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무한 질주'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한미 관계는 안보동맹의 언어로 유지되더라도 통상동맹의 언어로는 더 거칠어질 가능성

2026-01-17     최보식

[최보식의언론=김정기 세계스마트시티기구(WEGO) 사무총장(전 동국대 경영전문대학원 석좌교수, 전 상하이 총영사)]

백악관 X 캡처

제국은 외부의 침공이 아닌, 내부의 균열로부터 무너진다. 로마도 그랬고, 청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오늘날 미국 역시 낮은 단계에서 그 전조를 보이고 있다. 한때 자유무역과 달러 패권을 무기로 세계 경제를 주도했던 미국은 이제 자국 시장을 방어하기 위해 관세 장벽을 치고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다시 꺼내든 관세 전쟁은 단순한 무역 조정 수단이 아니다. 그것은 미국이 직면한 구조적 위기의 반영이며, 이를 타개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미국은 세계 패권국으로서 제국 운영 비용을 외부로부터 조달해왔다. 핵심 수단은 국채, 달러, 에너지, 금융기구를 축으로 하는 복합 시스템이었다. 미국은 신뢰 기반의 금융시장을 통해 세계 각국—특히 중국, 일본, 중동 산유국들—에 국채를 판매해 방대한 재정을 충당했고, 달러를 세계 기축통화로 유지하여 자국 통화 발행만으로도 물자와 군사력을 확보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

또한 석유수출국기구(OPEC)와의 전략적 협력을 통해 페트로달러 체제를 구축했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한 산유국들과의 협정을 통해 석유 거래를 달러화함으로써 달러 수요를 인위적으로 유지했고, 이는 미국의 에너지 패권을 공고히 하는 수단이 되었다.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WB) 등 국제 금융기구들을 주도하면서 세계 금융 질서를 설계하고, 개발도상국에 대한 금융 지배력을 행사했다. 미국은 자금 지원, 채무 조정, 구조조정 등을 통해 글로벌 영향력을 확대했고, 이를 외교·군사적 지렛대로 활용해왔다.

이러한 복합적 시스템은 글로벌 선순환 구조로 설계되었다. 미국은 개발도상국의 성장을 도우고, 그 대가로 자국 국채를 소화시키는 방식으로 제국을 운영하는 비용을 흡수해왔다. 일본과 중국이 대표적인 후원자였고, 미국은 이 자금을 바탕으로 전 세계에 군사기지를 유지하며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를 실현해왔다.

하지만 이 질서는 중국의 부상과 함께 균열되기 시작했다. 시진핑 체제 이후 중국은 미국 국채 매입을 전략적으로 조절하며 ‘후원자’ 역할에서 한 발 물러섰고, 일부 구간에서는 미국의 재정 안정성을 흔드는 변수로 작동했다. 일본 역시 조용히 속도를 늦췄다. 그 결과, 미국의 재정은 점차 기반을 상실했고, 연방정부의 적자는 구조적으로 고착화되었다.

이 상황에서 트럼프는 두 가지 해법을 동시에 꺼냈다. 첫째는 국내 비효율 제거, 즉 제조업 부흥과 행정 개혁이고, 둘째는 대외 수익 회수, 즉 관세 전쟁이다.

트럼프는 미국 경제의 구조적 비효율을 제거하기 위해 두 가지 방향에서 개혁을 추진해왔다. 우선, 제조업 부흥을 목표로 규제 완화를 전면에 내세웠다. 환경 규제, 노동 규제, 금융 규제를 완화하며 ‘Made in America’를 외쳤고, 국내 생산기지 회복을 유도했다. 다음으로, 연방 정부의 비대화를 문제 삼고 행정 개혁에 착수했다. 연방 공무원 수를 줄이고, 불필요한 예산과 정부 프로그램을 삭감하며, 워싱턴 정치의 관료주의를 공격했다. 트럼프식 정부 개혁은 ‘작지만 강한 정부’라는 구호로 포장되지만, 본질은 국가의 부담을 줄이고 기업의 회귀를 압박하는 재정·산업 재편의 성격이 강하다.

트럼프는 중국에 대해 직접적이고 강경한 압박을 가했고, 한국·일본·EU 등 전통적 동맹국에도 예외를 두지 않았다. 트럼프의 관세는 단순한 보호무역 조치가 아니라, 미국의 재정난을 타개하고 자국 산업을 재건하기 위한 신(新)제국 전략이었다. 이는 기존 세계질서를 뒤흔드는 시도였다. 

자유무역이라는 외교적 탈을 벗고, 노골적인 자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선언했다. 제조업의 본국 회귀, 기술 이전 차단, 외국 기업에 대한 투자 규제는 공정한 교역을 내세운 외교 언어 너머에 숨겨진 국가 수익 회수 중심의 전략 전환을 의미한다.

바이든 행정부는 언어는 달랐지만, 산업정책과 공급망 재편이라는 실질은 이어갔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반도체지원법(CHIPS and Science Act)은 동맹을 포용하는 듯 보이지만, 결과적으로는 미국 내 투자와 고용을 강제하는 방식으로 동맹국 기업을 ‘미국 산업정책의 부속품’으로 편입시키는 구조였다.

문제는 한국이다. 한미동맹의 굳건함을 외치지만, 현실은 다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이후 한국은 미국 시장에서 무관세 국가로 대우받았으나, 트럼프 1기 시절부터 그 원칙은 흔들렸다. 트럼프는 2018년, 한국산 철강에 대해 25% 관세를 부과하고 쿼터제를 강요했으며, 자동차 산업에 대해서도 수입 제한 압박을 가했다. 한미 FTA는 최악의 협정이라는 트럼프의 인식은 결국 FTA 재협상으로 이어졌고, 한국은 미국 중심의 조건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바이든 행정부 역시 가치 동맹을 강조했지만, IRA 및 CHIPS 국면에서 한국은 보조금·세제 혜택의 설계 구조 속에서 불리한 조건을 감수해야 했다. 전기차, 배터리, 반도체 등 미국의 전략 산업에서 한국 기업은 사실상 ‘미국 내 생산’이라는 조건을 떠안았고, 미국 정치는 동맹의 약속보다 자국의 선거, 자국의 노동, 자국의 표를 우선했다.

그리고 트럼프 2기 시대가 다시 열렸다. 트럼프는 동맹국을 포함한 전면적 상호관세 카드를 다시 꺼내 들며, 철강·자동차·첨단 제조업을 중심으로 관세와 비관세 장벽을 결합한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한국의 핵심 수출 산업인 반도체·조선 부문에 대해서도 일정 기간 유예나 협상의 여지는 열어두되, “미국 기업과 미국 노동을 해치는 협정은 끝내겠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이 말은 곧 협상 가능성은 열려 있지만, 미국의 조건에 따를 경우에 한정된다는 뜻이다.

한국은 동맹국이지만, 경제와 통상의 영역에서는 더 이상 예외가 아니다. '혈맹'이라는 이름 아래 무임승차라는 낙인이 찍히지 않으려면, 이제는 새로운 기준으로 미국과 거래를 재설계해야 할 시점이다. 2026년 초로 접어든 지금, 한미 관계는 안보동맹의 언어로 유지되더라도 통상동맹의 언어로는 더 거칠어질 가능성이 높다.

지정학적 구도도 심상치 않다.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일본은 핵심 파트너로 부상한 반면, 한국은 전략적 주변부로 밀리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미국의 동아시아 구상이 ‘일본 중심의 작전·기술·산업 축’으로 재정렬될수록, 한국은 동맹이면서도 동시에 ‘관리 대상’이 되는 역설을 마주할 수 있다. 

관세 협상과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한국이 후순위로 밀리는 장면은, 1950년 애치슨 선언 당시 한반도가 방위선 밖으로 밀려나 전쟁에 휘말렸던 역사적 경험을 떠올리게 한다. 북한의 도발 위협은 여전히 상존하고,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까지 고려하면, 한반도는 지정학적 최전선에 놓여 있다.

이런 현실 앞에서, 한국은 생존 전략을 새롭게 설계해야 한다.

첫째, 기술주권 확보가 시급하다.

반도체, AI, 바이오, 양자기술 등 미래 산업에서 미국이나 중국 어느 한쪽에도 종속되지 않는 자립 역량이 절실하다.

둘째, 경제 블록의 다변화가 필요하다.

미·중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전략을 넘어서, 인도·동남아·중동·유럽·BRICS+ 등과의 다극적 협력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

셋째, 외교 전략의 전환이 요구된다.

동맹은 유지하되, 이념 중심 외교에서 벗어나 이익 중심의 실용외교로 체질을 바꿔야 한다.

물론 미국은 여전히 세계 최강국이다. 자유민주주의, 법치주의, 브레튼우즈 체제의 중심 통화, 첨단 기술력, 막강한 군사력, 그리고 헐리우드·스타벅스·맥도날드로 상징되는 문화적 확산력까지—미국은 단순한 국가를 넘어 문명국가(Civilizational State)로 자리잡아왔다. 여기에 백인 앵글로색슨 개신교도(WASP), 유대인, 전문직 종사자, 고급 이민이라는 4대 인적 자산이 더해져 독보적인 글로벌 영향력을 형성해왔다.

그러나 그 문명 중심부에서 이제 균열이 시작되고 있다. 달러 패권을 지탱하던 신뢰 기반은 약화되고, 자국 우선주의는 자유무역의 가면을 벗기고 있다. 트럼프의 관세 전쟁은 미국 내부의 위기에서 비롯된 것이며, 그 비용은 고스란히 동맹국들에게 전가되고 있다.

한국은 지금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쇠퇴하는 제국의 그늘에 안주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문명을 준비하는 주체국가로 도약할 것인가. 두려워할 때가 아니다. 준비할 때다. 동맹의 그늘을 넘어, 국익의 깃발을 들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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