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겠다”...베이비붐 세대가 바꾸는 임종 문화

연명 치료 거부‧조력 자살 등 전 세계 확산

2026-03-05     박정원

[최보식의언론=박정원 객원논설위원(더시그넘하우스 연구소장)]

KBS 뉴스 캡처

“만약 제가 스스로를 돌볼 수 없게 된다면 그보다 훨씬 전에 세상을 떠나고 싶다. 나의 삶을 남의 손에 맡기고 싶지 않다.” 

“내가 만약 걸을 수 없게 된다거나 그럴 징조가 보이면 어디 산속에 미리 갈 것이다. 만약 내가 없어지면 그런 줄 알아라. 미리 얘기해 두는 거다.” 

이제 80세를 넘기고 있는 베이비붐 세대는 부모 부양의 마지막 세대이다. 부모 세대의 임종을 병원 중환자실에서 지켜보면서 나름대로 다짐했으리라 상상한다. 효도하는 심정으로 병원에서 부모의 연명 치료를 받아들였지만 ‘만약 내가 그 상황이 된다면 아무 의미 없는 그 치료를 더 이상 절대 받지 않으리라. 그리고 나는 내 자식들에게 저런 짐을 절대 지우지 않겠다’고. 연명 치료를 하면서 고통받는 부모의 모습과 그로 인해 가족들이 겪는 경제적‧심리적 고통을 직접 목격한 처음이자 마지막 세대가 베이비붐 세대가 아닐까 싶다. 

베이비붐세대의 특성은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부모 세대와는 다른 독립적 성향은 특히 강하다. 이는 한국만의 특성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공통적인 현상이다. 대가족 제도와 핵가족 제도를 동시에 경험한 세대이기도 하다. 대가족은 전통적, 관습적으로 물려받았지만 핵가족은 도시화와 사회화 물결로 자의반 타의반으로 경험했다. 자식들도 하나둘씩 떠나 부부만 생활하는 가정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당연히 독립적일 수밖에 없다. 

베이비붐 세대의 독립적 성향과 맞물려 연명 치료를 거부하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서명자가 크게 늘고 있다. 이와 함께 유언장뿐만 아니라 장례 방식, 유품 정리, 디지털 자산 관리 등을 미리 기록하는 ‘엔딩 노트’ 작성과 웰다잉 교육 열기가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이른바 베이비붐 세대가 새로운 임종 문화를 주도하고 있다. 

연명 거부 서약자는 2025년 12월 기준, 320만 명을 돌파했다. 누적 등록자가 320만 1,958명. 베이비붐 세대인 70대가 124만여 명으로 가장 많고, 65~69세와 80세 이상이 그 뒤를 잇고 있다. 거의 베이비붐 세대인 셈이다. 65세 이상 등록자가 총 237만 3,565명이다. 그중에서도 여성이 212만 2,785명으로 남성 107만 9,173명의 거의 2배에 달한다. 연명 치료 거부 등록자 중 실제 임종 과정에서 연명 의료를 중단하거나 유보한 사례도 48만 건을 넘어섰다. 실제 실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은 자녀에게 짐이 되지 않겠다는 의지와 스스로의 삶은 스스로 마무리하겠다는 자기 결정권 인식의 확산된 결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왜 베이비붐 세대가 죽음에 대한 이러한 인식을 가지게 됐을까를 구체적으로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로, ‘내 삶의 중요한 결정은 내가 직접 한다’는 자기 결정과 통제권을 갖는 성향을 뚜렷하게 보인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본질적으로 가족이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미리 결정을 남기는 장치이다. 베이비붐 세대는 직업이나 이주, 소비‧교육 등 개인 단위의 다양한 선택 경험이 축적된 세대라, 건강이나 임종도 내 의사를 남기는 문화에 어느 세대보다 익숙한 편이다. 나아가 이러한 세대 고령화가 사회 변화를 주도할 것이라는 전망도 우세하다. 

둘째로, 내가 할 수 있다는 자기효능감도 강하다. 베이비붐 세대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내가 필요한 행동을 해낼 수 있다’는 믿음, 즉 자기효능감과 좋은 죽음에 대한 인식이 연명 치료 거부로 이어진다는 결과가 잇따라 보고되고 있다. 

셋째, 계획하는 문화에 익숙하다는 점이다. 베이비붐 세대는 노후 준비‧보험 등 미래 위험을 관리하는 행동을 다른 세대보다 더 제도적으로 해온 편이라 임종 영역에서도 사전 계획이 자연스러운 연장선이 될 수 있다. 

베이비붐 세대의 독립성과 관련된 죽음에 대한 인식은 현장에서도 뚜렷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연명 거부 의사는 기본적으로 가족 부담을 줄이려는 성향과 직접 연결된다. 연명 거부 작성 동기가 가족이 죄책감이나 갈등을 떠안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는 이유가 압도적으로 많다. 이는 개인주의라기보다는 책임을 내가 지겠다는 의무감이 더 크게 작용한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외국에서도 베이비붐 세대의 특징이 죽음과 관련해서 비슷한 형태로 나타난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도 거대한 베이비붐 세대 집단이 이제는 노년기에 접어들면서 문화적‧제도적 배경에 따라 존엄한 죽음을 구현하는 방식이 다양하게 표출되고 있다. 

미국은 베이비붐 세대가 고령기에 접어들면서 말기 질환‧치매‧요양시설 입소 등 ‘나쁜 죽음’을 피하고자 일부 주에서 개인의 자유와 통제권을 강화한 ‘조력 존엄사(MAID: Medical Aid in Dying)’를 허용하고 있다. 오리건, 워싱턴, 캘리포니아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들은 대체로 대학 교육을 받았고, 민간 보험을 가진 백인 중산층이 많다는 특징을 보이며, 빈곤층이나 소수 인종과 같은 전통적 취약계층은 별로 이용하지 않는다는 보고가 있다. 

이들의 주요 동기는 부모 세대의 장기 요양‧연명 치료 과정을 지켜보면서 현재의 의료시스템이 ‘좋은 죽음’을 제공하지 못한다는 인식을 강하게 갖고 있다. 따라서 자기통제(self-control)를 유지하고,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며, 자산을 요양비로 소모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이유를 주로 언급하고 있다. 

네덜란드와 벨기에는 적극적 안락사를 허용하고 있다. 환자의 요청에 따라 의료진이 직접 약물을 주입하는 방식이 법적으로 인정받는다. 최근에는 말기 암뿐만 아니라 견디기 힘든 고통을 겪는 치매 환자나 정신적 질환자에게도 이를 허용해야 한다는 사회적 논의도 활발하다. 

스위스는 조력 자살 투어가 인정되고 있다. 외국인에게도 조력사를 허용하는 스위스는 전 세계 베이비붐 세대가 몰리는, 이른바 ‘자살 관광(Suicide Tourism)’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는 국가가 개인의 죽음에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는 강력한 자유지상주의적 가치관이 그대로 반영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스웨덴을 중심으로 한 북유럽에서는 죽음을 앞두고 주변을 정리하는 ‘데스 클리닝(Death Cleaning)’ 문화가 유행한다. 자신이 죽은 뒤 남겨진 사람들이 물건을 치우느라 고생하지 않도록, 살아 있을 때 자신의 소유물을 점진적으로 줄여나가는 라이프스타일이다. 이는 단순히 물건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삶의 소중한 기억만을 남기고 나머지는 사회에 환원하거나 정리함으로써 삶의 마지막을 가볍게 만드는 문화운동의 일환이다. 

일본에서는 ‘슈카츠(終活) 문화’가 있다. 자식이나 가족에게 민폐 끼치지 않는 정리라고 할 수 있다. 슈카츠는 끝을 준비하는 활동이라는 뜻으로, 장례식 예약, 유품 정리, 묘지 마련 등을 미리 마치는 현상이다. 이와 함께 자녀에게 경제적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시신 화장 후 유골을 바로 수습하거나 뿌리는 극도로 간소한 장례 절차도 유행하고 있다. 

나라마다 종교적 배경과 문화적 차이에 따라 죽음을 맞는 방식은 조금씩 다르지만 전 세계 베이비붐 세대들이 병원이 시키는 대로 죽음을 맞는 것이 아니라 죽음의 주도권을 내가 가지겠다는 강력한 의지 표출은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한국이나 일본과 같은 아시아 국가들은 가족에게 미칠 영향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반면, 서구권은 자신의 고통과 권리에 집중하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동서양 공통적인 인식은 내 삶의 마지막 품격을 단순히 의료적 선택이 아니라 최후의 자기 결정권을 갖겠다는 의미이다.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찮다. 생명의 존엄성을 두고 종교적‧도덕적‧윤리적 논란은 세계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조력 죽음이 의료비 절감 논리와 결합할 경우, 비용 절감을 위해 죽음을 권하는 의료‧보험시스템이 될 위험도 내포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또한 장애‧빈곤‧외로움‧주거 불안 등 사회문제로 인한 고통이 복지‧돌봄의 확충이 아니라 조력 죽음으로 해결하는 상황을 맞닥뜨릴 수 있는 위험도 공존한다. 노인에게 더더욱 해당하는 지적이다. 이래저래 노인은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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