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삼키려는 '그린란드' 총정리...원래 이 땅의 주인은?

'바이킹의 땅'으로 잘 알려져있지만 바이킹은 미스테리하게 이 땅에서 사라지고

2026-01-15     최보식

[최보식의언론=이병태 카이스트 명예교수 ]

MBC 화면 캡처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이 차지해야겠다고 밝힌 덴마크 자치령인 '그린란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14일(현지시간) 워싱턴 DC의 백악관에서 미국 JD 밴스 미 부통령과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덴마크 라르스 뢰케 라스무센 외무장관, 그린란드 비비안 모츠펠트 외무장관이 만났다. 하지만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걸로 전해졌다. (편집자)

그린란드는 미국과는 아무런 역사적 연고가 없지만, 부동산 개발업자 트럼프는 역사에 남는 영토 확장의 야망을 보이고 있다.

북극의 섬들이 온난화 덕에 사람이 살기에 더 좋은 땅이 되고 자원개발이 더 용이해지고, 북극을 통해 물류가 더 활발해져서 경제성이 크게 늘어나는 것과 무관하지 않은 욕심들이 충돌하고 있다.

그린란드는 전체 인구가 약 5만 7천 명(2024년 기준) 정도로 적은 편이며, 주민의 대다수는 원주민인 이누이트(Inuit)로 구성되어 있다. 인류학적, 유전학적으로 이누이트는 북방계 몽골로이드(Northern Mongoloid)에 속하며, 넓게 보아 한국인, 몽골인, 시베리아 원주민과 같은 동북아시아인과 뿌리가 같다. 멀리 보아 우리와 유전자를 많이 공유하고 있다.

그린란드 이누이트가 전체 인구의 약 85%~90%의 토착 원주민으로, 스스로를 '칼라흘리트(Kalaallit)'라고 부른다.

'바이킹의 땅'으로 잘 알려져있지만 바이킹은 미스테리하게 이 땅에서 사라지고 바이킹 후손들은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주로 거주한다.

오랜 기간 덴마크와 교류해왔기 때문에 순수 혈통보다는 초기 유럽 정착민(주로 덴마크인)과의 혼혈 비중이 상당히 높다. 덴마크인 및 유럽계 (Danish/European)은 약 10%~12%를 구성한다.

19세기 미국의 영토 확장의 역사는 다음과 같다.

1803년 루이지애나 매입이 있었다. 당시 토머스 제퍼슨은 프랑스로부터 현재 미국의 중서부, 서부, 남부 지역의 일부를 매입한 것이다.

1848년 멕시코-미국 전쟁 이후 평화 협정의 일환으로 멕시코는 현재의 캘리포니아, 네바다 및 기타 주를 포함한 영토를 미국에 넘겨주었다.

1867년에는 러시아로부터 알래스카를 매입했다. 당시에는 알래스카가 얼음 창고 같고 너무 비싸다는 이유로 조롱 받았다. 이것이 미국이 19세기에 영토를 큼직큼직하게 확대한 역사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뜻대로 "그들이 좋아하든 싫어하든" 그린란드를 차지하게 된다면, 그린란드는 역대 최고의 영토 확장이 된다. 면적이 83만 6천 제곱마일에 달하는 그린란드는 프랑스,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 독일의 영토를 합친 것보다 더 크다.

북극에서 가까운 두 섬이 있다. 하나는 노르웨이 영토이지만 누구나 비자없이 들어가서 활동할 수 있는 섬 스발르바드다. 100년 이상 자유 지역이었던 이 섬을 최근 노르웨이가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거대한 섬 그린란드다. 덴마크 왕국의 영토이지만 자치 지역이다.

그린란드가 덴마크 왕국의 영토가 된 과정은 노르웨이와의 연합'과 '국제 조약(킬 조약)'이라는 역사적 우연과 외교적 결과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 시작은 '노르웨이'의 영토 (1261년)

원래 그린란드에 정착한 바이킹들은 아이슬란드와 노르웨이 출신이었다.

985년 '붉은 에리크'가 그린란드에 정착지를 건설했다. 1261년 그린란드의 정착민들은 노르웨이 왕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세금을 내기로 합의하면서 노르웨이 영토가 되었다.

* 칼마르 동맹: 덴마크-노르웨이 연합 (1397년)

1397년,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3국이 칼마르 동맹을 맺으면서 한 명의 왕을 모시게 되었다. 실질적인 주도권은 덴마크가 쥐고 있었기 때문에, 노르웨이의 영토였던 그린란드도 자연스럽게 덴마크-노르웨이 연합왕국의 관리 하에 놓이게 되었다.

이후 약 300년 동안 기후 변화 등으로 그린란드의 바이킹 정착지는 소멸했으나, 덴마크-노르웨이 왕국은 영유권을 포기하지 않았다.

* 재식민지화와 킬 조약 (1814년)

1721년 덴마크-노르웨이의 선교사 한스 에게데(Hans Egede)가 그린란드로 넘어가 선교 활동과 무역을 시작하며 실효 지배를 다시 확립했다.

* 1814년 (킬 조약)

나폴레옹 전쟁에서 패배한 덴마크는 승전국 측인 스웨덴에 노르웨이 본토를 넘겨줘야 했다. 이때 덴마크 협상단은 조약 문구에서 "노르웨이의 해외 영토 (그린란드, 아이슬란드, 페로 제도)는 제외한다"는 조항을 넣는 데 성공했다. 결과적으로 노르웨이는 스웨덴으로 넘어갔지만, 원래 노르웨이 땅이었던 그린란드는 덴마크 소유로 남게 되었다.

20세기 초, 독립한 노르웨이가 '그린란드의 일부(동그린란드)는 우리 땅'이라며 영유권을 주장했다. 그러나 1933년 상설국제사법재판소(PCIJ)는 덴마크의 손을 들어주었고, 이로써 그린란드 전체에 대한 덴마크의 주권이 국제적으로 완전히 공인되었다.

덴마크의 영토이지만 그린란드에서 덴마크 수도까지의 거리는 미국의 워싱톤 DC까지의 거리 보다도 멀다.

승전국들의 섬의 영유권 협상은 우리의 독도 영유권 분쟁의 씨앗이 된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을 생각하게 된다.

2차 대전 후 1951년 9월 8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연합국과 일본 사이에 체결된 이 조약은 일본의 영토 범위를 확정 짓는 결정적인 문서였다. 문제가 된 조항은 다음과 같다.

"일본은 한국의 독립을 인정하고, 제주도, 거문도 및 울릉도를 포함한* 한국에 대한 모든 권리, 권원 및 청구권을 포기한다."

한국의 영토로 반환되는 섬의 목록에 큰 섬들(제주, 거문, 울릉)만 예시로 나열되었고, *독도'라는 단어가 빠져 있었다. 이로 인해 "명시되지 않았으니 독도는 일본 땅으로 남은 것"이라는 일본 측 주장과, "울릉도의 부속 도서로서 당연히 포함된 것"이라는 한국 측 주장이 충돌하게 되었다.

원래 연합국 최고사령부(SCAP)의 초기 지령(SCAPIN 677호 등)에서는 독도를 일본의 통치 구역에서 명확히 제외했었다. 그러나 조약 초안이 수정되는 과정에서 냉전이라는 국제 정세가 개입했다. 초기 초안에 독도를 한국 영토로 명시했었으나 냉전이 심화되자 미국은 일본을 아시아의 반공 거점으로 삼고자 했다. 주일 미 정치고문 윌리엄 시볼트(William Sebald)는 "독도가 일본의 기상 관측이나 레이더 기지로 유용하다"며 일본 영토로 남겨야 한다고 본국을 설득했다.

조약 체결 직전인 1951년 8월, 한국 정부가 "독도를 조약문에 명시해 달라"고 요청하자, 딘 러스크 미 국무차관보는 "독도가 한국 영토라는 역사적 정보가 없다"며 이를 거부하는 비밀 서한을 보냈다. 미국은 영국 등 다른 연합국과의 이견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독도 문제를 어느 쪽 땅인지 명확히 쓰지 않고 그냥 덮어두는(누락하는) 모호한 방식을 택했다.

일본 로비에 미국이 변심한 샌프란시코 강화 조약에서 우리의 의사를 분명하게 관철시키지 못한 우리와 달리, 덴마크는 킬 조약에서 자신들의 영토를 지켰다. 아마 그 때 동토에 불과한 땅에 다른 나라들이 그리 큰 관심이 없었던 것도 이유가 아닐까 싶다.

 

btlee@ka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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