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롭게 베네수엘라 차베스와 똑같은 '12명' 증원과 그 명분

20년 전 국가 부도로 판명 난 독재자의 오답 노트를, 기계적으로 숫자까지 베껴 쓰는 이 노골적인 표절

2026-03-01     최보식

[최보식의언론=박주현 재담 엔터테인먼트 대표]

연합뉴스TV 웹페이지 캡처

많은 이들이 '베네수엘라의 길'이라고 하면 무상 복지와 초인플레이션으로 망해버린 경제 폭망의 서사만 떠올린다.

하지만 베네수엘라가 돌이킬 수 없는 지옥으로 떨어진 진짜 '트리거'는 돈이 아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사법부 장악'이었다.

여의도에서 벌어지는 입법 폭주를 보며, 이 정부와 거대 여당이 우고 차베스의 2004년도 매뉴얼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표절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2004년,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대통령은 자신의 정책에 사사건건 제동을 거는 대법원을 무력화하기 위해 아주 기발한 꼼수를 냈다. '재판 지연 해소'라는 그럴싸한 명분을 내세워 대법관 정원을 20명에서 32명으로 대폭 늘려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새로 생긴 12개의 의자에 자신에게 충성하는 꼭두각시 판사들을 꽉꽉 채워 넣었다.

그날 이후, 베네수엘라 사법부는 행정부를 견제하는 기능을 상실하고 독재의 합법적 거수기로 전락했다. 삼권분립이라는 국가 시스템의 메인보드가 완전히 타버린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 국회를 통과한 '대법관 증원법'을 보라. 대법관을 현행 14명에서 26명으로 늘린단다. 기가 막히게도 늘어나는 숫자가 차베스와 똑같은 '12명'이다.

지구 반대편에서 20년 전에 국가 부도로 판명 난 독재자의 오답 노트를, 기계적으로 숫자까지 베껴 쓰는 이 노골적인 표절에 헛웃음조차 나오지 않는다. 상고심 적체를 해소하겠다는 명분도 차베스의 변명과 완벽하게 일치한다.

하지만 이것은 예고편에 불과하다. 이들의 진짜 타깃은 삼권분립의 마지막 마지노선인 '헌법재판소'다. 대법원 판결이 마음에 안 들면 헌재로 가져가 뒤집을 수 있게 만드는 '재판소원제'를 이미 통과시켰다.

그다음 수순은 뻔하다. 헌법재판관의 머릿수마저 늘려 자신들의 '사내 변호사'들로 채우려는 빌드업이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라는 국가의 양대 방화벽을, 그저 자기편 머릿수 늘리기라는 '디도스(DDoS) 공격'으로 마비시키고 있다.

이것은 사법 개혁이 아니다. 수많은 혐의를 짊어진 피고인 신분의 권력자가, 훗날 자신을 심판할 재판관들을 자기 손으로 미리 세팅하는 아주 저열한 '재판부 강제 인수합병(M&A)'이다.

국가의 사법 시스템이 권력자의 사유물로 전락한 나라의 끝이 어떤지는 베네수엘라의 700만 난민들이 이미 증명했다. 룰을 지키기 싫어서 심판의 숫자를 두 배로 늘리고 자기편 응원단장을 심판석에 앉히는 이 삼류 스포츠. 그 조작된 경기의 대가는 결국 시스템의 붕괴와 국가의 파산이라는 영수증으로 청구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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