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를 사냥하는 검찰·언론...누가 살아남을까
지도자가 나오지 않는 이유는 단순하다. 지도자로 성장하기 전에 죽기 때문
[최보식의언론=김정기 세계스마트시티기구(WEGO) 사무총장(전 동국대 경영전문대학원 석좌교수, 전 상하이 총영사)]
한국에는 지도자가 없다. 우리는 습관처럼 정치인은 3류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말은 절반만 맞다. 정치인이 3류라면, 그 정치인을 뽑아내고 소비하며 조롱하는 시민사회도 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지도자는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지도자는 우연히 등장하는 영웅이 아니라, 제도와 문화가 만들어낸 산물이다. 그런데 한국은 그 산물을 생산하지 못하는 나라가 아니라, 생산되기 전에 파괴하는 나라가 되어버렸다.
지금 한국에서 지도자가 나오지 않는 이유는 단순하다. 지도자로 성장하기 전에 죽기 때문이다. 검증이 아니라 '사냥'이 먼저다.
실수는 선거로 심판하면 된다. 정책 실패는 토론으로 따지면 된다. 그런데 우리는 정책 판단을 수사로 들이대고, 행정 결정을 범죄로 재구성한다. 정치가 사법의 언어로 해석되는 순간, 지도자는 결단할 수 없다. 결단하면 죽기 때문이다. 국정은 운영이 아니라 생존이 되고, 정치인은 지도자가 아니라 무사히 임기만 채우는 기술자로 전락한다.
정치가 지도자를 만드는 과정은 원래 거칠다. 실패도 있고 논쟁도 있다. 그러나 그 거침은 민주주의의 성장통이어야지, 형사처벌의 공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지금 한국 정치는 잘하면 욕먹고, 못하면 수사받고, 결정하면 탄핵당하는 구조로 굳어졌다. 이런 구조에서 누가 책임을 지겠는가. 책임을 지는 사람은 사라지고, 책임을 피하는 사람만 남는다. 그 결과 국정은 결단이 아니라 눈치로 굴러간다.
이 파괴 구조의 두 축은 검찰과 언론이다. 검찰은 수사로 정치를 흔들고, 언론은 의혹을 확정처럼 팔아 여론으로 처형한다.
중요한 것은 진실이 아니다. 이미지는 한 번 만들어지면 되돌리기 어렵다. 무죄가 나와도 끝나지 않는다. 판결이 아니라 프레임이 정치생명을 끝낸다.
지도자를 검증하는 것이 아니라, 지도자를 만들기 전에 죽여버리는 구조다. 이런 사회에서 누가 지도자가 되려 하겠는가. 유능한 사람일수록 정치를 피한다. 들어오는 순간 인생이 끝나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물론 부패는 수사해야 한다. 권력형 비리는 단호히 처벌해야 한다. 그러나 수사가 정치의 대체물이 되는 순간, 민주주의는 기능을 멈춘다. 정책 실패는 정치가 책임져야 하고, 부패와 대가성은 형사가 다뤄야 한다. 이 경계가 무너질 때 국정은 운영이 아니라 방어가 된다.
한국의 정치는 선거가 아니라 수사 일정표에 맞춰 움직인다. 공천은 경쟁이 아니라 리스크 관리가 되고, 국정은 비전이 아니라 방어가 된다. 대통령이든 장관이든, 국회의원이든, 결단을 내리기 전에 먼저 떠올리는 것은 국가의 이익이 아니다.
“이 결정이 수사 대상이 되지 않을까?” “언론이 어떻게 쓸까?” “검찰이 엮으면 끝인데?”
민주주의는 책임정치로 굴러가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책임정치를 사법으로 분쇄하고 있다.
탄핵도 비슷하다. 탄핵은 국가의 최후 안전장치다. 대통령이 헌법을 파괴했을 때, 국가를 지키기 위해 가동되는 비상장치다. 그러나 남용되면 그것은 안전장치가 아니라 정치 무기가 된다.
한국은 탄핵을 최후 수단이 아니라 정치의 일상 도구로 만들고 있다. 탄핵이 남발되는 나라에서 권력은 결단하지 않는다. 국정은 상시 마비 상태로 들어가고, 국가 운영은 중장기 전략이 아니라 단기 생존 게임으로 추락한다. 오늘의 결정을 내일의 탄핵 카드로 되돌려치는 나라에서, 누가 국가 10년 계획을 말할 수 있겠는가.
여기에 돈의 구조가 불을 붙인다. 한국 정치는 고비용 구조다. 그러나 돈을 당당하게 모을 길은 좁다. 정치인이 합법적으로 후원금을 모으는 순간에도 돈 냄새라는 비난이 따라붙는다.
반대로 정치에 돈이 안 들어가면 무엇이 들어오는가. 음지의 돈, 거래의 돈, 줄을 타는 돈이 들어온다. 회색지대는 다시 검찰의 먹이감이 되고, 언론의 사냥감이 된다. 결국 한국 정치는 돈을 모으면 의심받고,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기형 구조에 갇힌다. 사람을 욕하기 전에 구조를 봐야 한다. 정치는 도덕주의로 깨끗해지지 않는다. 양지의 제도로만 깨끗해진다.
그러나 마지막 책임은 국민에게도 있다. 우리는 새것을 좋아한다. 새 얼굴에 열광한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신상품 경매'가 아니다. 지도자는 축적되는 자산이다. 경험이 쌓이고, 실력이 다듬어지고, 실패를 통해 성장한다.
그런데 우리는 4년마다 국회의원의 절반을 갈아치운다. 정치가 축적되기 전에 단절된다. 경륜이 쌓이기 전에 정치가 끊기고, 끊긴 자리에 다시 초보자가 들어온다. 초보자는 결단하지 못한다. 결단하는 순간 죽기 때문이다. 결국 정치는 더욱 기술자 정치로 가고, 국가는 더욱 표류한다.
우리는 인물을 보고 뽑는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정당을 보고 찍는다. 공천 권력이 후보를 만들고 유권자는 스티커를 붙인다. 유권자는 선거에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승인만 한다. 민주주의의 신성한 권리를 스스로 포기하는 셈이다.
그 포기의 결과가 오늘의 지도자 부재다. 지도자는 선거판에서 자연발생하지 않는다. 시민이 키우고, 견디고, 기다려주고, 심판하며 만들어낸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기다리지 않는다. 키우지 않는다. 오히려 키우기 전에 베어버린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정치인보다 시민의 판단 수준이다. 고졸자의 70%가 대학에 간다. 겉으로는 자칭 지성인의 나라다. 그러나 집단의 정치 판단은 과연 그만큼 성숙해졌는가.
내가 보기에 시민의 정치지능, 이른바 정치적 아이큐(PQ)는 두 자리 숫자에 머문다. 정치에 대한 관심은 뜨겁지만, 정치를 제대로 이해하려는 노력은 차갑다. 그래서 많은 시민이 사실상 정치 문맹 상태로 여론의 파도에 떠밀린다.
정치적 판단은 공부하지 않으면 생기지 않는다. 뉴스를 많이 본다고 판단력이 생기지 않는다. 정치인의 말싸움을 본다고 국가 운영의 원리가 이해되지 않는다.
문제는 국민이 어리석어서가 아니다. 정보는 넘치는데, 판단을 훈련받을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틈을 선동과 프레임이 파고든다. 분노가 판단을 대신하고, 혐오가 분석을 대신한다. 그리고 그 감정은 언론이 공급하고 검찰이 증폭한다. 시민은 그 감정의 소비자가 된다. 이 구조에서 지도자는 태어나지 않는다. 지도자는 국정 운영자가 아니라 표적이 된다.
조선 시대에는 인구 10%의 사대부가 교육을 독점했고, 90%의 농공상은 문맹이었다. 그런데도 오늘 우리의 정치적 옳고 그름을 가르는 기준이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면, 이는 교육의 실패가 아니다. 시민의 품격이 무너진 것이다.
민주주의는 학력으로 굴러가지 않는다. 시민의 성숙으로 굴러간다. 그런데 우리는 학력만 높아졌지, 시민의 성숙은 따라오지 못했다. 대학은 갔지만, 민주주의는 배우지 않았다. 지식은 늘었지만, 판단력은 자라지 않았다.
이제 해법은 분명하다.
첫째, 정치와 사법의 경계를 다시 그어야 한다. 정책 실패는 정치로 책임지고, 부패와 대가성은 형사로 처벌해야 한다. 정책을 수사로 다루는 순간 국정은 멈춘다. 그 멈춤이 반복되면 국가는 뒤로 간다.
둘째, 탄핵은 가능하되 남용은 불가능하게 바꿔야 한다. 탄핵이 일상화되면 국가 운영은 상시 마비 상태가 된다. 탄핵은 최후의 수단이어야지, 정치의 버튼이 되어서는 안 된다.
셋째, 언론의 처형 구조를 끊어야 한다. 의혹 장사로 사람을 죽이고도 책임지지 않는 시스템은 민주주의를 파괴한다. 사실을 보도하는 언론과, 의혹을 유통하는 언론을 구분해야 한다. 언론이 권력이 되는 순간, 민주주의는 여론재판으로 타락한다.
넷째, 정치자금은 국민 세금과 국민 후원으로 양성화하고, 회계는 전면 공개해야 한다. 합법 통로를 넓히고 불법은 즉시 퇴출시키는 둑을 세워야 한다. 정치가 음지에서 돈을 만지게 만들면, 그 순간부터 국정은 협박과 거래의 대상이 된다.
마지막은 국민의 각성이다. 정치인을 욕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그 비난은 국가를 살리지 못한다. 지도자는 개인이 아니라 시스템이 만든다. 지도자를 사냥하는 검찰·언론의 구조, 지도자를 키우지 못하는 시민의 습관, 지도자를 축적하지 못하는 정치 소비 문화가 대한민국을 약하게 만들고 있다.
지도자를 원한다면, 먼저 지도자가 결단할 수 있는 공간을 보장해야 한다. 지도자를 기다리는 나라가 아니라 지도자를 만들어내는 나라로 다시 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앞으로도 지도자를 찾지 못할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찾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찾기 전에 또 죽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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