된다. 그렇다고 이를 곧바로 한반도 위기로 연결하는 것도 또 다른 오류다.
국제정치는 감정이 아니라 힘과 이해관계로 움직인다. 지금 필요한 것은 공포가 아니라 냉정한 해석이며, 그 위에서 내려지는 판단이다.
이번 사태의 출발점은 분명하다. 이스라엘에게 핵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이다. 좁은 국토, 부재한 전략적 완충지대, 적대적 환경 속에서 핵 억지는 군사 수단을 넘어 국가 존속의 조건이 된다. 여기에 홀로코스트라는 집단 기억까지 더해지면, 그 선택은 더욱 단단해진다.
이스라엘 건국을 뒷받침했던 미국은 이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미국의 핵 정책은 일관된다. 동맹의 핵은 억제력으로 인정하고, 적대국의 핵은 질서에 대한 도전으로 본다. 이스라엘의 핵은 묵인되지만, 이란의 핵은 허용되지 않는 이유다.
문제는 지금의 미국이다. 약해진 것이 아니라,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유럽에서는 러시아, 중동에서는 이란, 인도태평양에서는 중국이 동시에 맞서고 있다. 여기에 재정 부담과 분열된 국내 정치까지 겹치면서, 모든 전장을 동시에 관리하는 것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미국은 이제 ‘개입하는 국가’가 아니라 ‘선택해야 하는 국가’가 됐다. '선택적 개입'은 전략이 아니라 현실이 만든 필연이다.
이 구조는 최근 드러난 하나의 장면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미국이 이란에 ‘한 달간 휴전’과 15개 조건을 제시했다는 보도다.
핵능력 해체, 우라늄 농축 금지, 핵시설 폐기, 대리세력 지원 중단, 호르무즈 해협 개방까지 요구하는 대신 제재 해제와 원전 지원을 제안하는 방식이다. 겉으로 보면 강경한 요구와 파격적 보상이 결합된 ‘빅딜’처럼 보인다. 그러나 본질은 다르다. 이는 승리를 위한 조건이 아니라, '출구'를 찾기 위한 조건이다.
미국은 지금 이 전쟁을 끝낼 수 있는 해답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운 전쟁을 관리 가능한 수준으로 낮추려 하고 있다. '한 달 휴전'이라는 시간 설정 자체가 이를 보여준다. 전략적 해결이 아니라, 전술적 숨 고르기다.
이 공백을 파고드는 국가가 이란이다. 이란은 단순한 국가가 아니다. 페르시아 제국의 역사적 유산, 넓은 영토와 인구, 에너지 자원을 바탕으로 한 지역 강국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작동 방식이다. 종교 권위와 혁명 이념이 결합된 체제, 혁명수비대를 중심으로 한 군사력, 헤즈볼라와 후티로 이어지는 대리전 네트워크가 동시에 움직인다. 이란은 국가이면서 동시에 네트워크다.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이번 휴전 제안이 성사될 가능성이 낮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제시된 조건은 사실상 체제의 '핵심'을 해체하라는 요구다. 이란이 이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단순한 양보가 아니라 체제의 자기부정에 가깝다. 국민에게는 결사항전을 외치면서 실제로는 협상 채널을 여는 이중 전략은 가능하지만, '근본적 항복'은 구조적으로 어렵다.
중동의 힘의 구조는 종파 갈등으로 단순화할 수 없다. 실제로는 세 개의 축이 움직인다. 시아파의 중심이자 페르시아 제국의 후예인 이란, 메카와 메디나라는 이슬람 성지를 기반으로 자본과 에너지로 수니파 세계를 이끄는 사우디아라비아, 그리고 오스만 제국의 유산을 계승한 튀르키예다. 여기에 미국의 지원을 받는 이스라엘이 더해지면서 긴장은 유지된다. 이 구조는 단기간에 해소되지 않는다.
지금 전쟁의 핵심은 육지가 아니라 바다로 이동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이다. 세계 원유 물동량의 약 20%가 이곳을 통과한다. 본질은 봉쇄 여부가 아니다. 이란은 해협을 완전히 막지 않는다. 대신 통제한다. 통과는 허용하되 위험을 가격으로 만든다. 나포, 검색, 지연, 위협을 통해 흐름을 끊지 않으면서도 비용을 폭등시키는 방식이다.
최근 해협 통과 선박이 다시 늘어나고 있다는 점은 중요한 신호다. 이는 단순한 긴장 완화가 아니라, ‘통제된 개방’이 작동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미국과의 충돌을 전면전으로 확대하지 않으면서도, 시장에 지속적인 불안을 주는 전략이다.
일본은 이란과의 외교 채널을 활용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통과 환경을 확보하고 있다. 한국은 이란과의 직접적 설득 채널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이 차이는 곧 에너지 비용의 차이로 이어진다.
트럼프의 대응 역시 이 구조를 드러낸다. 그는 강경한 발언으로 압박을 유지하면서도 실제 군사 행동은 제한한다. 때릴 수는 있지만 끝까지 밀어붙이지는 않는다. 휴전 제안은 그 연장선에 있다. 전면전 의지도, 완전 철수도 아닌 중간 지대다.
앞으로의 전개는 세 갈래다. 불안정을 통제하며 장기화하는 경로, 해상 충돌이 확대되는 경로, 제한적 거래가 이뤄지는 경로다. 현재로서는 ‘관리되는 전쟁’이 지속될 가능성이 가장 크다. 전쟁은 끝나지 않고 조절된다.
이 변화는 한국에 직접적인 압박으로 이어진다. 이제 에너지는 '가격'의 문제가 아니라 '안정성'의 문제다. 불확실성 자체가 비용이 되는 시대다. 유가는 환율과 물가, 산업 경쟁력을 동시에 흔든다.
대응은 분명하다. 전략 비축유를 실전 운용 체제로 전환하고, 원유와 LNG 도입선을 분산해야 한다. 동시에 이란과의 실질적 소통 채널을 복원해야 한다. 에너지는 외교의 결과다.
북핵 문제 역시 같은 맥락이다. 이제 핵을 막는 단계는 지났다. 핵 이후를 관리하는 단계로 들어가야 한다. 확장억제에만 기대는 접근으로는 부족하다. 전술핵 재배치, 핵공유, 그 이상의 선택지까지 포함한 준비가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결론이 아니라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다.
동맹에 대한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미국은 여전히 가장 중요한 파트너지만, 더 이상 모든 것을 대신 결정해주는 국가는 아니다. 이번 휴전 제안이 보여주듯, 미국 역시 출구를 찾는 당사자일 뿐이다. 동맹은 보호가 아니라 거래다. 한국은 의존을 넘어 기여를 통해 발언권을 확보해야 한다.
결국 선택의 문제다. 선택은 선언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준비된 선택만이 현실이 된다.
지금 한국이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에너지는 비상체제로, 북핵은 현실관리체제로, 동맹은 기여확대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이것은 정책의 변화가 아니라 국가 인식의 전환이다.
미국을 믿되 미국만 믿어서는 안 된다. 중국을 경계하되 적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이란을 압박하되, 대화의 문을 닫아서는 안 된다. 북한의 핵을 비판하되 그 현실 앞에서 눈을 감아서는 안 된다.
한국의 선택은 더 이상 늦출 수 없다. 평시의 언어를 버리고 준전시의 사고로 들어가야 한다. 석유는 안보다. 북핵은 현실이다. 동맹은 보험이 아니라 거래다. 이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한국의 생존 전략은 비로소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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