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관찰인생] 뚝배기 같은 인생
[최보식의언론=엄상익 논설위원]
손녀가 대학입시 폭풍권으로 들어서고 있다. 독서실에 박혀서 산다. 어쩌다 서울에 가서 식당으로 불러 내도 음식이 나오는 시간까지 영어 단어를 외우거나 패드 속의 수학 문제를 푼다.
손녀를 보면서 아득한 세월 저쪽 검정 교복의 고등학교이었던 나로 돌아간다.
광화문에 있는 독서실이었다. 칸막이 책상들이 벌집처럼 꽉 들어차 있었다. 둥근 양은 찬합에 담긴 밥과 김치로 점심과 저녁을 먹었다. 밥을 먹고 잠시 나른해질 때면 구석의 깨진 유리창으로 길가 전파상에서 틀어 놓은 노래가 바람을 타고 흘러 들어왔다. 가수 양희은 씨의 '아침이슬'이었다.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타오르고...'
장엄한 느낌이 드는 그 가사는 나의 영혼에 깊이 스며 들었다. 한 소절이 나의 추억이고 고향이 되었다.
그 시절 나는 좌절감이 들었다. 대학입시가 눈앞에 닥쳐도 성적은 오르지 않았다. 내가 가고 싶은 대학에 갈 수가 없었다. 나름대로 노력했다. 혼자만 깊은 나락으로 굴러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이던 가을 어느 날 영어 시간이었다. 영어 선생님이 '차탈레 부인의 사랑'이라는 소설을 해석해 주고 있었다. 그중 한 문장이 파도가 되어 가슴 속의 방파제를 치고 넘어 들어왔다.
'장애가 있을 때는 돌아가는 겁니다.'
'돌아가라'는 단어가 살아 있는 생물체가 되어 나의 속으로 들어왔다. 직진밖에 모르던 나는 우회하기로 했다. 지망하는 대학을 포기하고 한 단계 낮추었다.
당시 학교 분위기에서 그건 단순한 입시의 문제가 아니었다. 나라는 인간이 2류로 낮아지는 걸 의미했다. 다른 아이들의 눈에 그렇게 비쳤다. 덕분에 나는 대학에 무난하게 합격했다. 남의 시선보다 내 자신에 맞추어 살아야 한다는 걸 깨달은 첫 번째 경험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는 고시원에서 낭인이 되어 있었다. 다른 친구들은 눈가리개를 하고 질주하는 말처럼 합격을 위해 달리고 있었다.
내가 나를 살펴보았다. 나는 그들같이 독하지 못했다. 고민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나의 뇌리에 날아와 박힌 그 영어 문장이 떠올랐다.
또 돌아가기로 했다. 나는 군법무관 시험에 응시했다. 합격했다. 군에서 10년을 복무하면 변호사 자격을 얻을 수 있었다.
장기 직업 장교가 되어 최전방 철책선 부대에 배치됐다. 영하 20도 새벽, 눈이 휘몰아치는 휴전선을 따라 걸으며 생각했다. 요령 있고 배경 좋은 동기들은 따뜻한 방에서 단꿈을 꾸고 있겠지. 나는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건가.
어느 날 새벽 순찰을 끝내고 바라크 사무실로 돌아왔을 때 책상 위에 작은 성경이 놓여 있었다. 기드온협회에서 군부대에 보내는 선물이었다. 부하는 성경을 뜯어 담배를 말아 피라고 했다. 신앙이 없을 때였다. 처음 보는 성경을 무심히 들춰보았다.
그릇 얘기가 있었다. 금그릇, 은그릇, 질그릇 등 여러 그릇이 있었다. 그릇은 자기를 만든 도공을 원망하지 말라고 했다. 한 덩어리의 진흙으로 어떤 그릇을 만들든지 도공의 마음이라고 했다. 질그릇이라도 비관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자기 역할을 잘 하면 금그릇이나 은그릇 이상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게 위안을 준 문장이었다. 나는 그냥 뚝배기 같은 인생으로 살기로 했다.
한방울의 물방울이었던 내가 어느새 죽음 저쪽의 넓은 바다를 바라보는 강 하구에 와서 빙빙 돌고 있다. 인생의 황혼에 노을이 짙다.
돌이켜보면 2류라고 할 수도 있고 경계인이라고도 할 수 있는 삶을 살아왔다. 법조계의 주류에 들어가지 못했다.
오랫동안 글을 써 왔지만 문단에서도 이방인이었다. 나름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 왔다. 그러나 모범적인 교인 반열에 끼지 못했다. 그게 나의 인생이었다.
솔직히 고백하면 일류가 되지 못한 콤플렉스가 열등감이 되어 나를 괴롭힌 적도 많다. 그러나 늙은 지금에 와서 깨닫는다. 발꿈치를 들고 걸으면 피곤하다. 발을 넓게 벌리면 제대로 걸을 수 없다. 무늬만 일류가 되면 그런 어려움을 겪지 않았을까.
항상 남의 시선을 의식하느라고 신경이 곤두선 인생. 2류는 상대적으로 편안했다. 긴장하지 않아도 됐다.
손녀는 아직 이 말을 이해할 나이가 아니다. 언젠가 알게 되겠지. 일류가 되는 것보다 중요한 건, 자기 그릇에 맞는 삶을 사는 것이라는 걸.
발꿈치를 들지 않고, 발을 넓게 벌리지 않고, 그냥 편안하게 걷는 것이라는 걸. 나는 뚝배기 같은 그릇으로 살았다. 나쁘지 않은 인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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