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관찰인생] 3등석 없는 비행기 1등석의 의미
조역의 감정노동 ... 재연드라마 엑스트라들에게 황금은?
[최보식의언론=엄상익 논설위원]
고등학교 시절 나는 밴드반에서 심벌을 쳤다.
끝도 없이 기다렸다가 결정적 순간 "쨍"하고 쇳소리를 내는 게 나의 역할이었다. 한심한 단역이었다. 트럼펫, 색소폰 등 주역 멜로디 악기들의 모습들을 보면 부러웠다. 그렇지만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순간을 놓치면 음악 전체가 망가지기 때문이었다.
대학을 가서도 드럼을 쳤다. 드럼은 조역이었다. 다른 악기를 빛나게 해 줘야 한다. 튀면 안 된다. 공백이 생기면 그때야 나타나 슬며시 메워야 했다. 드럼을 치면서 조역의 임무를 알았다. 꽃이 아니라 잎이 되어야 하는 걸.
학교에서도 나는 조역이었다. 성적이 좋지 않았다. 마라톤 같이 앞의 몇 명만 제치려고 해도 힘만 들지 제대로 되지 않았다. 능력 부족이었다. 일등이 금메달을 주렁주렁 달고 상을 받을 때, 나는 그 무대를 채우기 위해 앉아 있는 관객이었다. 주인공을 빛내주는 배경.
변호사가 되고 법정에서도 나는 조역이었다. 높은 무대 위에서 법복을 입고 붉은 융단의 등받이 의자에 앉은 판사는 왕 같았다. "존경하는 재판장님"이라고 하며 신하같이 머리를 숙인 나는 그를 빛내기 위한 조역이었다.
조역은 내가 원해서 된 게 아니었다. 주인공이 되고 싶었는데 그게 소원대로 되지 않았다.
한 번은 판사를 하는 친구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변호사는 우리 때문에 먹고사는 거 아니야?"
모멸감이 들었다.
또 다른 법정에서였다.
"제출한 변론서 이게 수필입니까? 법률 서류입니까? 좀 똑바로 하세요."
속에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걸 참아 내는 게 조역의 감정노동이었다. 3등석이 없으면 비행기 1등석의 의미가 없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내 나이 40대 중반 무렵이었다. 재연드라마의 중간에 잠깐 등장해서 설명을 하는 역할을 맡은 적이 있다. 조역의 조역쯤이다. A4용지에 가득 적은 대사를 몇 장씩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외워야 했다.
현장에서 PD가 대사를 종이에 가득 차도록 다시 써서 즉석에서 외우라고 할 때는 화가 났다. "네가 한번 외워봐"라고 항의한 적도 있었다. 주인공 탤런트들도 화장실에서 대사를 급하게 외운다고 했다.
쨍쨍 햇볕이 내리쬐는 여름날이었다. 인천의 연안부두 앞 길거리가 촬영장이었다. 수십명의 엑스트라들이 하루 종일 찜통 같은 버스 안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내가 나타나 설명하는 장면의 촬영 순간이 왔다. 나는 길에 서서 암기한 대사를 까먹지 않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웠다. 카메라가 나를 향하면 자연스럽게 걸으며 대사를 토해내야 했다. 카메라가 나를 향하고 피디의 신호를 기다리는 순간이었다.
누가 내 등 뒤에 자기 등을 붙였다. 야외 촬영에서는 행인들이 구경을 하려고 다가오는 수가 많았다.
"죄송하지만 지금 촬영 중인데요."
내가 등 뒤에 붙은 사람에게 말했다. 가 달라는 뜻이었다.
"저 엑스트란데요. 행인 1을 맡았어요."
촬영이 끝나고 엑스트라 몇 사람과 같이 국수를 먹게 됐다. 한 사람이 싱글벙글 웃으면서 동료에게 자랑했다.
"오늘 역할은 지하철 역원인데 대사가 한마디 있어. 너무 좋아."
다른 엑스트라들의 얼굴에 부러워하는 표정이 떠올랐다. 그들에게는 대사 한마디가 황금이었다. 순간 대사가 많다고 불평한 내가 부끄러웠다.
그 다음부터 법정이 달라 보였다. 그곳은 근엄하고 화려한 무대였다. 나의 역할이 너무 좋았다. 내 마음대로 대사를 얼마든지 만들 수 있었다. 법정을 가로질러 걷고, 목소리를 높이고 침묵할 수도 있었다. 액션도 내 마음대로다. 시각이 바뀌니까 세상이 달라졌다.
한번은 같이 밥을 먹는 자리에서 재판장인 판사에게 내 마음을 털어놓았다.
"맨날 법정에서 조역만 했는데 이제는 그 역할에 만족합니다."
"조역은 무슨 조역? 판사가 조역이지. 미국 법정 드라마를 봐. 변호사가 주역이지."
우리는 함께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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