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관찰인생] '수고했다 '조림 인간''... 한마디의 울림

'흑백요리사2'의 젊은 요리사는 자신에게 "오늘 만큼은 쉬어라"라고 했다

2026-03-01     엄상익 논설위원

[최보식의언론=엄상익 논설위원]

넷플릭스 '흑백요리사2' 캡처

백 명의 요리사들이 모여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마지막에 승리한 한 명에게 상금 3억 원과 명예가 주어진다. 최종 결선에 두 명이 섰다. 두 명의 셰프는 고급 식당에서 예술같은 요리를 만들어 온 장인들이었다.

주최 측은 손님이 아니라 본인이 먹고 싶은 걸 만들라고 했다. 그게 마지막 1등을 가리기 위한 문제였다. 그들이 당황하는 것 같았다.

"저는 평생 남을 위해 요리를 했지만 내가 먹으려고 만든 적은 없습니다."

그는 당황하는 표정이었다.

"제가 혼자 먹은 건 라면인데요----"

그 말을 들으면서 가슴이 찡했다.

그와 마지막을 겨루는 다른 요리사는 "어린 시절 아버지와 먹던 순대국이요"라고 대답했다. 그 역시 양식의 대가였다. 그들은 자기를 위한 요리를 마지막 출품작으로 내놓고 심사위원 두 명과 함께 먹었다. 

넷플릭스에서 하는 '흑백요리사2'라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들은 평생 손님의 입맛에 맞는 걸 만들어 왔고 대회에서는 심사위원의 입에 한 숟가락의 음식을 넣기 위해 목숨을 걸고 만들고 또 만들었다.

최강록이라는 인물이 우승자로 판정이 났다. 다음날 주간지에 소개된 그의 삶을 봤다. 고등학교 때 밴드 활동을 하며 드럼을 배운 그는 실용음악과 진학을 목표로 했지만 입시에서 고배를 마셨다. 방향을 바꾸어 그는 일식 요리사가 됐다. 

그는 조림에 집중했다. 조리고 조리고 또 졸였다. 그는 '조림 인간'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그는 요리대회에 도전했다. 긴 시간을 요리로 버텨온 자신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는 최종 심사 때 이런 말을 했다.

"조림을 잘 못하지만 잘하는 척했어요. 척하기 위해 살아온 인생이었죠."

정직한 눈빛이었다.

"나를 위한 요리에서까지 조림을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의 말에는 슬픔이 묻어 있었다. 일등을 한 그가 이런 말을 했다.

"수고했다, '조림 인간' 오늘만큼은 쉬어라라고 내게 말해 주고 싶어요. 저한테 조금 위로를 주고 싶어요."

잔잔한 감동의 물결이 마음 기슭으로 다가왔다.

그가 고등학교 시절 드럼 인생을 선택한 것도 특이했다. 그는 입시의 실패를 방향을 바꾸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인 것 같았다. 요리사의 길로 들어서면서 실패하고 넘어지면서도 절망하지 않았다. 

마침내 최고의 요리사라는 승리를 거머쥐었다. 나는 그가 요리를 만드는 과정을 유심히 봤다. 서두르지 않았다. 승리에 연연하지 않는 것 같았다. 마지막 일 분까지 평소 해 오던 대로 졸이고 또 졸였다. 무엇보다도 그의 음식에는 겸손이 배어 있었다.

그를 보면서 변호사인 내가 하는 일도 요리사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관련자의 진술과 증거들이 식재료다. 그것들을 자르고 다지고 볶고 졸인다. 조리된 문장들이 하얀 종이 위에 차례로 놓인다.

요리사들이 하얀 접시 위에 예술을 하듯 변론문에 형광펜도 칠하고 굵고 옅은 조합을 하기도 한다. 증거 사진도 꽃처럼 배치한다. 그렇게 상을 차려서 판사 앞에 놓는다. 긴장을 하고 그걸 먹는 판사의 표정을 살핀다. 그리고 성공과 실패의 판정을 받는다. 사십 년 가까이 그런 생활을 해 왔다. 남을 위해 변호를 해 왔다.

정작 나 자신을 변호해야 할 때는 어떤 말을 할 수 있었을까.

나도 몇 번인가 변호 받아야 할 순간이 있었다. 소송의 상대방에게 돈을 먹고 불리한 변론을 했다고 고소를 당한 적도 있다. 형사나 검사가 조사받는 나를 보면서 비웃고 능멸했다. 나는 나를 제대로 변호하지 못했다. 진짜 억울할 때는 입이 닫혀 버렸다.

나이 칠십이 되자 쉬고 싶었다. 앞뒤 가리지 않고 간단한 짐을 싸들고 동해 바닷가로 왔다.

사건 기록을 뒤지고, 변론서를 쓰던 40년의 리듬이 있던 자리에 파도와 모래 언덕 사이의 텅 빈 공허가 밀려 들어왔다.

내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지금까지 누구를 위해 살았나. 의뢰인을 위해, 승소를 위해 살았지만 정작 나를 위한 변론은 한 적이 없었다.

'조림 인간'이 마지막 대회에서 깨두부를 만들었듯이, 나도 나를 위한 무언가를 만들어야 했다.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글을 쓰기 시작했다. 변호사 시절의 사건들을 기록했다. 그러다 어느 날, 사건 속에서 의뢰인이 아닌 나 자신이 보이기 시작했다. 증거를 수집하고 변론하던 그 시간 속에 묻혀 있던 나의 고민, 나의 망설임, 나의 선택들이 보였다. 나는 그것들을 천천히 건져 올렸다. 소설이 되고 있다. 이것이 요리사가 자신을 위해 만들었던 깨두부였다. 40년간 남을 위해 조리하던 나는 이제 나를 위해 쓰고 있다.

젊은 요리사는 자신에게 "오늘 만큼은 쉬어라"라고 했다. 나도 나 자신에게 같은 말을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바닷가를 걷는다.

부푼 바다가 밀려와 파도가 되어 하얗게 부서진다. 잠자는 듯한 낮의 바다와 황혼에 물든 저녁 바다는 표정이 다르다. 노을에 붉게 물든 바다가 내게 말한다. 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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