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이재명 장기집권 시나리오, 정말 가동되고 있나?
튀르키예 역시 국민투표로 체제를 갈아엎었다.
[최보식의언론=김정기 세계스마트시티기구 사무총장]
장기집권은 '선언'으로 오지 않는다.
그것은 한 번의 쿠데타나 한 차례의 계엄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성공한 장기집권은 언제나 합법의 언어를 빌려 제도와 해석을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래서 위험하다. 국민이 그 실체를 자각하는 순간에는 이미 되돌리기 어려운 지점에 이르러 있기 때문이다.
이 점을 가장 정교하게 보여준 사례가 튀르키예의 에르도안이다. 그는 선거를 폐지하지 않았고, 헌법을 노골적으로 파괴하지도 않았다. 대신 민주주의의 형식을 유지한 채 그 작동 방식을 바꿨다.
2016년 미수에 그친 쿠데타 이후 비상통치의 분위기가 고착됐고, 이듬해 개헌 국민투표를 통해 총리제를 폐지하며 행정부 권한을 대통령에게 집중시켰다. 2018년부터 가동된 집행권 중심 대통령제는 사법 인사 구조까지 바꾸며 권력의 균형을 무너뜨렸다.
핵심은 단순했다. 정치적 반대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성격을 바꾸는 데 있었다. 정치적 경쟁은 ‘정치의 영역’에서 ‘국가안보의 위협’으로 이동했다. 그 순간 토론은 안보의 문제가 됐고, 비판은 질서 교란으로 분류됐다.
2016년 이후 언론과 기자에 대한 대규모 탄압, 매체 폐쇄가 이어진 것도 이 국가비상 프레임 속에서 작동했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임기 제한마저 헌법 개정이 아닌 해석으로 비틀었다. 체제 전환 이후의 첫 임기라는 논리를 앞세워 3선과 추가 출마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방식이었다.
이제 이 모델을 한국 정치의 가정 위에 올려놓아 보자.
최근 정치권에서 회자된 김민석의 “5년은 짧다”는 발언은 가벼운 실언이나 감상이 아니다. 여기에 “호남이 미래의 근간”이라는 메시지가 더해지는 순간, 정치적 지도가 그려진다.
튀르키예식 문법으로 해석하면 뜻은 분명하다. 핵심 지지 기반을 도덕적 정당성의 중심으로 세우고, 그 정당성 위에서 국가적 위기와 제도 개편, 재선 혹은 임기 연장의 경로를 구축하겠다는 신호다. 이제 문제는 의도가 아니라 실행이다.
이 과정에서 가장 먼저 바뀌는 것은 프레임이다. 에르도안이 선택한 전략은 설득이 아니었다. 그는 반대를 제거하지 않았다. 반대의 범주를 바꿨다. 야당은 더 이상 정치 세력이 아니라 ‘내란 잔당’이나 ‘테러 협력자’로 묶였다. 민주주의의 토론장은 치안의 전장으로 전환됐다.
한국 정치에서도 유사한 흐름은 이미 감지된다. 검찰·언론·기득권 카르텔은 국가 전복의 상시적 위협으로 규정되고, 선거 패배 가능성은 정권 심판이 아니라 국가 붕괴 시도로 해석된다.
통합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적의 실체 규정이 반복된다. 지지층 동원은 정책 지지가 아니라 체제 수호 운동의 형태를 띤다. 이 프레임이 굳어지는 순간, 이후의 제도 개편은 권력욕이 아니라 국가 방어로 포장된다.
그다음은 제도의 문제다. 튀르키예의 2017년 개헌은 효율적 정부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실제 결과는 권력 집중과 선거 규칙의 변경이었다. 총리직 폐지, 대통령 권한 강화, 사법 인사 영향력 확대가 하나의 패키지로 묶였다. 한국에서 거론되는 장기집권 시나리오 역시 비슷한 기술을 따른다.
4년 중임제는 선진국형이라는 외피를 쓰지만, 그 안에는 첫 임기는 전환기라는 해석이 삽입된다. 분권형 개헌과 내각제, 이원집정부제 논의는 야당 내부의 이해관계를 분산시키는 역할을 한다. 국회가 막히면 전장은 국민투표로 옮겨진다. 이때 중요한 것은 법리나 토론이 아니라 동원이다. 튀르키예 역시 국민투표로 체제를 갈아엎었다.
통치 환경 역시 달라진다. 장기집권은 안정 속에서 자라지 않는다. 통제 가능한 불안정 속에서 성장한다. 튀르키예는 쿠데타 미수 이후 비상통치 분위기 속에서 대규모 숙청과 언론 통제가 정당화됐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한국판 시나리오에서는 안보·경제·사회 갈등이 상시 비상 프레임으로 묶인다. 가짜뉴스와 선동 규제가 강화되며 언론과 플랫폼은 압박을 받는다. 사법, 선거관리, 감사 시스템은 개혁의 이름으로 재배치된다. 반대 집회와 시민단체는 질서 파괴로 규정된다. 선거는 정책 경쟁이 아니라 안보 투표로 바뀐다. 이 단계에 이르면 임기 연장은 권력 연장이 아니라 위기 대응의 연속성으로 포장된다.
마지막으로 남는 것은 선거다. 에르도안의 장기집권은 매번 압승의 결과가 아니었다. 룰과 미디어, 기관, 동원의 조합을 통해 패배 확률을 구조적으로 낮춘 결과였다.
한국 시나리오에서도 지역 기반은 민주주의의 정통으로 신성화되고, 중도는 설득의 대상이 아니라 불안 회피의 집단으로 관리된다. 야당은 정책 경쟁자가 아니라 범주화된 문제 집단으로 처리된다. 인사권과 예산권, 감사권을 통한 기관 장악은 겉으로는 합법이지만, 실제로는 반대하면 불이익이라는 구조를 만든다.
튀르키예는 민주주의의 변방 국가가 아니었다. 동로마 제국을 계승했고, 400년 동안 제국을 유지했으며, 제국주의 시대에도 해체되지 않았다. '청년 튀르크 혁명'을 겪었고, 냉전기에는 미·소 사이의 지정학적 균형을 감당해온 나라다. 민주주의와 권력, 제도의 충돌을 누구보다 오래 경험해온 국가였다. 그런 나라에서도 장기집권은 현실이 됐다.
그렇다면 묻지 않을 수 없다. 권위주의의 기억이 아직도 살아 있는 동아시아 정치 전통 속에서, 정당 내부의 의사결정마저 폐쇄적 위계로 작동하는 한국 정치가 스스로를 예외라 믿을 근거는 무엇인가.
자유와 제도는 한 번 주어졌다고 자동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임기의 의미를 흔들고, 반대를 안보의 언어로 봉쇄하며, 개헌과 해석을 출마의 기술로 사용하는 순간 민주주의는 붕괴가 아니라 관리된 전환으로 사라진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인물의 선의에 기대는 정치가 아니다. 장기집권은 개인의 욕망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것은 제도의 허점, 프레임의 방치, 야당의 무기력, 시민의 피로가 동시에 작동할 때 가능해진다. 따라서 해법 역시 도덕적 호소가 아니라 구조적 차단이어야 한다.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임기 논쟁의 비정치화다. 4년 중임제든 분권형 개헌이든, 현직 대통령의 권력 연장 가능성과 연결되는 순간 그 논의는 정당성을 상실한다. 권력 구조 개편은 차기 정권부터 적용된다는 원칙, 현직 권력자는 개헌 논의에서 자동 배제된다는 관행이 확립되지 않는 한, 어떤 제도 개편도 민주주의의 진전이 아니라 권력 기술로 기능할 수밖에 없다.
두 번째는 프레임의 차단이다. 정치적 반대를 국가안보의 언어로 해석하는 순간 민주주의는 토론을 멈추고 안보의 논리로 이동한다. 비판은 반국가로, 경쟁은 질서 교란으로 규정된다. 이 구도를 허용하지 않는 것, 정치적 갈등을 끝까지 정치의 영역에 묶어두는 것이 민주주의의 최후 방어선이다.
세 번째는 직접민주주의의 역설 관리다. 권력 구조 변경과 관련된 국민투표는 언제나 가장 민주적인 형식을 띠지만, 동시에 가장 쉽게 동원되는 수단이기도 하다. 위기와 비상의 언어 속에서 진행되는 국민투표는 자유로운 선택이 아니라 구조화된 압박의 결과였다는 점을 우리는 이미 여러 나라의 사례에서 확인해왔다.
네 번째는 야당의 역할 전환이다. 장기집권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은 야당이 늘 의도를 비판하면서도 실행을 차단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반대가 아니라 차단, 규탄이 아니라 조건 설정, 분노가 아니라 제도적 저지가 필요하다. 분권 논의와 임기 논의를 분리하지 못하는 순간, 개헌은 견제가 아니라 권력의 사다리가 된다.
마지막으로 시민의 역할 역시 재정의돼야 한다. 민주주의는 열광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정권 수호의 언어가 아니라 권력 제한의 감각, 동원이 아니라 피로한 감시만이 제도를 지탱한다.
이제 질문은 권력자에게 던질 것이 아니다. 질문은 우리에게 돌아온다.
우리는 '임기 연장'을 논의할 수 있는 사안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이미 한 발을 내디뎠다. 우리는 정치적 반대를 안보의 언어로 봉합하는 표현에 익숙해지는 순간, 토론의 권리를 내려놓는다. 우리는 개헌과 제도 해석이 불가피하다는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선택권을 포기한다.
지금 필요한 행동은 거창하지 않다. 다만 명확해야 한다. 임기와 권력 구조 변경에 대해 현재 권력자와 연결되는 논의를 거부하라. 비판을 반국가로 규정하는 언어에 즉각 질문을 던져라. 국민투표가 등장할 때 그 조건과 절차를 먼저 요구하라. 야당이 분노만 표출할 때 차단 전략을 요구하라. 시민사회와 언론이 동원의 도구가 될 때 거리두기를 선언하라.
민주주의는 지지로 유지되지 않는다. 불편한 질문을 반복하고 용기 있는 행동을 보이는 소수의 시민에 의해 겨우 연장될 뿐이다. 선거는 남아 있어도 교체가 사라질 수 있다. 그때 역사는 묻지 않는다. 누가 집권했는지를..... 다만 기록한다. 누가 침묵했는지를.....
독재는 선포되지 않는다. 선거는 남고 정권 교체가 사라진 뒤에야 그 이름이 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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