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는 왜 '진영 정치'에 더 함몰됐나?.. 불만 사회의 함정
'피해자 서사'의 무기화(武器化)
[최보식의언론=이병태 카이스트 명예교수]
한국이나 미국이나 극도로 분열된 갈등 사회다. 여러 조사에서 두 나라의 분열과 갈등이 통제 범위를 넘고 있다고 나온다.
나는 한국의 현 상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책을 찾았다. 프랭크 브루니의 저서 『The Age of Grievance (불만의 시대)'는 지금 미국 사회가 왜 이토록 분열되었으며, 왜 모든 이들이 자신을 '희생자'라고 생각하게 되었는지를 깊이 있게 파헤친 책이지만 한국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책은 한국의 현재 정치를 이해하는데도 좋은 관점을 제시해 준다.
1. '피해자 서사'의 무기화 (The Weaponization of Victimhood)
브루니는 현재를 "모든 사람이 자신이 가장 큰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시대"로 규정한다. 과거에는 사회적 약자들이 권리를 찾기 위해 피해 사실을 알렸다면, 이제는 권력자들과 다수층조차 자신들이 역차별을 당하거나 공격받고 있다는 서사를 권력의 동력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진보 진영은 미세한 차별(Microaggression)이나 구조적 부당함에 집중하며, 자신들의 도덕적 우위를 증명하기 위해 피해자 신분을 강조한다.
보수 진영은 '엘리트주의', '정치적 올바름(PC)', '이민자' 등에 의해 자신들의 전통적 가치와 지위가 침탈당하고 있다는 '문화적 피해 의식'을 가진다.
이 견해는 "피해자 문화의 부상 (The Rise of Victimhood Culture)" (Bradley Keith Campbell and Jason Manning 저)의 책과 일치하는 분석이다.
결국 좌우는 모두 피해자를 자처하는 세상이 되었다.
2. 불만 사회의 구조
① 불만의 민주화 (The Democratization of Grievance)
소셜 미디어의 발달로 모든 개인이 자신의 불만을 공론화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민주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공동의 선(Common Good)'에 대한 논의보다 '나의 억울함'이 우선시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② 타협이 불가능한 '제로섬 게임'
양측이 스스로를 피해자로 규정하면, 상대방은 자연스럽게 '가해자'나 '악마'가 된다. 가해자와는 타협할 수 없으므로, 정치는 합리적인 정책 대결이 아닌 실존적인 생존 투쟁으로 변질된다.
③ 리더십의 타락: '분노의 상인들'
정치인과 미디어는 대중의 불만을 해소해주기보다, 오히려 그 불만을 증폭시켜 수익과 표를 얻는다. 분노의 확성기들도 돈을 번다. 브루니는 이를 '원한 산업 복합체(Grievance-Industrial Complex)'라고 비판한다. 부정선거음모론 유튜버들은 이 산업의 대표적 잡상인들이다.
④ 미국적 정체성의 상실
"여럿이 모여 하나(E Pluribus Unum)"라는 미국의 건국 이념이 사라지고, 각자의 상처와 불만을 공유하는 작은 집단들로 파편화되면서 국가적 응집력이 무너지고 있다.
3. 한국 보수 정권 실패의 근본 원인의 이해
나는 "조국 사태" 때 서초동에 모이는 사람들(문재인 정부 지지자들)을 보고 한국 좌파들이 옳고 그름의 판단력을 잃고 진영 논리에 맹종하는 우민화했다고 경악했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에 이어 윤석열 정권이 탄핵되고 보수당이 지금 소멸의 위기에 직면한 현실을 보고 그 실패의 근본 원인이 보수 정당과 지지자들이 더 철저하게 브르니가 분석한 "불만 사회"의 함정에 빠져있다는 것이라고 인식하게 되었다.
윤석열이 국힘당의 대선 후보가 된 이유는 보수 지지자들이 '악마'로 본 문 정권에 탄압을 받고 그에 저항했다는 것으로 족했다. 내가 반대하는 쪽에 대표적으로 반대한 사람이라는 상징이면 족했다.
김문수가 지난 대선에서 후보가 되는 과정도 동일했다. 탄핵 과정에 "꼿꼿 문수"라는 그 한 장면으로 족했다. 지금 한동훈 전 대표의 논란도 근본 원인은 그가 당대표가 되기까지 그가 법무장관으로 국회에서 민주당과 논쟁을 언변으로 대립각을 세운 것만으로 충분했다.
윤석열, 한동훈이 '정치 검사'로 무슨 짓을 했는지, 경제관, 사회관, 역사관과 정책은 무엇인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김문수가 아무런 정책도, 정책 참모도 준비되지 않았고 70년대 냉전 시대의 세계관이나 노동운동 시절의 노동관을 갖고 있는 '시대착오적인 사람'이라는 것은 이들을 보수당의 지도자나 후보로 만드는데 검증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내가 반대하는 민주당에 반대하거나 탄압받은 대표성이면 족했다. 나는 현재 국힘당의 당 대표도 그가 국가를 운영할 경력과 준비가 된 사람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이 과정을 되새겨보면 '불만 사회'의 함정 즉 진영 정치에 더 깊숙히 함몰된 것은 보수권이란 생각을 하게된다.
이처럼 진영논리의 상징성만으로 대표를 내세우면 상대측의 실정의 반사 이익으로 가끔 집권의 기회는 가질 수 있을지언정 정권을 유지할 수 있고, 성공한 대통령으로 남을 수 있는 후보는 내세우지 못할 것이다.
보수권은 왜 87체제 이후 보수 정당의 대통령들이 온전한 대통령이 없었는 지 원인을 내부로부터 찾는 성찰이 없이는 권력을 달라고 말하기 어려운 기록을 쌓아왔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개딸들은 훨씬 시끄럽다. 하지만 정당의 건강성이나 대표를 내세우는 체제는 보수 쪽보다 저쪽이 우위에 있다. 결과가 말해주고 있다.
지금 국힘당의 반대파 제명과 분열은 '분노의 상인'과 진영 정치가 완전히 승리하는 모습으로 보인다.
4. 회복을 위한 제언
브루니는 이 악순환을 끊기 위해 '겸손(Humility)'과 '공감의 복원'을 강조한다. 내가 피해자일 수 있듯이 상대방도 나름의 고충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절대적 정의'보다는 '함께 살아가기 위한 타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너무 당위론적 당부다.
문제는 이런 성찰이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현재는 한국도 미국도 그런 제정신으로 돌아갈 길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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