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관찰인생] 北무용수 조명애와 가수 이효리가 함께 찍은 광고

회사도 없고, 돈도 없고, 꿈도 다시 무너졌지만, 그는 웃고 있었다.

2026-01-31     엄상익 논설위원

[최보식의언론=엄상익 논설위원] 

인공지능이 그린 삽화

이 글은 연재 형식입니다. 아래 관련기사를 순서대로 먼저 보면 좋습니다. (편집자) 

대법원까지 가서 판결이 확정됐다. 국가는 6억 5,000만 원을 배상하라. 정보기관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 이긴 것이다.

판결문을 받아 든 박민영 사장의 손이 떨렸다. 굵은 눈물 방울이 흘러 떨어졌다.

시간이 흐르면서 안면 마비로 굳어 있던 얼굴 근육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스트레스로 먹통이 됐던 귀에도 소리가 들려왔다.

"어때요? 좋죠?"

내 목소리가 그에게 닿았다.

"이제부터 엄 변호사님은 북한 사업의 영원한 법률고문이에요."

그가 활짝 웃었다.

1년 후, TV 뉴스 화면에 산뜻한 장면이 흘러나왔다. 북한의 무용수 조명애가 남한의 가수 이효리와 함께 찍은 광고였다. 화면이 바뀌고 박민영 사장이 기자들 앞에 섰다.

"북한과의 광고 사업, 다시 시작하게 됐습니다."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카메라 플래시가 터질 때마다 긴장한 그의 얼굴에 기쁨의 빛이 스쳤다.

나는 사무실에서 그 뉴스를 보고 있었다.

9년 전, 한겨레 신문을 보며 앞이 캄캄해졌던 그 사람. 회사가 무너지고, 빚더미에 깔리고, 얼굴이 마비되도록 울었던 그 사람. "변호사님, 국가를 고소할 수 있습니까?"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던 그 사람. 그가 다시 서 있었다.

몇 년 후였다. 박민영 사장이 내 사무실을 찾아왔다.

북한 광고 사업은 다시 중단됐다. 정치 상황이 바뀌면서 모든 게 또 멈춰버렸다. 대법원 판결로 받은 배상금도 그간 쌓인 빚을 갚느라 다 써버렸다고 했다.

"그래도 후회 안 합니다."

그가 말했다.

"판결문 하나는 남았잖아요. 국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고, 대법원이 써준 거 말입니다."

그는 웃고 있었다.

회사도 없고, 돈도 없고, 꿈도 다시 무너졌지만, 그는 웃고 있었다.

나는 그때 알았다. 승리란 이런 것이구나. 끝까지 무너지지 않고 서 있는 것. 빼앗긴 것들의 목록보다 지켜낸 것 하나를 기억하는 것. 국가 권력 앞에서도 "나는 옳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

책상 서랍 깊은 곳에 명왕성이 했던 말이 적힌 메모가 있다.

"평양 옥류관에서 점심 먹고 나오는데, 하수구에서 아이들이 흘러나온 국수 가락을 찾아 먹고 있었어요."

그의 눈빛이 촉촉해졌던 걸 기억한다.

"트럭으로 한 시간이면 닿는 거리인데..."

나는 가끔 그 메모를 꺼내 본다. 그리고 생각한다. 권력자들의 돌 던지기 게임에서, 개구리는 생명이 왔다 갔다 한다는 걸. 굶는 아이들도, 어른인 박민영도, 그런 개구리였다는 것을.

판결문 한 장. 나는 지금도 이따금 그걸 꺼내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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