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한국에만 '정치적 단식'이 행해지나?... OECD 국가 중 유일
단식이 정치 문화로 정착된 나라는 인도가 대표적
[최보식의언론=이병태 카이스트 명예교수]
야당 대표가 목숨을 걸고 '단식 투쟁'을 하고 있다.
우리 정치에서 야당 대표의 단식은 워낙 흔한 일이라 우리 사회는 놀라지도, 이게 왜 아직 유지되는지 의심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한국처럼 거대 야당의 대표나 유력 정치 지도자가 국회 내 농성이나 단식을 정치적 투쟁의 주요 수단으로 자주 사용하는 사례는 OECD 가입국이나 서구 선진 민주주의 국가 중에서는 거의 찾아 보기 힘든 관행이다.
전 세계적으로 시야를 넓혀보면, 단식을 '도덕적 무기'이자 '최후의 저항 수단'으로 사용하는 정치 문화가 있는 나라들이 존재한다.
단식이 정치 문화로 정착된 나라는 인도가 대표적이다. 한국과 가장 유사하거나, 오히려 더 빈번한 곳은 인도가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 저항 전통이 깊게 뿌리 박혀 있다. 인도에서 단식은 "나의 신체를 희생하여 상대방의 양심을 깨우는 고도의 도덕적 행위"로 간주된다.
간디 이외에도 독립 이후에도 수많은 정치인들이 단식을 무기로 사용했왔다. 나렌드라 모디(현 총리)는 야당 시절뿐만 아니라, 2018년 총리 재임 중에도 야당의 의사 진행 방해에 항의하며 '하루 단식'을 하는 등 정치적 퍼포먼스로 활용했다.
인도에서 단식은 단순한 '굶음'이나 '투쟁'을 넘어, 수천 년간 이어져 온 종교적 수행이자 삶의 일부로 깊이 뿌리내려 있는 문화적 전통이 있다. 힌두교와 자이나교는 단식을 수행의 일부로 인식한다.
*정치적 탄압에 저항하는 수단: 권위적 독재 정권 하에 있는 러시아와 일부 동유럽, 남미 국가 등에서는 야당 지도자가 '자유로운 상태'에서 단식을 하기보다는, 투옥되거나 정치적 박해를 받는 상황에서 최후의 수단으로 단식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러시아에서 투옥 중 사망한 알렉세이 나발니 야권 지도자는 감옥에서 부당한 처우에 항의하며 단식 투쟁을 벌였다. 베네수엘라· 쿠바 등 독재 정권에 저항하는 반체제 인사들이 옥중 단식을 자주 행한다.
서구 선진국(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에서는 제1야당 대표가 국회에서 단식 농성을 하는 모습은 상상하기 어렵다. 의회 민주주의가 정착된 서구에서는 갈등을 '제도(의회 토론, 표결, 선거)'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다. 정치 지도자의 단식은 자칫 '의회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행위'나 '감정에 호소하는 포퓰리즘'으로 비판받을 가능성이 높다.
환경 운동가나 인권 운동가들이 단식을 하는 경우는 있어도, 제도권 내 최고위급 정치인이 이를 선택하는 일은 거의 없다. 다수당의 횡포가 억울하면 선거에 이길 궁리를 하는 것이 정도다.
왜 유독 한국에서 자주 일어나는가? 한국은 경제적, 문화적으로 선진국 반열에 올랐음에도 '단식 투쟁'이 빈번한 독특한 케이스다.
당연히 군사 독재 시절, 언론과 제도가 막힌 상황에서 YS(김영삼), DJ(김대중) 등 야권 지도자들이 목숨을 걸고 할 수 있는 유일한 저항 수단이 단식이었다. 이 도덕적 선명성의 기억이 여전히 한국 정치에 강력하게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 민주화 투쟁의 유산이 전통이 된 듯하다.
우리 정치의 승자독식 문화는 타협과 협치보다는 '상대를 죽여야 내가 산다'는 극한 대치 상황을 자주 발생시키는 이유가 될 것이다. 제1 야당이라 해도 법안 강행 처리를 막지 못하거나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막히면, 지지층을 결집하고 국면을 전환하기 위해 '충격요법(단식)'을 꺼내 든다.
한국 정치에서 지도자의 '고행(신체적 고통)'은 지지층에게 강력한 울림을 주고 "대표가 목숨을 걸고 싸운다"는 이미지는 내부 결속을 다지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 중 하나로 인식되는 것 같다.
한국처럼 제도권 정치가 안정된 민주주의 국가(OECD)의 제1야당 대표가 단식을 주요 정치 전술로 사용하는 나라는 사실상 한국이 유일하다고 봐도 무방하다.
우리의 정치가 경제적 문화적 수준에 비해 인도 수준에서 머물고 있거나, 과거 동유럽과 남미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뜻이다. 단식 투쟁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은 한국 정치가 얼마나 국격에 비해 근대화되지 않았다는 것을 시사한다.
부디 단식하시는 분 건강 해치지 않고 마무리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렇지 않아도 OECD 자살률 1위 국가에서 생명 경시로 보일 수 있는 단식 투쟁은 버려져야 할 유습이다. (우리 사회는 생명 경시의 극단적 언어가 일상화되어 있는 나라다. 결사반대, 자폭하라는 등의 언어를 아무렇지 않게 쓴다.)
관행화되었지만 따지고 보면 정치 후진국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모습이다.
btlee@kaist.ac.kr
#장동혁단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