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홉스가 경고한 '민주주의가 위험해지는 순간'?
‘우리가 원했다’라는 말의 위험성
[최보식의언론=정광제 전 이승만학당 이사]
'사회계약론'으로 유명한 영국 정치철학자 토머스 홉스(1588~1679년, '‘리바이어던' 등의 저술)는 민주주의를 무조건 나쁜 제도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는 분명히 경고했다. 민주주의는 잘못 굴러가면 가장 빨리 무너질 수 있는 제도다. 홉스가 본 인간은 착해서 규칙을 지키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홉스에게 인간은 먼저 불안해하는 존재다. 위험을 느끼면 바로 계산한다. “이게 나에게 안전한가.” 사람은 옳고 그름보다, 손해와 위험을 먼저 따진다. 이 전제를 모르면 민주주의는 쉽게 이상화된다.
민주주의의 첫 번째 위험은 힘이 약해질 때 생긴다.
법이 있어도, 그 법을 집행하는 힘이 분명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계산을 바꾼다. “안 지켜도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퍼진다. 다수가 반대하면 처벌받지 않을 것 같고, 여론이 나를 보호해 줄 것 같다는 기대가 생긴다.
홉스는 사람들이 법을 지키는 이유를 분명히 봤다. 법이 옳아서가 아니다. 어기면 자기에게 위험이 닥치기 때문이다. 그런데 민주주의에서 책임이 흩어지면, 이 위험이 흐려진다. 누가 최종 책임자인지가 분명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규칙을 가볍게 여긴다. “내가 한 게 아니다”라는 말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두 번째 위험은 말의 힘이다.
민주주의에서는 말이 정치의 중심에 선다. 토론, 연설, 주장, 명분이 중요하다. 홉스는 이 점을 매우 불안하게 보았다. 인간의 이성은 진리를 향해 움직이지 않는다. 감정과 욕망을 향해 움직인다. 말은 이 감정을 가장 쉽게 자극한다.
사람이 많이 모이면 더욱 이성적이 될 것 같지만, 홉스는 반대로 보았다. 군중은 감정이 커지는 공간이다. 한 사람의 불안이 여러 사람의 분노가 된다. 이러면 숙고는 사라진다. 대신 즉각적인 반응이 앞선다. 민주주의가 토론의 제도가 아니라 감정 동원의 장이 되면, 국가는 흔들리기 시작한다.
세 번째 위험은 다수가 항상 옳다는 생각이다.
홉스에게 이 생각은 매우 위험하다. 다수라고 해서 더 똑똑해지거나 더 도덕적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책임이 잘게 나눠질수록 사람들은 더 대담해진다. “우리가 원했다”는 말은 개인의 책임을 가볍게 만들어준다. 이 상태에서는 잘못된 결정도 쉽게 정당화된다.
그래서 홉스가 진짜로 두려워한 것은 민주주의 그 자체가 아니다. 그가 두려워한 것은 결정을 내릴 힘이 약해지는 상태다. 최종적으로 누가 결정하고, 누가 책임지는지가 불분명해질 때 사회는 빠르게 불안해진다.
불안해지면 사람들은 다시 자기 보호에 집중한다. 서로를 믿지 않는다. 그 순간 사회는 자연상태에 가까워진다.
홉스의 경고하는 민주주의가 위험해지는 순간은 이렇다. 법을 어겨도 별일 없을 것 같을 때,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알 수 없을 때, 말과 감정이 규칙을 대신할 때, 이때 민주주의는 질서의 제도가 아니라 혼란의 통로가 된다.
이것은 민주주의를 버리라는 뜻이 아니다. 홉스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민주주의를 인간이 착하다는 믿음 위에 세우지 말라. 인간은 선해서 규칙을 지키지 않는다. 위험하기 때문에 규칙을 지킨다.
이 조건을 잊으면, 민주주의는 가장 먼저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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