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된 대통령'을 또 형사 처벌하는 나라!... 근본적 질문 던지다

피고인 윤석열에 대해서는 무기징역을 선고합니다

2026-02-19     최보식

[최보식의언론=김정기 세계스마트시티기구 사무총장]

채널A 캡처

아래 글은 본지의 입장이 아닙니다. 다양한 관점을 제공하기 위해 게재합니다. (편집자)

“피고인 윤석열에 대해서는 무기징역을 선고합니다.”

지귀연 판사의 음성은 차분했지만, 그 한 문장은 대한민국 정치사에 깊은 파문을 남겼다. 나는 그 장면을 바라보며 개인의 형량을 넘어서는 질문을 떠올렸다.

권력의 최종 심판자는 누구인가.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는 헌정 질서를 흔든 중대한 정치적 오판이었다. 그 책임은 헌법재판소의 만장일치 탄핵 인용으로 이미 최고 수준에서 판단되었다.

그럼에도 동일한 사안이 다시 형벌 체계의 최상위 범주로 다뤄지며 중형이 선고되었다는 사실은 단순한 양형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위헌적 계엄 선포에 대한 정치적 책임이 이미 헌정 절차를 통해 최고 수위로 확정된 사안이 다시 형벌의 구조 안으로 흡수될때, 민주주의 권력 구조의 경계선은 어디에 설정되어야 하는가.

민주주의는 하루 아침에 무너지지 않는다. 어느 날 갑자기 헌법이 폐기되고 군홧발이 거리를 점령하는 방식으로 시작되지도 않는다. 탱크가 의회를 에워싸지 않아도 헌법은 남아 있고, 법원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권력의 실질적 중심이 서서히 이동할 때, 헌정 질서는 조용히 흔들린다. 그것은 언제나 합법의 형식을 입고 진행된다. 

삼권분립의 균형이 서서히 무너지고, 정치적 갈등의 종결 권한이 선거가 아닌 사법으로 넘어갈 때, 우리는 그것이 체제의 변곡점임을 깨닫지 못한 채 시대를 건너게 된다. 민주국가에서 독재국가로 가는 것이다.

'정치 검사'로 출발한 윤석열은 대검 중수과장에 불과한 인물이었다. 문재인 정부 시기 ‘적폐청산’ 수사의 전면에 서며 4계급 특진이라는 전례 없는 승진을 거쳐 7년 만에 검찰총장에 올랐다. 행정 경험과 정치적 수련이 충분히 축적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는 곧바로 대권 주자로 부상했다.

이는 점진적 성장의 결과라기보다 정치적 격랑 속에서 급부상한 사례에 가까웠다. 검찰 권력은 단죄의 논리에 서 있지만, 국가 권력의 운영은 통합과 절제의 논리에 서야 한다. 이 두 영역의 차이를 충분히 내면화하지 못한 채 행사된 권력은 결국 극단적 판단으로 이어졌고, 그 귀결은 비상계엄 선포라는 헌정 파괴에 가까운 결정이었다. 

그를 대통령 후보로 선택한 보수 진영의 결정 또한 깊은 성찰의 대상이다. 내부에서 지도자를 길러내지 못한 채 외부의 상징적 인물을 ‘용병’처럼 수입해 권력의 정점에 세운 방식은 구조적 취약성을 드러냈다.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보수 언론이 조성한 과도한 기대와 킹메이커라는 오만, 후보 검증 책임을 다하지 못한 보수 정당 지도부의 무능, 그리고 숙고보다 열광을 택한 당원들의 집단적 판단 오류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이는 특정 개인의 실패를 넘어 보수 정치 생태계 전반의 문제였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 오류가 교훈으로 남지 못한 채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헌법재판소의 만장일치 탄핵 인용으로 이미 헌정적 판단을 받았다. 탄핵은 정치적 책임을 묻는 절차이고, 파면은 최고 수준의 제도적 징계다. 그 지점에서 정치적 책임은 헌정 질서 안에서 일단락되었다.

1974년 워터게이트 사건 이후, 제럴드 포드(Gerald Ford)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 리처드 닉슨(Richard Nixon)을 사면했다. 당시 미국 사회는 워터게이트 스캔들(Watergate scandal)로 극심하게 분열되어 있었다. 포드의 선택은 거센 비판을 감수한 결단이었지만, 핵심은 분명했다. 전직 대통령을 장기간 형사 절차에 묶어두는 것이 과연 국가의 통합과 제도의 안정을 돕는가에 대한 판단이었다.

그 결정의 역사적 평가는 지금도 엇갈린다. 그러나 한 가지 교훈은 분명하다. 민주주의는 책임을 묻되, 그 방식이 공동체의 결속과 제도의 안정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다. 

처벌의 확대가 정의의 완성처럼 보일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이 정치적 갈등을 장기화하고 권력 교체의 통로를 위축시킨다면, 국가는 더 깊은 균열로 들어갈 수 있다. 책임을 묻는 일과 공동체를 유지하는 일은 때로 긴장 관계에 놓인다. 지도자는 바로 그 지점에서 판단해야 한다.

그럼에도 한국에서는 동일 사안을 다시 형사적으로 ‘내란’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이 진행되었고, 1심에서 무기징역이 선고되었다. 이는 단순한 중형 선고를 넘어선다.

이미 정치적 책임이 최고 수위로 부과된 사안에 대해 다시 최상위 형사 규정을 적용하는 것은, 헌정적 책임과 형사적 책임의 경계를 재설정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정치적 판단의 영역이 형벌 체계로 흡수되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특정 판사의 의도가 아니라 구조다. 서울고법에 내란 전담 재판부를 설치하고, 대법원의 인적 구성을 급격히 확대하는 흐름이 병행된다면, 사법 판단은 정치 지형 전체에 구조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형식적으로는 합법일 수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위기는 언제나 합법의 외양을 통해 진행된다.

바이마르 공화국은 하루 아침에 무너지지 않았다. 헌법 제48조의 비상권 조항은 헌법 안에 존재했고, 대통령의 긴급명령은 합법적 수단이었다. 의회 기능이 약화되고 비상권이 반복적으로 사용되며 사법적 정당화가 축적되는 과정 속에서 권력의 중심은 점차 이동했다.

결정적 순간은 예외가 일상으로 고착될 때였다. 사법부는 형식적으로 존속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정치적 결정의 승인 기관으로 기능하기 시작했다. 절차는 남았으나 균형은 사라졌다. 민주주의는 그때 이미 궤도를 이탈하고 있었다.

튀르키예 역시 군사 쿠데타의 전통적 장면이 아니라 제도 개편과 사법 재편을 통해 권력 집중이 진행되었다. 비상사태 선포 이후 대규모 사법 인사 교체와 특별재판 구조 도입이 이루어졌고, 헌법 개정을 통해 대통령 권한이 강화되었다. 사법 기관 구성에 대한 영향력도 확대되었다. 사법부는 존재했지만 독립성은 약화되었고, 선거는 유지되었지만 경쟁 조건은 기울어졌다. 권력은 법의 형식을 통해 안정화되었다. 이것이 독재국가로 가는 경로다.

그런데 보다 심각한 문제는 이재명 대통령과 민주당이 장기 집권 시나리오의 일환으로 이미 탄핵으로 종결된 사건을 다시 형사적 ‘내란’ 프레임으로 확장하고, 그 과정에서 사법 구조를 재편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정치의 사법화(judicialization of politics)를 목격한다. 정치적 갈등이 점차 형벌 구조 안으로 이동하고, 사법기관이 권력의 도구로 전락하여 정치적 종결 권한을 행사하게 되는 현상이다.

정치적 경쟁이 선거가 아닌 형벌로 정리되는 관행이 축적될 경우, 사법부는 정치 갈등의 종결 기관으로 기능하게 되고, 권력 교체의 통로는 심리적으로 위축되며, 형벌권은 정치적 억제 장치로 작동할 수 있다.

‘내란’이라는 최상위 형사 규정을 정치적 서사와 결합해 확장하는 방식이 반복된다면, 그것은 단기적 처벌을 넘어 정치 지형을 구조적으로 고정시키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 그 축적은 장기 권력화의 제도적 기반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독재는 선언으로 시작되지 않는다. 군사 독재와는 달리 민간 독재는 스스로를 독재라 선언하지 않는다. 형벌이 정치의 언어가 될 때, 사법 재편이 권력 안정의 수단이 될 때, 예외가 관행으로 굳어질 때 시작된다. 헌정 파괴는 총성이 아니라 판결문 속에서 진행될 수 있다. 형식은 남고, 균형은 무너진다.

그러나 동시에 보수 정당이 져야 할 책임 또한 분명하다.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명확히 사과하고,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 결정을 겸허히 수용해야 한다. 정치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채 형사 판단만을 문제 삼는 태도는 스스로의 정당성을 약화시킬 뿐이다. 다만 정치적 책임과 형사적 책임의 경계는 엄격히 구분해야 한다.

탄핵으로 종결된 정치적 판단을 다시 최상위 형사 범죄로 확장하는 문제는 법적 구성요건의 충족 여부, 책임의 비례성, 그리고 권력분립의 균형이라는 헌정적 기준에 따라 냉정하게 검토해야 한다. 감정과 보복의 논리가 아니라, 법치와 절제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

민주당에도 분명히 경고한다. 다수 의석은 견제 없는 지배권이 아니다. 숫자의 우위를 방패 삼아 반대 세력을 압박하고 제도를 일방적으로 재편한다면, 그것은 민주주의의 이름을 빌린 권력 집중일 뿐이다.

민주주의는 상대를 제거해 완성되는 체제가 아니다. 갈등을 제도 안에서 정리하고, 다시 공정한 경쟁으로 되돌려 보내는 구조 위에서 유지된다. 권력은 나뉘어야 하고, 스스로를 절제해야 하며, 무엇보다 언제든 교체될 수 있어야 한다. 다수를 가졌다고 해서 영구히 통치할 권리까지 위임받은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를 위해 청춘을 바쳤다고 말하는 세력이, 지금은 입법 권력을 앞세워 그 민주주의의 토대를 허물고 있다.

결론이다. 권력의 최종 심판자는 언제나 국민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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