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순 미선이 사건' 그뒤...FBI 한국지부장 증인석에 세우다

반미 감정을 잠재우기 위해 미국 정부가 자국민을 희생양으로 삼은 것 아닙니까

2026-02-24     엄상익 논설위원

[최보식의언론=엄상익 논설위원]

'이태원 미국 여대생 살인사건'은 연재 형식의 글입니다. 아래 관련기사부터 먼저 읽으면 좋습니다. (편집자)

2003년 4월 3일 오후 4시 30분. 서부지원 303호 법정. 증인석에 FBI 한국지부장이 올라와 앉았다. 단정한 양복을 입은 그는 약간 긴장한 표정이었다.

나는 지난 몇 달 간 이 사건의 배후를 추적해 왔다. 켄지의 자백서, FBI의 내부 보고서, 와이스 변호사가 콜린 파월 국무장관에게 보낸 항의서한. 그 모든 조각들이 하나의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2002년 여중생 장갑차 사망 사건 이후 들끓던 반미 촛불시위. 그 불길을 끄기 위해 미국이 던진 카드. '우리도 자국민을 한국 재판에 넘긴다'는 메시지. 켄지 스나이더는 그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도구였다.

그리고 그 공작의 실무 책임자가 바로 저 증인석에 앉아 있는 남자였다. 한국계 미국인. FBI 한국·일본·홍콩 지역 책임자. 그는 한국어를 완벽하게 구사했고, 한국 사법 시스템의 허점을 꿰뚫고 있었으며, 한국 고위층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뒤에 숨어 연출하는 그를 나는 공개 법정으로 끌어냈다. 그와 맞짱을 뜨고 싶었다. 그는 친일파 같은 근성을 가진 미국인 같았다. 한국 민족이면서 미국을 등에 업고 한국을 경멸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가 피리를 불면 한국의 사법이 춤출 것으로 착각하는 것 같았다. 그 오만이 친일파의 오만과 무엇이 다를까. 그걸 법정이라는 링 위에서 철저히 부숴주고 싶었다. 

용산경찰서에서 그가 나를 내려다보며 사건을 '설명'해주던 그날과는 달리, 이제 나는 질문을 할 권리를 얻었고 그는 답변해야 할 의무가 생겼다. 절차상 먼저 검사의 신문이 있었다.

"왜 이 사건에 관여하게 됐죠?"

"2001년 5월경 한국 주재 미국대사로부터 미국 여대생 살인사건에 대한 수사 지원을 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배경이 뭔가요?"

"죽은 제이미의 부모가 진정을 여러 차례 냈고, 미 국무성에서도 대사관에 한국 경찰 수사를 지원하라는 명령이 있었습니다."

"증인의 수사 지원은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나요?"

"한국 경찰과 미군 수사기관 간의 통역이었습니다."

검사는 더 묻지 않았다. 그의 편에 깊이 개입하고 싶지 않은 태도였다.

"변호인 신문하시죠."

재판장이 말했다. 드디어 링 위에서 붙는 순간이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증인은 어떻게 FBI 요원이 됐나요?"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민 가서 중학교때부터 거기서 공부했습니다. 학교를 졸업한 후 FBI에 들어갔습니다."

"FBI 내에서 어떤 직책입니까?"

"한국, 일본, 홍콩을 담당하는 지역 책임자입니다."

방청석에서 기자들이 펜을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노트북의 키보드를 두드리기도 했다.

"한국·일본·홍콩, 세 나라를 담당하는 FBI 최고 책임자가 웨스트버지니아 주 헌팅턴이라는 작은 도시까지 직접 가서 스무 살짜리 여대생을 조사했습니다. 정상적인 FBI의 업무였습니까?"

"이 사건이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중요했습니까? 살인사건 자체입니까, 아니면 다른 이유입니까?"

그가 잠시 망설였다.

"살인사건이 중요했습니다."

"일 년 동안 미제로 남아 있던 사건이 갑자기 2002년 초에 재수사된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그가 잠시 멈칫했다. 내가 계속했다.

"2002년 2월, 켄지를 조사하기 직전이 어떤 시기였는지 기억하십니까?"

"기억나지 않습니다."

"2002년 6월, 미군 장갑차가 두 명의 여중생을 치어 사망하게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해 11월 미군 군사법원이 운전병에게 무죄를 선고하자 한국에서 대규모 촛불시위가 일어났습니다. 기억하십니까?"

"들었습니다."

"그 시위가 얼마나 컸는지 압니까?"

"규모가 컸다고 들었습니다."

"수십만 명이 거리로 나왔습니다. 대한민국 전역에서 반미감정이 들끓었습니다. 그 시기에 증인이 속한 주한 미국대사관은 어떤 상황이었습니까?"

그가 입을 다물었다.

"답변해 주시죠."

"긴장된 상황이었습니다."

나는 서류 가방에서 FBI 내부 보고서 사본을 꺼냈다.

"이것은 증인이 2002년 2월 7일 FBI 본부에 보낸 보고서입니다. 여기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언론과 FBI 본부와 국무성 및 미국 상원의원들 앞으로 보낸 편지를 통해서 희생자의 가족은 압력을 계속했다. 펜실베이니아 상원의원 스펙터는 한국 방문 기간 중 김대중 대통령에게 관심을 표명했다.' 이게 사실입니까?"

"그렇습니다."

"스펙터 상원의원이 김대중 대통령을 만나 이 사건을 거론했다는 겁니까?"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상원의원이 외국 대통령에게 특정 살인 사건의 수사를 요구한다? 그게 정상적인 외교 관행입니까?"

그가 대답하지 않았다.

"증인, 스펙터 상원의원은 누구의 요청으로 김대중 대통령을 만났습니까?"

"그건 제가 알 수 없습니다."

"국무부입니까, 대사관입니까, 아니면 FBI입니까?"

"모릅니다."

나는 다른 서류를 꺼냈다. 와이스 변호사가 콜린 파월 국무장관에게 보낸 서한이었다.

"켄지의 미국 변호사 와이스는 콜린 파월 국무장관에게 이렇게 썼습니다. '스펙터 상원의원을 포함한 미국의 관료들은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한국의 해당 기관들에 압력을 가했습니다. 그들은 죄인을 지명했고 그 사람만이 재판에 회부됐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증인, 이게 무슨 뜻입니까?"

"그건 그 변호사의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개인적인 의견입니까? 그렇다면 왜 FBI 본부 보고서에 상원의원과 국무성의 압력이 명시되어 있습니까?"

방청석이 술렁였다.

"증인, 솔직하게 답변하십시오. 이 사건의 재수사는 누가 지시했습니까?"

"죽은 제이미의 부모가 계속 진정을 냈습니다."

"그것만으로 일 년 동안 묻혀 있던 사건이 갑자기 국무부, 상원의원, FBI 본부까지 움직입니까?"

"유족의 요구가 강했습니다."

"아닙니다. 다른 이유가 있었습니다."

나는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2002년 말, 한국의 반미 감정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미국 정부는 메시지가 필요했습니다. '우리도 자국민을 한국 재판에 넘긴다'는 메시지. 그게 이 사건의 본질 아닙니까?"

나는 FBI 내부 보고서를 다시 펼쳤다.

"증인은 켄지를 조사하기 전에 FBI 본부의 프로파일러들과 상의했습니다. 그들은 범죄 현장만 보고 범인의 특성을 추론하는 전문가들입니다. 그들이 뭐라고 했습니까?"

"동성애 관련 우발적 범행일 가능성을 제시했습니다."

"다시 말해, 켄지를 만나기 전에 이미 범행 동기가 결정되어 있었다는 겁니까?"

"그게 아니라..."

"그렇습니다. 증인은 프로파일러의 의견을 받고 켄지를 찾아갔습니다. 동성애라는 동기에 맞춰서 자백을 받으려고."

나는 공격의 방향을 바꿨다.

"증인은 어떤 자격으로 켄지를 조사했습니까?"

"미 연방수사국 요원으로서입니다."

"FBI는 미국 내에서만 수사권을 가집니다. 맞습니까?"

"원칙적으로 그렇습니다."

"한국에서는 수사권이 없죠?"

"없습니다."

"미국으로 돌아간 켄지에 대해서도 수사권이 없습니다. 켄지는 웨스트버지니아 주 헌팅턴에 살았고, 증인은 한국에 주재하는 FBI입니다. 관할권이 없지 않습니까?"

"정보 수집은 할 수 있습니다."

"정보 수집과 조사는 다릅니다. 증인은 켄지를 호텔 방에서 사흘간 조사했습니다. 영장도 없이, 관할권도 없이, 변호사 입회도 없이. 이게 적법합니까?"

"우리는 인터뷰를 했을 뿐입니다."

"인터뷰입니까? 켄지에게 범행을 시인하라고 압박하고, 거짓말 탐지기 전문가까지 동원하고, 자백서에 서명을 받았습니다. 이게 인터뷰입니까?"

그가 말문이 막혔다.

"증인, 미란다 원칙을 압니까?"

"압니다."

"묵비권, 변호사 선임권을 고지해야 합니다. 켄지에게 고지했습니까?"

"하지 않았습니다."

"왜입니까?"

"필요없다고 판단했습니다."

"필요없다고요? FBI 요원이 피의자를 조사하면서 미란다 원칙이 필요 없습니까?"

"인터뷰였기 때문입니다."

나는 냉소를 지었다.

"참 편리한 논리입니다. 자백을 받을 때는 '조사'고, 법적 책임을 물을 때는 '인터뷰'다. 증인, 켄지가 변호사를 부르겠다고 했을 때 뭐라고 했습니까?"

"변호사를 선임하면 인터뷰를 계속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협박한 겁니다."

"아닙니다."

"스무 살짜리 여대생에게 '변호사를 부르면 네가 불리하다'는 암시를 준 거, 그게 협박 아닐까요?"

나는 방향을 바꾸어 계속 물었다.

"증인, 켄지가 호텔 방을 나갔다 다시 돌아왔습니다. 왜 돌아왔다고 생각합니까?"

"본인이 결정한 일입니다."

"켄지는 증인 일행에게 '나를 살인자로 보느냐'고 여러 번 물었습니다. 이게 본인이 결백하다는 강력한 항변 아닙니까?"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죄가 있는 사람이 수사관에게 '나를 의심하느냐'고 따지러 돌아옵니까?"

"..."

"켄지는 자신이 무죄라고 확신했기 때문에 돌아온 겁니다. 그런데 증인은 그 순진함을 이용했습니다."

나는 녹취록을 들었다.

"거짓말 탐지기 전문가 디비티스가 켄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일을 쉽게 갈래, 어렵게 갈래?' 이게 무슨 뜻입니까?"

"저도 정확히는..."

"살인의 고의를 입증하기 어려우니 우발적 감정 범행으로 몰겠다는 뜻 아닙니까?"

"그렇게 해석할 수도..."

"해석이 아닙니다. 사실입니다. 증인 일행은 처음부터 시나리오를 짜놓고 켄지를 거기에 끼워 맞췄습니다."

나는 계속 질문으로 치고 들어갔다.

"증인, 켄지가 범행 당시 입었던 옷과 신발에서 혈흔이 발견됐습니까?"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죽은 제이미는 온몸이 피투성이었습니다. 벽에까지 피가 튀었습니다. 범인의 옷과 신발에 피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켄지의 옷에는 피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켄지가 옷을 갈아입었을 수 있습니다."

"갈아입었다는 증거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켄지는 사건 다음 날 아침까지 같은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룸메이트도, 같은 방에 있던 학생들도 모두 목격했습니다. 아무도 켄지의 옷에서 피를 보지 못했습니다."

나는 사진을 꺼냈다.

"죽은 제이미의 얼굴과 가슴에 구두 자국이 선명하게 찍혀 있습니다. 법의학자는 군화 밑창과 유사하다고 했습니다. 켄지의 신발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브라운 색 일반 구두였습니다."

"군화가 아닙니다. 그런데 시신에는 군화 자국이 찍혀 있습니다. 이게 무엇을 의미합니까?"

"..."

"범인이 따로 있다는 뜻입니다."

내가 확인시켜 주었다. 계속 그를 추궁해 들어갔다.

"여관 주인은 새벽 3시 30분경 103호실에서 백인 남자가 나가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바지에 피가 묻어 있었다고 했습니다. 이 남자는 누구입니까?"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확인하려고 노력은 했습니까?"

"했습니다."

"어떻게 했습니까?"

"미군 기지 내에서 조사했습니다."

"찾았습니까?"

"찾지 못했습니다."

"왜입니까? 찾으려고 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까?"

"..."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다른 진술서를 들었다.

"102호실의 핀란드인 마리아와 토마스는 새벽에 여자의 신음 소리와 '렛츠 고(Let's go)'라는 남자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남자 목소리입니다. 켄지는 여자입니다.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복도나 다른 층에서 들렸을 수 있습니다."

"마리아는 '103호실에서 들렸다'고 명확하게 진술했습니다. 그리고 '여자가 남자에게 맞는 소리'라고 했습니다."

"..."

"증인, 이 모든 증거들은 범인이 남자임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왜 켄지만 조사했습니까?"

"-----"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증인은 용산경찰서 강력반에서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요즘 한국에서 미국 장갑차가 여중생을 죽게 한 걸 가지고 촛불시위가 대단한 걸 알고 있습니다. 저는 이 사건을 통해 미국이 자국민이라도 잘못이 있으면 해당 국가로 보낸다는 입장을 한국인들도 알았으면 합니다. 그게 미국과 우리 대사님의 뜻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말한 기억이 있습니까?"

"..."

"답변하십시오."

"그런 취지로 말한 적이 있을 수 있습니다."

"'미국과 우리 대사님의 뜻'이라고 했습니다. 누구의 뜻입니까?"

"주한 미국 대사관의 뜻입니다."

"정확히 누구입니까? 대사입니까?"

"..."

"증인, 이 사건은 처음부터 정치적 목적이 있었던 것 아닙니까? 반미 감정을 잠재우기 위해 미국 정부가 자국민을 희생양으로 삼은 것 아닙니까?"

방청석의 기자들이 부지런히 노트북의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나는 FBI 한국지부장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증인, 켄지 스나이더는 정말 살인자입니까? 아니면 미국 정부가 한국에 던진 꽃놀이 패입니까?"

그의 표정이 변하기 시작했다.

"답변하십시오."

어느새 그가 사나운 눈빛이 되어 나를 보고 있었다.

"지금 나한테 뭘 묻고 있는 겁니까?"

그의 어조가 높아졌다.

"난 도대체 당신이 뭘 질문하는지 모르겠어. 난 살인사건을 조사했고 범인을 한국에 넘겼을 뿐이야."

그는 노골적으로 화를 내고 있었다. 나는 그를 보면서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제가 묻는 것은 간단합니다. 미국인이 미국인을 살해했다는 내용인데 굳이 한국으로 이송한 이유가 뭔가요?"

"한국에서 살인이 일어났기 때문에 한국법에 따라 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아랍이나 아프리카에서 미국인들 사이에 범죄가 발생하면 모두를 그 나라로 보냅니까?"

"당연히 아랍이나 아프리카로 보내 재판을 받게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내가 미소 지었다.

"저는 증인께 분명히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당신의 연출 대로 한국의 사법부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요."

그가 입을 굳게 다물었다. 방청석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의 신문이 끝났다. 내가 재판장에게 말했다.

"다음으로 호텔방에서 조사했던 군 수사관이었던 맨스필드를 증인으로 신청하겠습니다."

재판장이 증언석의 FFBI지부장에게 물었다.

"맨스필드는 지금 어디 있습니까?"

"미국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법정에 증인으로 나올 수 있을까요?"

"출장비만 주면 올 수 있을 겁니다."

"그러면 법원에서는 맨스필드에 대한 소환장을 어디 보내면 되죠?"

"주한 미대사관으로 보내주십시오."

다음 증인으로 맨스필드가 결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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