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이 '민주주의의 거목'?...'5일 사회장'이 소환한 김지하 죽음
국가 세금으로 장례를 치르는 것은 현 정권의 '프리미엄'으로 받아줄 수 있다
[최보식의언론=최보식 편집인]
이해찬 전 총리의 5일간 사회장(社會葬)이 끝났다.
이재명 대통령 부부를 비롯 우원식 의장, 김민석 총리, 정청래 대표,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한명숙 전 국무총리 등 좌파 진영 유명인사들은 모두 조문했다.
국가 세금으로 장례를 치르는 것은 현 정권의 '프리미엄'으로 받아줄 수 있다. 또 민주당과 좌파 인사들이 자신의 부모상보다 더 슬퍼하고 명복을 비는 것은 그들의 자유다. 이해찬 장례식에 대해 본지 필자들이 이미 여러 번 비판했기 때문에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
내가 개인적으로 불편한 것은 이해찬에 ‘민주주의의 거목’ 칭호를 부여한 것이다. 대학 시절과 그 이후 40년 가까이 기자로 살아온 내 상식에서 이것만은 참 용납이 안 된다.
조정식 대통령실 정무특보는 영결식에서 "한평생 철저한 공인의 자세로 일관하며 진실한 마음, 성실한 자세, 절실한 심정으로 책임을 다한 민주주의 거목이자 한시대를 대표하는 정치인"이라고 치하했다. 내가 사는 동네에도 '이해찬 서거, 민주주의의 거목'이라는 현수막들이 걸려있다.
이해찬은 젊은 날 5.18 직전 '김대중 내란 음모사건' 등으로 연루됐다. 이를 '민주화투쟁'으로 볼 수 있겠지만, 그 뒤로 이해찬은 한 정파, 한 정당의 정권설계 기술자, 전략가로 쭉 살아왔다.
내 세대가 겪었던 70-80년대 민주화투쟁의 상징을 단 한명 꼽으라면 '김지하'일 것이다. 김지하를 '민주주의의 거목'이라고 해도 좀 과한 느낌이 들었을 텐데, 한낱 이해찬을 '민주주의 거목'으로 칭송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을 대놓고 농락하는 행위다.
만약 지금 보수정권이었으면 이해찬 장례식이 이렇게 떠들썩했을까. 심지어 민주당 진영에서도 어디 감히 '민주주의의 거목'이라는 나발을 불 수 있었을까. 또 '빈소 조문 증명' 사진을 자신의 SNS에 올리며 마치 자기 부모 돌아가신 것처럼 슬픔을 팔아대는 인사들이 과연 존재했을까.
아래는 2022년 5월 9일자 김지하가 돌아가셨을때, 본지에 게재된 <자기가 속했던 ‘진영’으로부터 배척당한다는 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라는 제목의 글이다.
참고로 김지하의 장례는 강원도 원주에서 가족장으로 치러졌다. 빈소는 한산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이었고 이게 세상의 인심이었다.
<장례식의 거창함을 따지는 것은 속물(俗物)의 시각이겠지만, 그럼에도 김지하 시인에 대해서는 뭔가 씁쓸하다.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장례식장에서 ‘가족장’으로 진행될 것 같다.
3년 전 김지하의 부인 김영주 토지문화재단이사장이 돌아가셨을 때도 빈소가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장례식장이었다. 그 상가의 썰렁한 풍경을 잊지 못한다.
지방이라 길이 멀어서 그럴 수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김지하에게 ‘세력’이 없어졌다는 점일 것이다. 시인이 무슨 세력 타령을 하겠느냐마는.
한 시절 지식인과 대학생 그룹은 ‘김지하’에게 많은 빚을 졌다. 그의 ‘이름’ 자체가 어둠 속 등대와 같았다. 판금(販禁)된 그의 시집을 몰래 돌려읽거나 등사기로 밀은 시 몇 편을 나눠읽었다.
그런 김지하가 노태우 정권 시절 학생과 노동자들의 분신자살 등 죽음이 잇따르자, 조선일보에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라는 글을 기고했다.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운동권의 도덕성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그때 만약 그가 그 글을 쓰지 않았다면 우리 사회는 어떻게 했을까. 그 글이 아니었으면 ‘죽음의 굿판’ 풍조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됐을까. 그때 만약 그가 그 글을 쓰지 않았다면 그는 여전히 재야운동권의 ‘우상’으로 남지 않았을까. 그리고 이뤄 셀 수 없는 추종자들의 떠받듦을 계속 누리고 있었지 않았을까.
‘저항 시인’의 생각은 천천히 조금씩 바뀌어왔다. 그는 제 18대선에서는 “여성성(女性性)이 세상을 구한다. 지도자가 나와 세상을 다스려야 할 시기”라며 박근혜 후보를 공개 지지하기도 했다.
그 뒤로 그는 재야운동권 진영으로부터 ‘배신자’라며 완전히 배척당했다. ‘지하 형’이라며 그를 따르던 후배들이 돌변해 그를 대놓고 “개XX”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한 인간이 자기가 속했던 ‘진영’으로부터 따돌림받는다는 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한 시절 그를 떠받들고 추종한 재야운동권은 등을 돌렸고, 우파 진영은 대선국면에서 그를 활용해 먹을 줄만 알았지 그를 보호해줄 줄은 몰랐다. 이제 어느 쪽도 그의 부음에 별로 반응이 없다. 다만 젊은 날 그와 함께 했던 70대 후반, 80대 초반 인사들만이 안타까워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