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 '토정비결' 작가 이재운의 분노...나는 지금 저들이 두렵다

평택 소사동에 백성들이 스스로 돈을 모아 세운 대동법 기념비

2026-02-27     최보식

[최보식의언론=이재운 '토정비결' 작가]

김육(왼쪽), 경부고속도로 현장의 박정희(오른쪽)

동기가 선하다고 해서 그 결과까지 항상 선한 것은 아니다. 역사는 때로 가장 뜨거운 선의가 가장 차가운 파멸을 불러왔음을 냉정하게 기록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를 뒤덮은 '이재명표 기본소득'이라는 배급의 물결은 당장 주머니를 채워주는 달콤한 유혹처럼 보이지만, 그 끝에는 자립 의지의 실종과 재정 파탄이라는 낭떠러지가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이미 뼈아픈 역사를 겪었다. 돈 한 푼 없던 '궁도령(宮이 아니라 窮)' 대원군 이하응과 그의 아들 고종이 틀어쥔 정권은 나라 경제를 일으킬 생각 대신, 생산성 하나 없는 겉치레에 불과한 경복궁 중건에 국운을 걸었다.

당시 조선의 한 해 세입은 4백만 냥에서 5백만 냥 남짓이었다. 그런데 이들은 국고를 털어 현금 8백만 냥을 잡고, 나아가 원납전으로 빼앗은 기부금, 강제 노동, 전국에서 끌어모은 목재까지 합쳐 무려 1천만 냥이 넘는 거액을 이 미친 짓에 쏟아부었다. 

지금의 가치로 환산하면 나라의 2년 치 예산을 통째로 궁궐을 짓는 데에 박아 넣은 셈이다. 그래도 돈이 모자라자 가짜 돈인 '당백전'을 찍어 시장에 확 풀었다.

결과는 참혹했다. 물가는 오늘날의 아르헨티나처럼 솟구치고 민생 경제는 뭉개졌다. '땡전'이 돼버린 당백전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월급 줄 돈마저 없어 군대 5천 명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이 나라는 청나라와 러시아, 일본의 놀음판으로 전락했다. 

억지로 지은 그 화려한 궁궐에서 정작 고종은 오래 살지도 못했다. 지킬 군대가 없어 왕비가 일본인 칼에 맞아 죽는 걸 지켜봐야 했고, 자신은 러시아 공사관으로 달아나 다시는 경복궁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덕수궁에서 쓸쓸히 생을 마쳤다. 

만약 그 큰 돈으로 군대를 기르고 공업을 일으키는 데 썼더라면, 우리 근대사는 일본에 무릎 꿇는 비극을 겪지 않았을 것이다. 하다 못해 그 쓸모없는 당백전이라도, 전쟁배상금으로 허덕이던 독일의 히틀러처럼 그 돈 빼돌려 아우토반을 짓고, 대공황으로 경제가 무너진 상황에서 프랭클린 루스벨트처럼 테네시강 유역에 20개가 넘는 댐을 지어 전기라도 생산했다면 조선의 운명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난 역사소설가니 역사로 보여준다.

우리 역사에서 가장 큰 감동 반전은 김육의 '대동법'에서 시작된다. 임진왜란 이후 폐허가 된 땅에서 백성들은 수없이 굶어 죽어 나갔다. 나라는 밑 빠진 독에 물 붓듯 구휼미를 풀었으나 허기는 가시지 않았다. 이때 김육은 정부 재정을 한 푼 들이지 않고도 경제 기적을 일궈내는 마법을 부렸다.

그는 나라에 필요한 물건을 백성에게서 강제로 뺏지 않고, 정부가 직접 돈(쌀)을 내고 사는 체계를 만들었다. 

정부가 시장의 '가장 큰 손님'이 되자 세상은 발칵 뒤집혔다. 사람들은 나라의 선택을 받기 위해 기술을 갈고 닦고, 관리는 더 좋은 물건을 싸게 사려 했으며, 물건 만드는 이는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생산성을 높였다. 이것이 바로 '안성맞춤'이라는 명품 유기를 탄생시키며 상공업의 꽃을 피운 원동력이다.

김육은 또 정부가 독점하고 있던 시장 개설권을 풀어 전국 군현 앞마당에 오일장을 열게 했다. 국가가 주는 구휼미 한 됫박에는 삶의 의지가 없었으나, 오일장에서 제 물건을 팔고 필요한 것을 사게 되자 '유무상통(有無相通)'의 기적이 일어났다. 굶주림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전쟁으로 지친 백성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나라의 시혜가 아니라, 자신의 노동이 가치가 되는 '시장'이었다는 사실을 김육은 꿰뚫어 본 것이다. 

평택 소사동에 백성들이 스스로 돈을 모아 세운 대동법 기념비는 지금도 그 눈물겨운 진실을 전하고 있다.

산업은 배급할 수 있는 쌀가마니가 아니다

오늘날 용인에 짓고 있는 반도체 팹(공장)은 60년간 쌓아온 기술과 인재가 그물망처럼 얽힌 현대판 '안성맞춤'의 현장이다. 

나는 1990년 용인으로 이사 온 뒤 반도체가 일본을 꺾는 순간을 보고, 지금 하이닉스와 삼성전자라는 두 거인이 세계 최대 규모의 팹을 짓는 걸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다.

산업은 살아있는 생명체와 같아서 가장 좋은 토양에 뿌리를 내린다. 이병철 회장이 용인을 택한 것은 물과 전력, 도로와 인재를 고려한 탁월한 선택이었다. 

그런데 이재명 정부는 이 정교한 생태계를 마치 창고에 쌓인 쌀가마니처럼 취급하며 새만금으로 떼어 옮기려는 배급의 논리를 앞세우고 있다.

과연 산업이 배급의 대상인가? 인삼이 잘 된다고 생산지를 옮길 수 있고, 청자가 잘 된다고 구울 곳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가? 반도체 공장은 수만 명의 인력과 부품망이 숨 쉬는 지능의 집합체다. 

산업을 정치 셈법으로 나누겠다는 발상은 김육 이전의 무지한 관청이 백성 물건을 강제 징수하던 시절로 돌아가겠다는 선언이다. 뿌리를 억지로 뽑아 옮긴 꽃은 결코 피지 않는다. 차나무나 양귀비를 한번 옮겨심어보라. 반드시 죽는다. 반도체는 차나 양귀비보다 훨씬 더 예민한 산업이다.

진정한 민생은 곳간을 헐어 나누는 시혜에 있지 않다. 북한은 공짜 의료와 주거를 약속했지만 세계 최빈국이 되고, 탈북민 대다수는 배급조차 받아본 적이 없다고 증언한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배급이라는 낡은 굴레는 국가의 미래를 갉아먹는 독이다.

박정희는 배급소를 세우는 대신 제철소를 짓고 고속도로를 깔았다. 베트남에서 청년들이 흘린 피로 번 돈을 기본소득으로 나눠주는 대신 경부고속도로를 닦았다. 당장은 배고프고 추웠을지 모르나, 그 선택이 옳았음을 나는 나이가 들어서야 겨우 알았다.

지금 내 고향 청양에서는 군민들에게 15만 원씩 기본소득을 준다고 한다. 나는 그것이 내 고향을 죽이는 독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런 산업 기반 없이 고추와 구기자 농사나 짓는 이들에게서 한 가닥 남은 자립 의지마저 뺏는 짓이다. 산업 조건이 안맞고, 기반이 없어 농사나 지을 수밖에 없는 그 땅에서 대체 어쩌란 말인가. 내 형제들은, 암치료 뒤 휴양 중인 형이 옛집에 머무는 것 말고는 다 나와 산다.

백성들의 피땀을 뽑아 지은 경복궁을 지킬 힘이 없어 러시아 공사관으로 달아나야 했던 고종의 비극을 잊지 말자. 당시 국가 예산의 두 배가 넘는 그 돈을 군대를 기르고 산업과 무역에 투자했더라면 우리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스스로 일어서는 사람들의 활기로 가득 찬 세상을 만드는 길, 그것이 김육이 전하고 박정희가 실천했던 눈물겨운 진실이다. 우리는 지금 배급의 달콤한 유혹 앞에서 그 위대한 정신을 다시 불러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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