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장의 사진] BTS 광화문 공연에 왜 '국풍 81'이 소환되나

온 나라가 들썩이는 분위기에 나는 엄마 치맛자락을 붙잡고 졸라 그 엄청난 인파 속을 헤집고 다니며...

2026-03-19     박주현 객원논설위원

[최보식의언론=박주현 객원논설위원]

내가 초등학교 2학년이던 1981년 5월, 여의도 광장에서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축제라 불리던 '국풍 81'이 열렸다. 온 나라가 들썩이는 분위기에 나는 엄마 치맛자락을 붙잡고 졸라 그 엄청난 인파 속을 헤집고 다니며 신나게 구경을 했다. 화려한 볼거리와 맛있는 음식들 사이에서 마냥 즐거웠던 기억뿐이다.

하지만 머리가 굵어지고 나서야 알았다. 내가 그렇게 순진하게 환호했던 그 축제가, 사실은 신군부가 대중의 정치적 불만을 돌리기 위해 치밀하게 기획한 '3S 정책'의 일환이었다는 걸. 국가가 대중의 눈과 귀를 오락거리로 마비시켜 독재의 폭력성을 잊게 만들려 했던 노골적인 우민화 정책. 그 씁쓸한 진실을 처음 알았을 때, 내 유년 시절의 즐거웠던 추억이 통째로 농락당한 것 같아 어린 마음에 꽤나 큰 충격과 배신감을 느꼈다.

그리고 45년이 흐른 2026년 3월, 나는 서울 한복판에서 그 촌스러운 '국풍 81'의 망령과 다시 마주한다.

방탄소년단 컴백 공연 하나 하겠다고 대한민국의 심장부인 세종대로를 33시간 동안 전면 통제한단다. 시청역, 광화문역, 경복궁역은 지하철이 서지도 않고 무정차 통과하며, 테러를 막는다며 인근 31개 건물의 옥상 출입까지 틀어막았다.

팬들을 위한 무료 공연이라며 인심 쓰듯 포장했지만, 그 거대한 무대를 세우고 안전을 통제하기 위해 투입되는 막대한 공권력과 수십만 시민이 겪어야 할 출퇴근길의 고통은 철저히 무급으로 강요되고 있다.

어김없이 언론들은 이 공연이 불러올 수천억 원의 경제적 파급 효과를 계산기 두드리며 찬양 기사를 쏟아낸다.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같은 대형 국책 이벤트 때나 하던 그 촌스러운 짓거리를 대중음악 공연에 똑같이 들이밀고 있다.

해외에도 우드스탁이나 글래스톤베리 같은 전설적인 대형 페스티벌은 널렸다. 하지만 그 어떤 문명국가도 팝스타의 공연을 위해 수도 한복판의 메인 혈관을 33시간이나 틀어막고 시민의 통행을 강제로 금지하는 미개한 짓은 하지 않는다.

국가가 앞장서서 공공의 일상을 짓밟고 수천 명의 경찰을 동원해 판을 깔아주는 이 기괴한 행정력 집중. 대체 왜 이러는 걸까.

답은 뻔하다. 지금 이재명 정권에게는 21세기판 국풍 81이 절실하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란발 중동 위기에 외교는 샌드위치 신세가 됐고, 1500원을 넘나드는 환율과 미친 물가는 폭발 직전이며, 날림으로 통과시킨 사법 개혁은 범죄자들의 구명조끼로 전락해 거대한 코미디가 되어버렸다. 켜켜이 쌓인 국정 실패에 쏠린 국민의 매서운 시선을 단숨에 돌리는 데, 광화문 한복판에 수십만 인파를 모아놓고 터뜨리는 K팝 불꽃놀이 만큼 가성비 좋은 마약이 어디 있겠는가. 세련된 글로벌 문화로 포장지를 씌운 '2026년형 3S 정책'이다.

더 참담한 건 이 얄팍한 정치적 쇼가 낳을 치명적인 자해 행위다.

바다 건너 외국의 혐한 세력들이 K팝을 깎아내릴 때마다 앵무새처럼 하는 말이 있다. K팝은 자생적 문화가 아니라 한국 정부가 국고를 쏟아부어 찍어내는 억지 국책 사업이라는 질투 섞인 조롱이다. 우리는 늘 그것을 그들의 열등감이라 비웃어 왔다.

하지만 지금 정부와 서울시가 보여주는 꼴을 보라. 대중음악 공연에 도심 혈관을 스스로 끊어 바치고 공권력을 상납하며 국가적 이벤트를 벌이고 있다. 쟤들이 떠들던 국책 K팝 음모론에, 우리 정부가 앞장서서 그 말이 정확히 맞다고 인증 도장을 쾅쾅 찍어주고 있는 꼴이다. 애써 이룩한 문화적 성취를 국가가 스스로 프로파간다의 도구로 전락시키며 멱살을 잡고 나락으로 끌고 가고 있다.

광화문 한복판에서 울려 퍼질 화려한 무료 공연에 열광하며 떼창을 부를 지금의 10대 아이들을 생각한다. 훗날 머리가 굵어지고 나서, 자신들이 그토록 순수하게 환호했던 그 무대가 사실은 무능한 정권이 정치적 위기를 덮기 위해 치밀하게 기획한 시선 돌리기용 3S 정책의 일환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그 아이들이 받을 충격과 상처는 어떨까.

45년 전 여의도 광장에서 솜사탕을 물고 뛰놀다 훗날 진실을 알고 배신감에 입술을 깨물었던 초등학교 2학년의 씁쓸한 기억이, 2026년 광화문에서 다른 얼굴을 한 채 고스란히 반복되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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