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는 왜 죽기 사흘 전까지 썼을까...63년간 일기, 1만 통 편지
성병 임질에 걸린 걸 첫 번째 일기에 썼다
[최보식의언론=강평기 러시아 전문가('표트르 대제의 개혁' 저자)]
톨스토이는 평생 글을 쓴 사람이다. 글은 그의 마음이자 불현듯 떠오르는 영감이요 끊임없는 고뇌와 사색의 흔적이었다.
이 위대한 대문호는 얼마 만큼 썼을까.
소설, 단편 소설, 동화, 희곡, 미완성 에세이와 스케치 등을 포함하여 174편의 작품을 썼다.
이들 중 예술 작품으로 높이 평가받는 것은 『전쟁과 평화』와 『안나 카레니나』, 그리고 유럽 문학사 최고의 중편 소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이다.
수보린이 “러시아에는 두 명의 차르가 있다. 니콜라이 2세와 레프 톨스토이다”라고 썼듯이 톨스토이는 당대 최고로 존경받는 인물이었다. 전제군주정에서 황제가 함부로 할 수 없는 사람.
그는 생애 마지막 30년 동안 창작 작품보다 언론 활동에 몰두했다. 무려 300편이 넘는 기사, 논문, 공개서한, 호소문, 인터뷰 등등.
톨스토이의 글쓰기 핵심은 일기였다. 일기는 그의 생명이요 살아가는 이유였다.
그는 1847년 3월 17일부터 죽기 3일 전인 1910년 11월 3일까지 63년 동안 일기를 썼다. 무려 31권의 원본 노트를 남겼다.
일기를 쓴 이유를 1906년 3월 19일 일기에 적었다.
“내가 일기를 쓰는 것은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을 위해서, 특히 내가 육체적으로 — 더 이상 — 존재하지 않게 될 때 살아갈 사람들을 위해서라는 점을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이 결코 잘못된 일이 아니라는 점도 생각했다. 이것은 내게 주어진 사명이자,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느껴진다.”
일기를 사명감으로 쓴 사람이었다. 그의 첫 번째 일기, 첫 문단은 이렇다.
“내가 클리닉에 입원한 지도 이제 엿새가 되었고, 나 자신에게 거의 만족하며 지낸 지도 엿새가 되었다.
Les petites causes produisent de grands effets(작은 원인이 큰 결과를 낳는 법). — 나는 임질에 걸렸다. 당연하게도, 그것이 보통 발생하는 바로 그 원인으로부터 기인한 것이다.”
성병이 걸린 걸 첫 번째 일기에 썼다. 솔직하고 정직하게 자신의 행적을 적는 톨스토이였다. 마지막 일기는 이렇다.
“내 계획은 이러하다. Fais ce que doit, advienne que pourra(해야 할 일을 하고, 결과는 어떻게 되든 받아들여라).”
기사도 정신을 담은 격언으로, 결과가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말고, 인간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나 양심에 따른 의무를 다하라는 뜻이다.
그럼, 톨스토이는 얼마나 많은 편지를 썼을까.
그의 첫 편지는 1840년 7월 20일 12세 때 고모에게 보낸 것이다. 부모를 여의고 고모가 톨스토이 형제를 양육했다.
마지막 편지 역시 1910년 11월 3일, 영국인 전기 작가에게 보낸 것이다.
이렇게 70년간 무려 1만 통의 편지를 썼고, 5만 통의 편지를 받았다. 편지 분량만 전집 31권이다.
톨스토이는 아내에게 48년 동안 839통의 편지를 썼다. 함께 사는 아내에게 이렇게 많은 편지를 쓴 사람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상에 과연 얼마나 될까.
그럼, 톨스토이는 어떻게 글쓰기를 생활화했을까.
앞에서 이야기 한 일기에 주목해야 한다. 좀 특이했다. 일기에 투철한 작가 정신이 묻어 있었다. 위대한 작가는 그냥 탄생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선, 그는 생각과 사물에 대한 관찰, 아이디어들을 수첩에 적어두었다가, 일정량의 글이 쌓이면 이를 수정하여 일기장에 옮겼다.
그의 일기에는 '기록할 것'이라는 말을 적어두고 수첩 내용을 다듬어 적었다. 그러니 일기가 작품이었다.
그는 작가답게 두 개의 수첩이 있었다. ‘낮 수첩’과 ‘침실 수첩’이었다.
낮 수첩은 주로 글을 쓰는 책상 위에 두거나 자신의 주머니에 넣어 다녔고, 침실 수첩은 침실 옆 탁자에 두고 아침에 일어날 때, 밤에 잠들 때, 혹은 밤중에 잠에서 깼을 때 떠오르는 생각을 썼다.
필자도 “표트르 대제의 개혁”을 집필할 때 침실 수첩을 두었는데 아주 요긴했다. 한밤중에 자다가 영감이 갑자기 떠오르면 불도 켜지 않고, 수첩에 막 적어두었다가, 아침에 수정하여 썼다.
톨스토이는 수첩을 보관했고, 수첩을 하나라도 잃어버리면 아쉬워했다. 난 책을 출간하자 모두 버렸다. 이제는 나도 모아 두어야겠다. 위대한 사람을 본받을 수 있다는 건 행운이니까.
톨스토이는 자신이 쓴 수첩 내용을 일기로 옮겨 적을 때 대필하기도 했다. 물론 그가 최종 검토나 수정을 거친 뒤 일기장에 끼워 넣었다.
1908년 8월 11일 일기의 경우, 병중이었던 톨스토이가 대필하던 구세프에게 구술한 유언을 일기장에 끼워 넣었다.
몸이 허락하지 않으면 말로써 그의 영감과 사색, 그리고 관찰을 기록했다. 죽기 2년 전에 쓴 톨스토이의 유언장 일기를 보자.
“1908년 8월 11일.
괴롭고 고통스럽다. 지난 며칠간 열이 멈추지 않아 상태가 좋지 않으며, 간신히 견디고 있다. 아마도 죽어가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 내가 평생을 살아와야 했던 그토록 터무니없고 호사스러운 환경 속에서 사는 것도 고통이었으나, 이런 환경 속에서 죽음을 맞는 것은 더욱 고통스러운 일이다.
결코 있을 수도 없고 필요하지도 않은 번잡함, 의료 행위, 가짜 위안과 치유뿐이니, 이는 오직 정신적인 상태를 악화시킬 뿐이다.
죽음에 대한 나의 태도는 결코 두려움이 아니며, 강렬한 호기심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시간이 허락한다면 나중에 다시 쓰겠다.
비록 사소한 일들이나, 내가 죽은 뒤에 이루어졌으면 하는 몇 가지 바람을 남기고자 한다.
첫째, 상속인들이 나의 모든 저작물을 공공으로 이용(사회 환원)되게 하면 좋겠다. 만약 그것이 어렵다면, 적어도 ‘아즈부카(학습서)’나 ‘독본’ 같은 민중을 위한 저작물만큼은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
둘째, 이 또한 사소하기 그지없는 일이나, 내 시신을 땅에 묻을 때 어떠한 종교적 의식도 행하지 않기를 바란다.
나무로 만든 관을 짜서, 원하는 사람이 자카즈 숲의 골짜기 건너편(톨스토이 생가 근처), ‘초록색 지팡이’가 묻힌 곳으로 옮기거나 운반해 주길 바란다. 최소한 그 장소를 선택할 명분은 있는 셈이다.
이것이 전부다. 여전히 떨쳐내지 못한 오래된 습관 때문인지, 아직 이것저것 더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상하게도 주로 어떤 예술적 구상이 떠오른다. 물론 이는 부질없는 생각이며, 설령 기운이 있다고 한들 그것을 훌륭히 완수해 낼 힘도 내겐 없다.
그렇다, 슈타예프(Сютаев, 농민 사상가)가 말했듯 “모든 것은 네 안에 있고, 모든 것은 지금, 이 순간에 있으며”, 모든 것은 시간 밖에 존재한다. 그러니 내 안에 있는 것, 그리고 시간 밖에 존재하는 것에 어찌 복 이외의 일이 일어날 수 있겠는가.”
톨스토이의 글쓰기 방식은 어떠했을까.
이미 작성된 내용을 수없이 수정하고 수정하는 것이었다. 초본과 최종본을 비교 검토해 보면 전혀 다른 내용의 작품이 하나둘이 아니다.
그는 예술가로서 조각가가 작품을 조각하듯이, 자신의 머릿속 이미지를 상세하게 그리고 아주 리얼하게 서술했다. 정교함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단순한 수정이 아닌 완전히 판을 바꾸는 경우도 허다했다. 『전쟁과 평화』는 7번, 『안나 카레니나』는 12번을 수정했다. 작가는 이 방식을 노년까지 충실히 지켰다.
또 하나, 글 쓰는 시간을 완벽하게 확보했다. 아침 산책 후 돌아와서 오전 내내 글을 썼다. 이 시간은 그 어느 사람도 함부로 서재에 들락거릴 수 없었다. 아내 역시.
도스토예프스키는 올빼미형이어서 대개 밤 11시부터 새벽 5시까지 쓰고 오전 11시 경 일어났다. 이 점에서 둘은 차이가 있지만, 역시 누구도 방해할 수 없는 완벽한 집필시간이 있었다.
끝으로, 톨스토이는 집필 시 철저한 검증과 다양한 사람과의 대담을 했다. 본인 스스로 전쟁에도 참전하고 방탕한 생활도 해보고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였다. 경험은 만물의 창조였다.
만물의 소리를 듣고 만물의 이치를 깨치려 했다. 심지어 신발도 만들어 신고 대패질도 당연히.
『전쟁과 평화』를 집필하기 위해 그는 역사에 관한 수백 권의 책과 회고록 등을 신중히 읽고 검토했다.
『부활』은 11년간 집필했는데 71세에 완결했다. 이 기간 사법과 형사 실무를 포괄적으로 연구하고자 했다. 반복적으로 법정에 참석하고, 법원 기록을 읽으며, 교도소 생활을 연구하고, 피고인, 수감자, 교도관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이런 고된 작업이 10여 년간 이어졌다. 이렇게 결국 진정한 걸작을 만들었다.
역시 68세에 시작하여 76세에 완성한 『하지 무라트』를 집필할 때는 서재를 걸어 다니는 것이 불가능했다. 바닥 전체가 책, 문서, 잡지로 널려 있었고 발을 들일 곳이 전혀 없었다.
톨스토이는 쉬는 날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가장 큰 교회 명절인 크리스마스와 부활절에도 일 년 중 다른 날들과 마찬가지로 집필했다.
매일 꾸준히 조금씩 노력하는 것, 그것이 결국 걸작을 만들었다.
천재적 재능을 지닌 작가의 피땀 흘린 그 열매를, 단돈 몇 만 원에 읽을 수 있으니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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