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원 실버벨] 임종 앞둔 부모 '집에 가자'의 의미는?
여행을 갔다가 집에 돌아와서는 “집이 제일 편하다”는 의미
[최보식의언론=박정원 객원논설위원(더시그넘하우스 연구소장)]
세상 모든 사람은 집에서 살기 원한다. 노숙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다.
나이 들수록 집에서 편안한 여생을 보내길 바란다. 노인들은 집에 더욱 애착을 보인다. 그래서 어디를 가든지 “집에 가자”는 말을 한다. 노인학에서는 ‘Aging in Place’가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생활했던 곳에서 늙어가기’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사람들은 집이라는 개념을 어떤 공간, 장소, 영역으로 이해할까? 집의 정확한 개념은 뭘까? 그리고 노인에게 진정 집이란 무엇을 의미할까?
왜 임종을 앞두고 ‘집에 가자’는 말을 할까? 그때 말하는 ‘집에 가자’의 정확한 의미가 뭘까? 어떤 공간, 장소, 영역을 의미하는 것일까? 단순히 거주하는 공간으로서의 집이 아니라 광의의 의미의 집에 대한 개념은 어떤 개념까지 내포하고 있는지 정말 궁금하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세월의 흐름에 따라 늙어가는 시간적인 존재이지만 삶의 모든 단계에서 영구적이든 일시적이든 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이러한 공간은 인간의 자아 정체성과 그들이 겪는 변화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아주 어린 아이들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할 때, 대부분 처음 그리는 그림이 집이다. 거의 본능에 가깝다. 그러다가 독립을 시작하고, 새로운 가정을 꾸밀 때도 항상 집이 변수로 등장한다.
나이 들어서도 집에 대한 또 다른 가치를 나타낸다. 따라서 집은 세대 간 생활방식의 차이에 따라 달라지고, 이와 동시에 세대 간 생활방식도 점점 더 다양해지고 있다.
노인학에서는 노인과 초고령자들이 집에 머무르는 네 가지 동기를 ▲자유 ▲편안함 ▲행복 ▲위험 감소로 분석한다. 이를 풀어서 설명하면,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원하는 방식으로, 원하는 시간에 ‘자유롭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집에 머무른다. 또한 오랜 세월에 걸쳐 인내심을 가지고 쌓아온 ‘편안함’, 즉 생활 공간의 형태가 자신의 라이프스타일과 생활방식에 맞춰져 있다. 신체는 이러한 공간과의 접촉을 통해 변화되어 마침내 공간과 하나가 된다.
그리고, 사람들은 다른 곳에서는 좀처럼 누릴 수 없는 최고의 ‘행복’을 경험하기 때문에 집에 머무른다. 여행을 갔다가 집에 돌아와서는 “집이 제일 편하다”는 의미와 같다. 마지막으로 집에서는 위험에 처하지 않는다는 느낌으로 ‘위험을 감수’할 수 있기 때문에 집에 머물고 싶어 한다.
집에서 살고 싶다는 것은 단순히 거주지에 갇혀 사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신체적, 인지적,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여건에 따라 집에서 산다는 것은 자신이 사는 동네, 충분한 서비스와 편의시설이 제공되는 이웃, 또는 도시라는 맥락 속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자신이 거주하거나 태어난 지역, 그리고 자신이 속한 국가 또는 선택한 국가라는 맥락 속에서 자신을 인식하고 이해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집에서 산다는 것은 여러 밀접하게 얽혀 있는 공간과 시간의 규모 속에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예술가 마리 클레르 미투는 “집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라고까지 표현했다. 이는 시간이 흐르면서 주거는 자신과 자신, 자신과 타인, 그리고 세상과의 관계를 엮어낸 구체적이고 무형적인 표현이 된다.
은퇴는 삶의 중요한 전환점이다. 특히 남성에게 있어 한때 부차적이었던 집은 은퇴부터 주된 공간이 되며, 이 시기의 심리적, 사회적 변화를 그 공간에서 수용해야 한다. 외부의 공간은 변했지만 집 안에서의 개인적인 공간, 부부 공동의 공간 등 개인과 부부에게 집은 변함없이 그대로 유지된다.
하지만 20년 혹은 25년 후 집은 더 이상 같은 방식으로, 같은 의미로 경험되지 않을 수 있다. 배우자 중 한 명이 입원하거나, 요양시설이나 실버타운에 입소하거나, 세상을 떠났을 수도 있다. 이때부터 사실상 ‘고통스러운 노년’이 시작된다.
노년층의 집에 대한 해석은 기억 속에 고정된 개념에 국한된다. 이러한 주거 및 집에 대한 관점은 집을 무형의 은신처로 만든다. 하지만 더 편리하고 안전한 거주지를 찾거나, 가족과 더 가까운 곳으로 이사하거나, 비슷한 삶의 이상을 공유하는 공동체에 합류하거나, 혹은 노년기에 요양원에서 여생을 보내거나 하는 등등의 노년기 주거 이동성은 다른 곳에서 다른 방식으로 새롭고 의미 있는 집이라는 공간을 만들어낸다.
이와 같이 노년기의 집은 단순히 ‘내가 사는 곳’이라는 개념을 넘어 기능적으로는 건강 유지 장치, 심리적으로는 정체성 보관소, 사회적으로는 관계의 플랫폼 역할로 바뀐다.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노인에게 집의 기능적인 측면은 회복이나 예방을 돕는 환경 역할을 한다. 젊었을 때는 집이 휴식과 생활 편의 기능만 있었다면 노년기에는 낙상 예방, 만성질환 관리, 인지 저하 대응 등 핵심 기능이 추가 되어야 한다. 다르게 표현하면, 노년기 집은 머무는 데서 나아가 몸의 약점을 보완하는 보조기 역할을 하게 된다.
노년기의 심리적인 측면은 매우 중요하다. ‘내가 나’라는 정체성을 확인하는 장소가 바로 집이다. 은퇴‧역할 변화‧상실 경험을 통해 집이 내가 누구인지 붙잡아 주는 장치가 된다. 집에서 내가 조절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을수록 안정감은 높아진다.
또 익숙한 물건이나 사진, 책, 냄새와 같은 개인 서사가 유지될수록 정서적 안정감에 도움이 된다. 역으로 돌봄이 늘어날수록 ‘내 공간이 침범당한다’는 감정이 생기기 쉽다. 집은 사적 영역의 보장이 되는 공간으로 확고히 자리 잡는다.
마지막으로 사회적 혹은 관계적 측면에서는 외로움을 조절하는 스위치 역할을 한다. 혼자 있고 싶을 때 숨을 쉴 수 있는 곳이자 외롭지 않게 언제든지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요양원이나 실버타운 등 노인들이 입주할 수 있는 시설은 이와 같이 불안을 줄이고, 예전 삶을 이어갈 수 있고, 관계가 형성될 수 있는 곳, 즉 자유를 즐기며, 편안함과 행복을 느끼며 위험 감소를 인식할 수 있는 장소라면 노인들에게 훨씬 인기 있고 찾는 장소가 되지 않을까 싶다.
집은 단순히 머무는 공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연령, 장애 여부, 의존도와 상관없이 모든 거주자에게 시간과 공간이 함께 공존하는 중요한 공간인 것이다. 고령화 사회에 맞춰 앞으로 집의 개조는 인간 거주의 본질, 즉 자아 정체성 확립이 가능하도록 기능적이고, 심리적, 그리고 사회적 측면까지 고려해서 지속 가능하도록 설계하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
#노년의집 #AgingInPlace #집에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