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유샤 숙청설'이 의미하는 것?...대만 전쟁은 더 이상 가설 아니다
장유샤의 퇴장은 한 장군의 몰락이 아니라, 중국 전략의 마지막 안전장치가 해체된 사건
[최보식의언론=주은식 한국전략문제연구소장(예비역 육군준장)]
공산권 국가에서 권력투쟁은 곧 사상투쟁이며, 사상투쟁의 승패는 국가의 진로를 결정한다.
최근 중국 군부의 실력자로 분류되던 장유샤(張又俠)를 둘러싼 숙청설은 단순한 인사 교체가 아니다. 이는 중국이 대만을 대하는 방식, 그리고 미중 갈등을 관리하는 전략의 종언을 의미하는 사건이다. 특히 이 변화는 한국 안보에 직접적인 파급을 가져올 수 있는 사안이다.
어느 나라이든 정치노선(political path, 또는 political perspective)은 정당이나 사회운동 그리고 정치인이 추구하는 핵심 이념,정책방향, 목표 그리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과 행동방침을 의미하며 당의 방침이나 진로로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표현된다. 이러한 정치노선은 공산권 국가에서는 단순 구호가 아니라 국가와 국민의 미래와 권력의 향배를 정하는 결정적 요인이 된다.
장유샤와 시진핑의 갈등은 단순한 개인적 권력 다툼이 아니라 대만 문제를 둘러싼 대책의 충돌이었다. 시진핑은 대만 통일을 자신의 정치적 유산이자 중화민족부흥의 완성으로 규정하고, 임기 내 해결을 공개·비공개적으로 강조해왔다.
반면 장유샤는 대만 침공 이후 불가피하게 이어질 미국과의 충돌 가능성, 그리고 그 분쟁이 중국 공산당 체제의 지속성에 미칠 충격을 우려해왔다. 장유샤의 입장은 작전 차원을 넘어선 체제 전략적 신중론이었다.
이 대립의 배경에는 두 가문의 역사적 인연이 자리한다. 장유샤의 부친 장쭝쉰(張宗遜)은 항일전쟁과 국공내전을 거친 원로 장군으로, 시진핑의 부친 시중쉰(習仲勳)과 함께 서북 지역에서 활동한 혁명동지 였다. 시중쉰은 문화대혁명 이전까지 당내 개혁파로 평가받았고, 숙청과 복권을 반복한 인물이다. 이 혁명 원로 네트워크는 태자당 정치의 토대가 되었고, 장요샤와 시진핑 역시 그 유산 위에서 성장했다. 장유샤 부자는 중국에서 두번째로 상장이 된 사례였다.
그러나 바로 이 공통의 혈통이 이번 갈등의 비극성을 부각시킨다. 장유샤는 시중쉰의 몰락과 복권 과정을 통해, 전략적 실패가 곧 개인과 가문의 몰락으로 이어지는 체제의 냉혹함을 체득한 세대였다. 그의 신중론은 비겁함이 아니라, 혁명 원로 세대가 남긴 경고였다.
그럼에도 시진핑은 이 경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장유샤의 퇴장은 중국 군부 내에서 대만 침공에 대한 제도적 브레이크가 해체되었음을 뜻한다. 중국군은 전략적 토론의 장을 잃고, 최고지도자의 정치적 결단을 집행하는 조직으로 재편되고 있다.
대만 문제가 더 이상 중국 내부 사안이 아니라는 점은 주변국의 태도에서도 확인된다. 일본의 다카이치 사나에 수상은 "대만 유사시"를 "일본 유사시"로 규정하며, 미·일 동맹 차원의 적극적 대응 의지를 공개적으로 밝혀왔고 중국의 희토류 수출금지라는 보복을 야기하였고 최근에 대만에서 미국과 공동행동을 할 수 있다고 공공연히 발언하고 대만으로 일본인과 미국인을 구하러 가야한다고 말했다.
이는 일본 정치권 내에서도 드문 수준의 명시적 결기로, 대만 방어가 곧 일본의 생존 문제라는 인식을 전면화한 발언이었다. 일본이 이러한 입장을 공론화했다는 사실 자체가, 대만 유사시의 지역전 확산 가능성을 구조적으로 높인다.
이와 동시에 최근 발간된 미국의 국방전략(NDS)은 중국의 대만 강제 복속과 패권 도전을 '거부·제거해야 할 핵심 위협'으로 규정하고, 동맹 네트워크를 통해 이를 억제·격파하는 구상을 분명히 했다. 미국 전략의 요지는 중국이 대만에서 기정사실을 만들기 전에 전방 억제와 동시다발적 압박으로 전쟁의 문턱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전략이 시진핑의 시간표와 정면 충돌한다는 점이다. 중국이 정치적 결심으로 움직일수록, 미국은 더 이른 단계에서 개입할 수밖에 없고, 충돌의 임계점은 낮아진다.
대만 유사시는 결코 대만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이 대만 방어에 개입할 경우, 주한미군과 한반도는 자동적으로 후방기지이자 작전 연계 공간이 된다. 중국 역시 이를 알고 있다. 따라서 대만 전쟁은 한반도 안보환경을 급격히 불안정하게 만들며, 북한은 이를 전략적 기회로 인식할 가능성이 크다. 대만 침공은 곧 한반도 유사시를 촉발하는 도화선이 될 수 있다.
특히 우려되는 점은 장유샤 숙청 이후 중국의 분위기가 위험 관리형에서 위험 돌파형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위기상황에서 오판 가능성을 증폭시킨다. 미·일의 결기와 미 국방전략의 압박, 그리고 시진핑의 정치적 시간표가 맞물릴 경우, 한국은 선택을 강요받는 국면에 들어선다.
한미동맹의 구조상 한국은 원하지 않아도 분쟁의 일부가 된다. 뿐만 아니라 무역에 의존하며 에너지 수송문제와 원료의 통로인 해양전략 병참선이 남동 중국해와 맞물리며 그 가운데를 통과하기 때문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시진핑 체제가 내부 위기를 외부 충돌로 돌파하려는 제국적 시간표에 진입했다는 점이다. 부동산 붕괴, 지방정부 부채, 청년 실업, 기술 봉쇄, 자본 이탈이라는 구조적 위기는 대만 통일이라는 상징으로 덮을 수 없다. 그러나 권력자는 종종 역사적 상징으로 현실을 가린다. 그 비용은 언제나 국민과 주변국가들이 치러왔다.
장유샤의 퇴장은 한 장군의 몰락이 아니라, 중국 전략의 마지막 안전장치가 해체된 사건이다. 그 파장은 대만을 넘어 한반도로 향하고 있다.
일본의 결기와 미국 국방전략의 선명화는 이 충돌이 이미 국제적 연쇄반응 단계에 들어섰음을 보여준다. 한국은 이제 대만 문제를 남의 일처럼 볼 수 없다. 그동안 장유샤와 시진핑의 권력 다툼에 헛다리를 짚은 자칭 전문가들은 할 말이 없게되었다.
한국 안보는 이 변화의 최전선에 맞물려 있다. 대만 문제가 남의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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