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내란 무기징역에, 한동훈에게 '기회' 올까?

지금 보수에게는 왜 피터 드러커 같은 인물이 필요할까

2026-02-20     최보식

[최보식의언론=한정석 강호논객]

채널A 캡처

아무리 윤석열, 장동혁이 대안이 아니라고 해서, 한동훈이 '대안'이라는 건 똑같이 정치적 삼룡이들 생각이다.

지금 보수에게 필요한 것은 인물이 아니라 새로운 정치적, 이념적 지형이다. 이념과 가치의 진지를 먼저 확보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한 사상적 진지가 자궁이고 인물은 자녀들인 것이다.

보수의 사상적 모태가 기형이고 엉망이니, 거기서 태어나는 자식들이 정상일 리가 없다.

보수의 낡은 이념과 가치의 지형을 넘어서야 한다.

무엇보다 '반공'이라는 잣대로 다양성 가치를 거부하는 구태적 작태들이다.

사회주의를 반공으로 배척할 것이 아니라 정치적 공동체주의를 수용하라는 것이고, '사회가 개인보다 중요하다'는 여러 형태의 사회주의와도 진정성을 가지고 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먼저 개인주의와 자유주의에 대해 확실한 이해와 신념을 가져야 한다. 진정한 자유주의자만이 진정한 사회주의자들과 대화할 수 있다. 정치에 뜻이 있고 관심이 있다면 개인과 사회, 자유와 평등의 문제에 천착해서 자신의 세계관으로 확립해야 한다.

자유주의가 200년 역사를 가졌다면 사회주의 역시 그만한 역사를 가지고 현재에 임하는 사상이다. 자유주의와 사회주의는 전체주의에 맞서 온 근대 이념의 쌍생아다.

다시 말해 근대가 종식되기 전에는 자유와 평등의 문제는 종식되지 않으며 자유주의와 사회주의도 종식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반공주의가 곧 자유주의는 아니다. 사회주의가 곧 전체주의인 것도 아니다.

자유주의는 얼마든지 생태주의자들과 대화할 수 있고 생태주의자들은 얼마든지 자유주의자들과 연대할 수 있다. 피터 드러커가 그런 주인공이다. 보수주의자들이 그런 중심을 잡을 수 있다.

한국 보수에 보수주의가 없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문제지만, 그런 보수주의를 친미 기독교 보수주의로만 국한하는 것도 문제다. 계시와 이성은 조화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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