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은 핵 능력 완성 못해 '타격 대상'이 됐지만...북한은?
힘을 과시하는 전략, 이른바 ‘겁주기’는 어디까지 유효한가
[최보식의언론=김정기 세계스마트시티기구 사무총장]
전쟁은 늘 명분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그 끝은 언제나 구조적 귀결로 돌아온다.
승리의 언어와 결의의 수사는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지만, 힘의 재편과 질서의 변화는 남는다. 지금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스라엘과 이란의 충돌 역시 예외가 아니다.
이번 국면은 단순한 국지적 충돌이 아니다. 이스라엘의 선제 타격과 이란의 보복을 넘어, 미국이 이스라엘과의 합동 작전으로 직접 타격에 나서면서 전쟁의 성격이 바뀌었다.
미국 국방부가 작전명으로 공개한 '장엄한 분노(Epic Fury)'는 상징적이다. 표면적으로는 군사 작전이지만, 그 이면에는 국제 질서의 방향 전환이 놓여 있다.
우리는 규범과 제도가 사라진 세계를 보는 것이 아니다. 다만, 제도 위로 힘의 논리가 다시 전면화되는 장면을 목격하고 있다. 자유주의적 제도 질서의 외피 위로 고전적 현실주의의 작동 원리가 다시 강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하나의 질문이 제기된다. 힘을 과시하는 전략, 이른바 ‘겁주기’는 어디까지 유효한가.
이스라엘의 전략은 감정의 산물이 아니다. 그것은 생존 구조가 만들어낸 필연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중동은 한 번도 완전히 평온했던 적이 없다. 1948년 건국 직후의 전쟁, 1967년 6일 전쟁, 1973년 욤키푸르 전쟁까지, 이스라엘은 주변 아랍 국가들에 둘러싸인 채 생존을 걸고 싸워왔다.
국토는 좁고, 전략적 완충 공간은 거의 없다. 방어선이 무너지는 순간 곧바로 수도와 핵심 지역이 위협받는 구조다. 이 나라에서 전쟁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조건이었다.
그래서 전략은 명확하다. 위협이 현실이 되기 전에 제거한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예방공격이 아니라 억제(deterrence)의 실패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선제적 억제(preemptive deterrence)'에 가깝다.
1981년 이라크 오시라크 원자로 폭격과 2007년 시리아 핵시설 공습은 같은 논리의 연장선이었다. 핵 능력이 완성되는 순간 억제의 구조는 질적으로 재편된다. 억지이론에서 말하는 능력(capability)과 의지(resolve) 가운데 능력이 확보되는 순간 균형은 근본적으로 변한다.
의도를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능력을 차단하는 것이 이스라엘 전략의 핵심이다. 이란의 핵 능력 역시 이스라엘에게는 외교적 카드가 아니라 존재론적 위협이다. 중동에서 핵 독점은 곧 억제력의 독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충돌은 이스라엘-이란만의 프레임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미국의 직접 개입이 전면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오랫동안 '간접 개입'의 외피를 유지해 왔지만, 이번에는 합동 공습으로 직접 타격을 감행했다. 그리고 그 목표가 더 커졌다는 해석이 뒤따른다.
지난해 6월, 이란 핵시설 3곳을 타격했던 작전이 핵 프로그램의 물리적 약화에 가까웠다면, 이번 공습은 지도부 제거와 정권 교체까지 거론되는 단계로 확대되었다. 공격의 초점이 단지 핵시설이 아니라 지도부, 군사시설, 미사일 전력으로 옮겨가면서, 전쟁 목표는 핵 프로그램에서 체제로 이동하는 양상을 띤다.
이란의 전략은 전통적으로 다르다. 미국과의 정면 충돌은 군사력 격차를 고려할 때 합리적 선택이 아니다. 그래서 비대칭 전략을 택한다. 레바논의 헤즈볼라, 예멘의 후티 세력, 시리아 내 친이란 민병대, 걸프 해상 교통로 압박 등 분산된 전선을 통해 장기 소모전으로 끌고 간다.
이번에도 그 패턴은 즉각 재현됐다. 이란은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카타르, 쿠웨이트, UAE, 바레인 등 역내 미군 기지를 겨냥해 보복에 나섰다. 이는 약자가 선택하는 전형적인 '비대칭 억제(asymmetric deterrence)'다. 전쟁을 “이기느냐”가 아니라 “지지 않느냐”로 정의한다.
이는 일회성 충돌이 아니라 소모전 모델(War of Attrition)에 가까운 구조다. 단기적 승리의 극대화가 아니라, 시간의 경과 속에서 상대의 비용과 피로를 누적시키는 전략이 합리적 선택이 된다. 힘의 비대칭이 존재할수록, 약자는 전면전에서의 결전보다 상대의 인내 한계를 시험하는 방식으로 균형을 모색한다.
여기서 핵심 변수는 미국의 딜레마다. 미국은 다시 결정권자의 자리로 복귀했다. 미국 역시 무제한적 선택지를 가진 행위자는 아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지원, 인도태평양 전략, 대중 견제, 국내 정치적 분열과 재정 부담이라는 다중 전선 속에서 중동 개입은 높은 비용을 수반한다.
더구나 이번 충돌은 핵 협상이 진행되는 와중에 발생했다. 불과 2월 26일, 제네바에서 3차 핵 협상이 열렸고, 기술 협의의 연장 가능성까지 거론되던 직후였다.
그럼에도 군사행동으로 전환한 것은, 우라늄 농축 등 핵심 쟁점에서 합의점을 찾기 어렵다는 판단과, 2월 19일 제시된 10~15일 시한성 경고의 연장선에서 이해될 수 있다. 한 달 가까이 항모 전개와 공군 전력 증강이 이어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힘의 과시는 단기 효과를 낼 수 있지만, 과도해질 경우 협상 구조 자체를 약화시킨다. 상대는 굴복 대신 지연과 우회 전략을 선택한다. 이란이 장기전으로 방향을 틀 경우, 미국은 승리를 선언하면서도 구조적 해결에 도달하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이것이 '겁주기'의 구조적 한계다.
강압외교(coercive diplomacy)의 성패는 위협의 신뢰성과 동시에 출구전략의 정교함에 달려 있다. 출구가 불명확하면, 상대의 결집과 확전의 도미노를 촉발한다. 전쟁의 목표가 핵 프로그램 억제에서 정권 교체로 넓어지는 순간, 비용과 기간은 비선형적으로 증가한다.
중동 현대사의 결말은 대개 전면전이나 체제 붕괴가 아니었다. 제한적 확전, 체면 손실의 감수, 동결과 사찰, 부분 폐기, 불완전한 합의로 귀결되었다. 완전한 해결이 아니라 '관리된 긴장'이 반복되었다. 갈등은 해소된 것이 아니라 억지 균형 속에서 봉합되었을 뿐이다. 이것이 중동에서 반복되어 온 구조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한반도가 등장한다. 북한은 이미 핵을 보유했다. 이란은 핵 능력을 완성하지 못했기에 타격 대상이 되었지만, 북한은 핵 능력을 기정사실화했다. 따라서 북핵 문제는 완전한 비핵화라는 이상적 구호보다는 관리 가능한 합의, 부분적 동결, 단계적 제한이라는 현실적 구조 속에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억제 해체가 아니라 '위험 관리 모델'에 가깝다.
북한은 핵과 ICBM을 협상 자산으로 극대화하려 할 것이고, 미국 역시 다중 전선의 부담 속에서 현실적 절충을 모색할 수 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대한민국이 어떤 위치에 설 것인가다. 반복적 상호 억지 구조 속에서 당사자가 아닌 관찰자로 전락하는 순간, 합의의 조건은 외생적으로 형성된다.
동맹은 자동 작동 장치가 아니다. 확장억제는 문장이 아니라 실행 구조다. 위기 시 공동결정 메커니즘을 제도화하고, 한미 공동 핵기획 체계를 실질화하며, 핵·미사일 대응 시나리오를 상시 운용 가능한 수준으로 구체화해야 한다. 다층 미사일 방어망의 통합, 정밀 타격 역량의 고도화, 사이버·우주 영역 대비 역시 선택이 아니라 생존 조건이다.
동시에 협상 국면에서 배제되지 않을 외교적 지렛대를 선점해야 한다. 조건부 동결과 단계적 제한이라는 협상 프레임을 우리가 먼저 마련하지 못한다면, 그 틀은 타국의 이해에 따라 만들어질 것이다.
힘의 시대가 돌아왔다. 그러나 힘은 질서를 자동으로 보장하지 않는다. 질서는 준비된 억제력 위에서만 유지되며, 치밀한 국가전략 속에서만 지속된다. 억제와 협상은 대립이 아니라 상호 보완의 구조다.
전쟁은 끝나도 그 귀결은 사라지지 않는다. 중동에서 형성되는 힘의 재편은 언젠가 동북아의 균형 공식에도 반영될 것이다. 핵의 정치학, 강대국의 다중 전선, 부분적 합의의 반복은 지역을 넘어 재현될 수 있다.
누가 구조를 형성하는가. 힘을 행사하는 국가다. 누가 조건을 수용하는가. 준비되지 못한 국가다.
대한민국은 어떤 위치에 설 것인가. 결정의 축이 될 것인가, 아니면 결정의 대상이 될 것인가.
힘의 시대일수록 필요한 것은 감정이 아니라 이성이다. 선언만으로는 협상 테이블에 설 수 없고, 도덕적 수사만으로는 위기를 관리할 수 없다. 대한민국이 설 자리는 전장의 주변이 아니라, 질서 형성의 중심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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