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매화에게만 '향기를 팔지 않는다(不賣香)' 하나
[老시인의 편지] 이 세상 어느 꽃도 제 향기를 파는 법이 없는데
[최보식의언론=이병철 논설위원]
겨울 끝자락에서 피어나 봄의 들머리를 여는 매화꽃을 나는 특히 좋아한다. 누군들 이런 매화꽃을 좋아하지 않겠는가마는, 시린 바람 속에 푸른빛으로 피어난 청매(靑梅)나 밤새 하얗게 내린 눈 속에서 선홍빛으로 붉게 피어난 홍매(紅梅)를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더구나 폐부 깊숙이 스며드는 그 아린 향기는 세상의 어느 향기에 비할 바 없으리라 싶다. 그래서 예로부터 선비들의 사랑을 받고, 시인 묵객들이 매화의 미덕을 칭송하는 글들을 숱하게 남겨 왔으리라.
"찬 서리를 무릅쓰고 홀로 피었다"거나 "흙이 되어도 향기는 남는다"는 노래 등도 매화를 칭송하는 대표적인 구절이라 할 수 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널리 알려진 것이 "매화는 평생 추위 속에 살지만 그 향기를 팔지 않는다(梅一生寒 不賣香)"는 시구다. 나 또한 한때 이 구절이 좋아 더러 인용하기도 할 만큼, 매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글이기도 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매화를 만날 때마다 절로 떠오르는 이 시구가 차츰 불편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 구절은 아직 얼음이 녹지 않은 시린 바람 속에 피어나, 향기를 찾아올 벌나비 없이 암향(暗香)이라 불리는 깊고 아린 향기를 나누는 매화의 지조와 절개를 칭송하는 말이라 할 수 있겠다.
내가 이 시구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것은 그 비유의 뜻을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향기를 팔지 않는다(不賣香)"는 이 대목이 자칫 날씨가 풀렸을때 피어나 그 향기로 벌나비를 불러오는 다른 꽃들에 대한 비하로 들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여태껏 내가 아는 한, 어떤 꽃도 제 향기를 팔지는 않는다. 서로의 필요에 따라 그저 함께 나눌 뿐이다. 벌과 나비는 먹이를 찾아 꽃에 날아오고, 꽃은 자신이 지닌 꿀과 꽃가루를 내어줌으로써 가루받이를 한다. 그 과정에 어떤 조건이나 대가의 요구는 없다.
깊은 산속에 홀로 핀 난초가 알아주는 이 없이도 향기를 내어주듯, 모든 꽃은 저마다의 향기를 거저 그렇게 나눈다.
자연에는 사고팔 일이 없다. 무엇인가를 사고판다는 말은 이해타산을 앞세우는 인간 사회에서나 생겨난 개념일 터이다. 내가 꽃향기에서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집착없이 베푸는 보시)'를 떠올리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이 세상 어느 꽃도 제 향기를 파는 법이 없는데, 유독 매화에게만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수사를 붙이는 것이 과연 온당한가 하는 생각이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어쩌면 이는 다른 꽃들에 대한 내 나름의 변명이기도 하리라. 내가 사랑하는 꽃이 매화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해마다 찬바람 속에서도, 시린 꽃샘추위 속에서 파랗게 얼면서도 온몸으로 피어나 봄을 열어가는 그 매화를 만나는 탐매 순례를 해마다 이어가지만, 이런 매화에 대한 내 애정은 다른 꽃에 대해서도 다르지 않다.
매화와 비슷한 시기, 혹은 그보다 더 앞서 겨울 한복판에서 피어나는 동백꽃에 대한 내 사랑 또한 매화 못지않다. 피었던 모습 그대로 모가지째 뚝 떨어져 제 발치에서 더 붉게 피어나는 겨울 심장 같은 동백을 어찌 외면할 수 있으랴.
그뿐이겠는가. 겨우내 텅 비었던 들녘에 푸른 기운이 돋아날 즈음, 가지가 휘어지도록 구름처럼 피어 바람도 없이 우수수 떨어지는 벚꽃과, 한여름 무더위 속에서도 맑고 서늘하게 피어나는 처염상정(處染常淨)의 그 연꽃, 그리고 낙엽 지는 쓸쓸한 계절의 산자락에 하얗게 피어나는 해맑은 그 구절초 앞에서도 나는 감사와 찬탄을 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온몸으로 피어나 자태와 향기를 나누는 꽃이 어찌 이름난 꽃들만이겠는가. 그런 공덕은 저 매화나 이름모를 한송이 들꽃이나 다를 바 없으리라 싶다.
옛사람들이 매화 앞에서 노래한 지조와 절개란 무엇일까.
온몸을 가지 끝까지 구름을 타고 오르는 용처럼 비틀며 피어난 운룡매 앞에서 다시 묻는다.
굽었으되 부러지지 않았고, 휘었으되 그 가지에 핀 꽃은 제 자태와 향기를 잃지 않았다.
세월을 등에 지고 굽이친 그 줄기 위에 피어난 하얀 그 꽃 한 송이는 오히려 다른 매화보다 더 기품이 느껴졌다.
지조란 혹 곧음만을 이르는 말이 아닐지도 모른다. 굽을 줄 알고, 낮출 줄 알고, 그래도 끝내 제 향을 잃지 않는 힘을 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로남불이 시쳇말로 된 세태에서 민주와 정의를 마치 자신들의 전리품이나 전유물인 듯 앞세우는 무리들의 그 불매향의 의미를 생각한다. 진정으로 향기를 팔지 않는 이는 스스로를 드높여 남을 깎아내리지 않는다. 운룡매처럼 스스로를 비틀어 시련을 견뎌낼지언정, 그 고통의 산물을 남을 공격하는 무기로 쓰지 않는 법이 아닐까.
운룡매 앞에서 한 늙은이의 부질없는 감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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