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종일 기생충썰] 인체 감염 실험 위해 직접 기생충을 삼키자 5일 뒤?
한국, 일본, 중국, 러시아에만 분포하는 호르텐스극구흡충
[최보식의언론=채종일 메디피스 이사장(서울대 의대 명예교수)]
속이 불편한 증상을 자주 경험했던 45세 여자 환자는 건강검진 도중 위내시경에서 위벽 하부에 기생충 한 마리가 붙어 움직이고 있어 클리퍼(clipper)를 이용해 제거했다는 말을 의료진으로부터 들었다. 흡착 부위는 빨갛게 부어올라 있었고 궤양이 형성되어 있었으며 피가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었다고 하였다. 늘 소화가 잘 안되는 느낌이 있었고 특히 위가 비어 있는 경우에는 공복통이 나타났으며, 식사 후 30분에서 1시간 정도 되면 속이 더부룩하고 쓰린 느낌을 자주 경험했다고 하였다.
이 환자에게서 끄집어낸 기생충은 길이 1cm 정도인 나뭇잎 모양의 흡충으로 구흡반(머리 부분) 주변에 작은 침이 27개 배열되어 있는 극구흡충류(棘口吸蟲類; echinostomes)의 하나였다. 구체적인 종은 호르텐스극구흡충(Isthmiophora hortensis)으로 확인되었다.
이 흡충은 한국, 일본, 중국, 러시아에만 분포하며 자연계에서 쥐, 고양이, 개 등 포유동물을 종숙주로 한다. 미꾸라지(일명 미꾸리), 얼룩동사리, 버들치 등 민물고기를 주요 중간숙주로 하나 드물게는 개구리, 올챙이, 도롱뇽도 중간숙주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극구흡충류의 대다수는 조류를 종숙주로 하고 있어 포유류인 사람에 있어서는 그리 흔한 기생충이 아니지만 이 흡충은 사람에게 자주 감염을 일으키는 종류로 판명되었다.
호르텐스극구흡충은 1926년 일본의 Asada S. 박사가 집쥐로부터 처음 발견하여 명명하였다. 세계 최초 인체 감염도 일본에서 발견되었는데 1974-1976년 Tani S. 등과 Arizono N. 등이 미꾸라지 회를 먹은 환자 15명(아키타현 거주)과 4명(오사카 또는 고베 거주)에서 각각 감염을 확인한 것이었다. 일본에는 미꾸라지 회를 파는 식당이 다수 있었다고 하며 진단된 모든 환자가 미꾸라지 회를 먹었다고 하였다.
논문을 보면 미꾸라지를 삼킨다는 표현이 있는 것으로 보아 통째로 먹기도 하는 것 같다. 곧이어 약 30명의 환자가 더 발생한 후 미꾸라지 회를 팔던 식당들은 끓인 미꾸라지나베와 추어탕을 파는 식당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미꾸라지만은 날로 먹지 않는다는 전통이 있는데 기생충 감염으로 고생한다는 것을 일찍이 경험했던 탓인지도 모른다.
국내의 첫 공식적인 보고는 경성제국대학 의학부 박태채 박사(영문명 James T. Park)가 1938년 서울(당시 경성)의 길 잃은 개 5마리에서 호르텐스극구흡충 감염을 확인한 것이었다. 그 후 1964년과 1981년 서울대 의대 고 서병설 교수 연구팀이 철원, 금화, 청평, 파주, 포천, 서울, 가평, 남양주, 영월, 중원, 하동 및 나주 등지에서 잡은 집쥐에서 호르텐스극구흡충 감염을 확인하였다. 성균관대 의대 조승열 명예교수는 1981년 서울대 의대 조교수로 근무하던 중 의정부에서 잡은 길 잃은 개 4마리로부터 호르텐스극구흡충 감염을 보고하기도 했다.
인체 감염을 처음 발견한 것은 1983년 서울대 의대 서병설 교수 연구팀이었는데 필자는 이때 연구팀의 일원으로 참가하였다. 환자는 대구에 거주하던 21세 된 남자로 평소에 민물고기를 즐겨 먹었고 간흡충 감염도 함께 진단되었던 증례였다. 1980년에 이전고환극구흡충(Echinostoma cinetorchis)의 첫 인체 감염례에서 성충을 회수하여 확진했던 경험을 가진 필자로서는 이번에 호르텐스극구흡충의 첫 인체 감염례를 또 발견하게 되어 극구흡충을 포함한 장흡충류 연구에 점차 깊이 빠져들게 되었다.
필자 등은 미꾸라지가 감염원이었을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1985년 수유 시장(서울), 강진 시장, 김해 시장, 영산포 시장 4곳에서 미꾸라지 154마리를 구입하여 실험실로 돌아와 극구흡충류 감염에 대해 검사를 하기 시작했다. 거의 절반(41.6%)에 가까운 미꾸라지에서 호르텐스극구흡충의 피낭유충(metacercaria)이 검출되는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그리고 특이한 것은 미꾸라지의 머리 부위(27.5%)와 항문 주위 조직/장벽(72.1%)에서 대부분의 피낭유충이 발견되었다는 점이었다. 근육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이론적으로는 미꾸라지 근육만 잘 발라내어 회로 먹을 경우 감염이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미꾸라지 조리과정에서 항문 주위 조직과 장벽을 정확히 제거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필자와 연구진은 내친 걸음에 스스로 인체 감염 실험을 해 보기로 했다. 사람에게 감염이 잘 되는지, 증상은 어떤지 등을 알아보려 한 것인데 당시 필자의 나이가 34세, 또 한 사람 자원자는 42세였다. 지금 나이라면 이런 인체실험을 안 할 것 같다.
피낭유충 7개를 물과 함께 삼킨 필자는 5일 후부터 속이 쓰려오는 증상을 경험하였다. 감염 7일째에는 복통이 가끔 나타났고 만사가 귀찮을 정도로 쉬 피로해졌으며 기력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결국 감염 28일에 프라지콴텔을 먹고 감염을 종료하였다. 다른 자원자는 피낭유충 27개를 먹었는데 감염 7일째부터 속이 불편한 증상이 나타났고 16일에는 복통 및 위궤양 비슷한 증상과 쉬 피로함을 느꼈다고 한다. 감염 27일에 프라지콴텔을 투여한 후 설사변에서 성충 10마리를 회수하였다.
한편, 연세대학교 원주의과대학의 양용석 명예교수와 고 안영겸 교수 연구팀은 1985년 원주에 거주하는 환자 2명으로부터 호르텐스극구흡충 감염(제2예와 제3예)을 확인, 보고하였다. 그리고 원주천에서 잡은 버들치와 섬강(남한강 지류)에서 잡은 얼룩동사리에서 호르텐스극구흡충 피낭유충 감염을 보고하였다. 이로써 국내 호르텐스극구흡충의 주요 감염원이 미꾸라지, 버들치, 그리고 얼룩동사리라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곧 이어(1986년) 필자와 인제대학교 서울백병원 연구팀이 국내 인체 감염 제4예와 제5예를 발견, 보고하였다. 이때 인체 감염 제4예가 경북 청송에 살면서 민물고기를 자주 날로 먹어왔고 자기와 비슷한 증상을 가진 주민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서울백병원 연구팀과 서울대 의대 연구팀(현 경상의대 손운목 명예교수)이 1998년 청송을 찾아갔다.
놀라운 사실은 마을 주민 263명 중 59명(22.4%)이 극구흡충류 충란 양성으로 나타났다는 점이었다. 프라지콴텔 투여 후 설사변에서 성충을 수집했는데 또 한 번 놀랐다. 가장 많은 충체를 배출한 주민에서 무려 649마리의 충체가 수집되었고, 다른 한 주민에서는 475마리, 또 다른 주민에서는 134마리가 배출되었다. 1~2마리 감염만 있어도 속이 더부룩하고 불편한 증상을 보일 수 있는데 100마리가 넘는 충체를 가진 주민이 3명이나 있었고, 10~99마리의 충체가 배출된 주민이 18명이나 되었던 것이다.
이 역학조사 결과로 경북 청송 지역은 호르텐스극구흡충의 고도 유행지이며 감염률이 매우 높고 감염량도 매우 많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주요 감염원은 마을 주변을 흐르는 시냇가에 서식하는 얼룩동사리였다. 필자 등이 현지에서 잡은 얼룩동사리를 검사했더니 피낭유충 감염이 확인되었다.
그 후 국내 여러 병원에서는 위-십이지장 내시경 검사에서 호르텐스극구흡충 감염자가 속속 발견, 보고되기 시작했다. 이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다음 기회에 말씀드릴 예정이다.
호르텐스극구흡충에 관한 연구가 이렇게 활발히 이루어진 덕분에 우리나라는 세계 극구흡충류 연구 전체를 이끌어가는 견인차 역할을 해 왔고 필자와 경상의대 손운목 명예교수 등이 이 분야 최고 전문가로 인정받게 된 점은 매우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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