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간(强姦)의 정의를 바꾼 지젤 펠리코
"수치심은 가해자의 몫이다"
[최보식의언론=이병태 카이스트 명예교수]
인간은 얼마나 사악할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신을 의심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세상에 존재하는 악과 고통이다. 소위 신정론(神正論)의 논란이 그것이다.
세상에 악마적 존재들을 상기시켜준 사건 중 하나가 프랑스의 '지젤 펠리코(Gisèle Pelicot) 사건'이다.
이 사건은 한 개인의 비극을 넘어, 프랑스 사회와 전 세계에 '성적 동의', '강간 문화', 그리고 '연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 역사적 사건이다.
프랑스의 도미니크 펠리코가 10년 동안 아내인 지젤에게 약물을 투여해 의식을 잃게 만든 뒤, 인터넷을 통해 모집한 수십 명의 낯선 남성들에게 아내를 성폭행하게 한 사건이다. 2020년 그가 마트에서 여성들의 치마 속을 몰래 촬영하다 적발되면서 이 끔찍한 범죄의 전말이 드러났다.
"수치심은 가해자의 몫이다."
지젤 펠리코는 이 사건의 재판을 비공개로 진행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수치심이 진영을 바꿔야 한다"며 재판을 대중에 전면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이를 통해 성범죄 피해자가 숨어 지내야 한다는 사회적 통념을 깨뜨렸다. 그녀는 당당히 법정에 출석하며 가해자들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가해자들은 평범한 이웃, 소방관, 언론인 등 우리 주변의 평범한 남성들이었다. 이들 중 상당수는 "남편의 허락을 받았으니 강간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며, 여성의 주체적 동의가 없는 행위가 명백한 범죄임을 인지하지 못하는 사회적 무지를 드러냈다.
현재 프랑스 또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형법은 강간을 판단할 때 '폭력, 강압, 위협, 기습' 여부를 중시한다. 하지만 이 사건은 '명시적 동의의 부재' 자체가 강간의 핵심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를 폭발시켰다. 유럽 내 여러 국가가 도입 중인 'No Means No' 혹은 'Yes Means Yes' 모델로의 법 개정 논의가 급물살을 타게 되었다.
가해자들이 괴물이 아닌 '평범한 가장'들이었다는 사실은, 성폭력이 특수한 범죄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왜곡된 성인식과 권위주의적 가부장제 속에서 누구든 가해자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인간이 신의 형상을 따라 만든 존재라는 이상적 이야기의 허구성을 폭로한다.
지젤 펠리코는 프랑스뿐만 아니라 전세계 페미니즘 운동의 새로운 상징이 되었다. "지젤에게 경의를(Soutien à Gisèle)"이라는 슬로건과 함께 수많은 시민이 거리로 나왔으며, 이는 '침묵하지 않는 피해자'들의 강력한 연대를 구축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사건은 칸트적 의미에서 인간을 '수단'으로만 대우한 극단적인 사례다. 남편은 아내를 자신의 성적 환상을 충족시키거나 타인과 거래하는 '물건'으로 전락시켰다. 획일적인 사회적 규범(가부장적 소유권)이 한 개인의 인격과 자유를 어떻게 완전히 말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비극적인 예시다.
"나는 내가 당한 일을 모든 여성이 알기를 원한다. 그래서 더 이상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 지젤 펠리코
펠리코가 아내를 학대하도록 초대한 다른 50명의 남성들도 그와 함께 강간 또는 폭행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어제 용기있는 피해자 펠리코의 회고록 "삶에 대한 찬가(A Hymn to Life)"가 22개 언어로 출간되었다. 이 책에서 그녀는 50년 동안 함께 살아온 남편의 정체를 알게 된 악몽 같은 경험을 이야기한다. 그녀의 용기로 이제 강간에는 동의 없이 이루어진 모든 성행위가 포함된다.
지젤 펠리코 사건에서 남편 도미니크 펠리코의 행위는 단순한 일탈을 넘어 심리학, 사회학, 그리고 법철학적 측면에서 매우 충격적이고 복합적인 분석의 대상이 되고 있다.
1. 심리학적 분석: 통제욕과 소유욕의 극단화
전문가들은 그의 행동에서 타인을 인격체로 보지 않고 자신의 욕망을 위한 '도구'나 '물건'으로 전락시키는 비인격화(Dehumanization) 과정을 포착한다. 아내에게 약물을 투여해 의식을 잃게 만드는 행위는 피해자의 주체성을 완전히 거세하고, 오직 자신의 의지대로만 움직이는 '살아있는 인형'을 만드려는 극단적인 통제욕의 발현이다.
본인이 직접 가해하는 것을 넘어 타인들을 끌어들여 그 광경을 지켜보고 기록(촬영)한 점은, 범죄의 실행보다 '상황을 설계하고 지배하는 것'에서 더 큰 쾌감을 느끼는 병리적 특성을 보여준다.
2. 사회학적 분석: '가부장적 소유권'의 왜곡된 발현
이 사건은 '남편은 아내의 몸에 대한 권리를 갖는다'는 과거 가부장제의 악습이 현대 사회에서 어떻게 범죄로 변질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도미니크는 가해 남성들에게 "내 아내이니 괜찮다"라고 말하며 범죄를 정당화했다. 놀라운 점은 많은 가해자가 이 논리를 받아들였다는 것인데, 이는 여성을 남성의 부속물로 보는 가부장적 소유권 인식이 여전히 잠재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이중적 생활(Mask of Sanity)의 그는 평소 주변에서 '친절한 남편', '자상한 할아버지'로 통했다. 이는 사회적 규범을 완벽히 연기하면서 뒤에서는 극단적인 반사회적 행위를 일삼는 '평범한 악의 가면'을 분석하는 사례가 된다.
3. 철학적 분석: 주체성의 완전한 말살칸트의 정언 명령인 "인간을 결코 수단으로만 대하지 말라"는 원칙을 정면으로 위반했다. 그는 아내라는 '고유한 세계'를 자신의 성적 환상을 충족시키기 위한 '거래 가능한 재화'로 취급했다. 다양성과 자유주의의 핵심은 '개인의 주체적 의사 결정(동의)'에 있다. 그는 약물을 통해 피해자의 의사 결정 능력 자체를 물리적으로 파괴함으로써,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근본부터 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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