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비밀공작에 희생된 한 광고인의 인생
[최보식의언론=엄상익 논설위원]
1998년 3월 17일 오전.
박민영은 사무실 책상에 앉아 한겨레신문을 펼쳤다. 커피잔에서 김이 피어올랐다. 3면을 넘기다가 그의 손이 멈췄다.
'암호명 명왕성, 광고회사 전무로 위장해 북한 왕래'
제목이 눈에 박혔다. 심장이 쿵, 하고 한 번 크게 뛰었다. 북한과 광고 계약을 맺은 회사는 대한민국에서 단 하나, 그의 회사였다.
그는 기사를 다시 읽기 시작했다. 글자 하나하나가 선명하게 들어왔다. 명왕성의 북한 방문 일지가 상세하게 나와 있었다. 1992년 1월, 1993년 5월, 1994년 8월...
정신이 아뜩했다. 주변의 소리들이 사라졌다. 그는 진공 속 한가운데 있는 것 같았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책상 한쪽에 있던 서류철을 끌어당겼다.
'박 전무 출장 일지'.
페이지를 넘기며 신문 기사와 대조했다.
1992년 1월 15일 - 일치.
1993년 5월 22일 - 일치.
1994년 8월 3일 - 일치.
모든 날짜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서류철을 덮었다. 어지러웠다. 아니, 그의 세계가 흔들리고 있었다. 9년간 쌓아온 모든 것이 굉음을 내며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의 회사가 국가안전기획부의 비밀공작에 이용되어 왔던 것이다.
9년 전, 1989년 어느 날, 광고회사 사장인 박기영의 머릿속에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평양 거리를 배경으로 광고를 만들면 어떨까?'
그는 광고 콘티를 그리기 시작했다. 배우 안성기가 지프를 타고 판문점 철책을 연다. 북으로 달린다. 핸드폰으로 통화한다. 평양 거리가 펼쳐진다.
히트할 게 분명했다.
그는 북한을 뚫기 위해 중국으로 날아갔다. 하얼빈에서 중개인을 만났다. 거액을 주었다. 사기였다. 두만강 유역에서 몰래 북한을 촬영하다가 공안에 붙잡혔다.
7년을 뛰어다녔다. 냉전의 벽은 너무 두꺼웠다. 빚만 늘어갔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는 집요하게 구멍을 찾았다.
1991년 가을, 아파트 이웃에 살고 있는 남자가 그를 찾아왔다. 아이들이 같은 유치원을 다니고 있어 엄마끼리 아는 사이였다. 악수를 나눴다. 키가 크고 어깨가 넓은 이웃집 남자는 육군 소령 출신이라고 했다. 성격이 시원시원했다. 아파트 동대표 일도 솔선수범했다.
어느 날 저녁, 두 사람은 아파트 단지 벤치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요즘 고민이 많아 보이시네요."
이웃집 남자가 입을 열었다. 부인을 통해 대충 어떤 일을 하는지 알고 있는 눈치였다.
"7년째 북한 광고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데... 벽이 너무 두꺼워요."
박민영이 한숨을 쉬었다. 그 순간 이웃집 남자의 눈빛이 반짝였다.
"북한 광고요? 재미있는데요."
"재미있긴요. 돈만 날리고 있죠."
"저 군 제대하고 북한이랑 무역 좀 했어요. 연줄이 있습니다."
박민영은 귀가 솔깃해졌다.
"정말입니까?"
놀란 표정이었다.
"필요하시면 도와드릴 수 있어요."
이웃집 남자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들어 있었다.
그날 밤 박민영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바늘구멍 같은 좁은 문이 열릴 수 있을까.
1992년 1월, 이웃집 남자는 박민영의 광고회사 전무로 들어왔다.
박민영은 북한광고사업에 전 재산을 투자했다. 부족한 돈은 주변에서 끌어모았다. 처남도, 대학 친구도, 회사 직원들도 돈을 맡겼다.
"여보, 이번이 마지막 기회예요."
아내가 전세 보증금까지 빼서 건넸다.
박 전무가 평양을 다녀왔다.
"계약 가능성 있습니다. 다음 달 다시 가야 해요."
그해 여름, 마침내 북한 조선 국제 광고회사와 계약이 체결됐다.
박민영 사장과 박전무는 술잔을 부딪쳤다.
"수고하셨습니다. 전무님! 정말 감사합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사장님."
1993년 봄, 박민영은 평양에 있었다. 촬영이 순조로웠다. 대동강변, 주체사상탑, 김일성광장... 꿈에 그리던 장면들이 카메라에 담겼다.
촬영을 마치고 박전무와 함께 옥류관에 갔다. 냉면이 나왔다.
"사장님, 이 맛 좀 보세요. 평양냉면은 역시 여기가 최고죠."
박 전무가 국물을 후루룩 마셨다.
"평양냉면은 역시 여기가 최고죠"
박민영도 젓가락을 들었다. 차가운 육수가 목을 타고 넘어갔다. 행복했다.
그때 한 노인이 들어왔다. 박 전무가 일어나 인사했다.
"오 선생님, 여기 계셨습니까?"
월북한 천도교 교령 오익제였다.
박민영은 신기한 듯 바라봤다. 남과 북이 이렇게 한 식탁에 앉아 냉면을 먹고 있었다. 불가능이 가능이 되는 순간이었다.
과거를 흐르던 박민영의 의식이 다시 1998년 3월 17일로 돌아왔다.
박민영은 사무실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인생의 모든 것을 걸었다. 주위 사람들의 피같은 돈을 공물로 바쳤다. 처남의 돈, 직원들의 돈, 전세보증금'
처음부터 그들의 함정에 빠졌다. 모든 장면들이 거짓이었다. 박 전무와의 우연한 만남도, 벤치에서 나눈 커피도, 평양 옥류관에서의 냉면도.
박 전무는 처음부터 안기부 공작원이었다.
국가가 이렇게 선량한 국민을 기만해도 되는 것일까. 더 약이 오르는 일이 있었다. 그의 아이디어가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의 소떼 몰이로 현실화된 것이다. 1998년 6월, 정주영이 소 500마리를 이끌고 판문점을 넘었다. 전 국민이 환호했다.
그 장면을 TV로 보면서 박민영은 텅 빈 통장을 바라봤다. 7년 전 자신이 그린 광고 콘티가 떠올랐다. 지프를 타고 철책을 여는 안성기. 똑같았다.
왜 명왕성의 정체가 폭로된 것일까?
1997년 12월, 청와대의 주인이 김대중으로 바뀌었다. 검찰 특별수사팀은 김대중 낙선 공작을 한 인물들을 구속하기 시작했다.
안기부 김대성 차장은 위기를 느꼈다. 밤새 문서를 작성했다.
'명왕성 공작 보고서'
그건 그들의 목숨이 달린 생명줄이었다. 방패이기도 하고 칼이기도 했다.
명왕성 공작을 통해 얻은 정보들. 그 안에 김대중 정권의 약점들이 들어 있었다. 그 내용들이 언론으로 흘러들어간 것이다. 권력투쟁의 포탄이 날아가 맞은 것은 엉뚱하게 광고회사 사장 박민영이었다.
2000년 여름, 박민영이 내 법률사무소 문을 열고 들어왔다.
처음 본 그는 초췌했다. 왼쪽 얼굴이 살짝 일그러져 있었다. 안면신경 마비라고 했다. 귀에는 보청기가 끼워져 있었다.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하고 싶습니다."
박민영이 말했다.
"저는 단칸방에서 삽니다. 아내가 피아노 레슨으로 먹고 살아요."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투자받은 돈은 10억이 넘습니다. 평생 갚아도 못 갚을 돈이에요."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거대한 절벽 앞에 있는 느낌이었다. 승소 가능성이 0.1%도 안 될 것 같았다. 비밀공작, 국가기밀, 공작원 신분 보호. 국가는 뚫을 수 없는 철벽이었다.
나는 그를 보며 생각했다.
'두렵다. 세무조사, 남산 지하실, 국가기밀 누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었다.
'변호사가 이럴 때 아니면 언제 필요할까?'
나는 혼선이 왔다. 흔들리고 있었다.
"저를 위해 소송을 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해 준다는 어떤 변호사도 없었습니다."
한 사람의 꿈과 재산과 인생이 국가의 비밀공작에 이용당하고 철저히 파괴됐다. 그것도 권력자들의 싸움판에서 희생양이 된 것이다.
나는 겁이 나고 주저했다. 창 밖을 봤다. 서울의 빌딩들이 보였다. 저 안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국가에 짓밟히고 있을까.동시에 내면 깊은 곳에서 분노가 타올랐다. 묘한 투지가 솟아 올랐다.
"하십시다."
내가 대답했다. 왜 무모하고 가능성 없는 일을 맡았는지 지금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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