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부끄러운 조선일보 社說... 예비역 장군의 관점

이미 내려진 결론을 감정적으로 반복하며, “이것이 옳다”는 하나의 방향만을 강요

2026-01-14     최보식

[최보식의언론=주은식 한국전략문제연구소장(예비역 육군준장)]

조선일보 인터넷판 캡처

아래 글은 본지의 입장이 아닙니다. 다양한 관점을 제공하기 위해 게재합니다.(편집자)

사설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부끄러운 조선일보 사설이다. 그동안 한국 신문의 대표주자로 알려져왔던 조선일보 사설 <윤석열 사형 구형, 나라가 부끄럽다>를 보고 참담한 조선일보의 사설 수준과 위상 추락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한마디로 조선일보가 왜 이러지 하는 수준의 사설을 보았다. 그렇게 판단한 이유를 아래에 제시한다.

사설은 언론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의견 표현의 형식이다. 그만큼 사설에는 일반 기사보다 더 높은 윤리적 기준이 요구된다. 특히 사법 판단이 진행 중인 사안, 사회적 분열이 극심하게 대립하는 사안일수록 사설은 감정이 아니라 이성, 분노가 아니라 판단의 여백을 제공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위에 제시한 윤 전 대통령 재판 관련 조선일보 사설은 대표 언론으로서의 자기 절제와 윤리적 균형을 심각하게 상실한 사례라 하지 않을 수 없다.

◆ 사설이 판결을 대신할 수 있는가

문제의 사설은 특검의 공소 주장과 사형 구형을 사실상 확정된 역사적 평가처럼 전제한다. 그러나 구형은 판결이 아니며, 공소 논리는 진실이 아니라 검증의 대상이다. 그럼에도 사설은 ‘헌법 파괴’, ‘장기 집권 목적’과 같은 법적·역사적 판단을 단정적으로 사용하며 독자의 사고를 특정 결론으로 유도한다(특검의 최종 진술을 인용한 것-편집자). 우리 헌법은 헌법을 개정해도 개정 당시 대통령은 중임할 수 없지 않은가? 그런데 무슨 장기 집권목적이라고 단정하는가?

이는 언론이 가장 경계해야 할 태도다. 사설은 판단을 제시할 수는 있지만, 사법부의 최종 판단을 대행하거나 선점해서는 안 된다. 이 선을 넘는 순간, 사설은 공론의 안내자가 아니라 여론 재판의 선동자가 된다. 직함도 '전 대통령'도 안 붙이고 마치 죄를 확정지은 사람처럼 표기했다(제목의 글자 수를 줄이기 위해 관행적으로 그렇게 하기도 함-편집자). 재판과 판결이 끝나기 전까지는 '무죄추정의 원칙'은 언제 사라졌는가? 공소를 한 검찰이 구형을 하면 죄가 확정된다고 판단하는가?

◆ 해외 유력지는 어떻게 다루는가

비슷한 정치적·사법적 위기 상황에서 해외 유력 언론의 사설은 훨씬 더 엄격한 절제를 보여왔다.

뉴욕타임즈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기소와 재판 국면에서, 사설을 통해 정치적 책임과 제도적 교훈을 논하면서도 형사적

유죄여부에 대해서는 끝까지 판결의 영역으로 남겨두었다. 표현은 단호했지만, “법원이 판단할 사안”이라는 문장은 반복적으로 강조됐다.

영국의 가디언지는 영국이 EU에서 탈퇴 시 브렉시트 혼란과 총리 책임론을 다루며 강한 비판을 제기했지만, 사설의 초점은 개인의 도덕적 응징이 아니라 제도의 실패와 민주적 보완 장치에 맞춰졌다. 감정적 언어는 최소화되고, 독자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맥락이 충분히 제공됐다.

파이낸셜 타임즈의 사설은 더욱 절제돼 있다. 정치적 위기 속에서도 ‘누가 옳은가’보다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했는가’, ‘재발을 막기 위한 제도적 개선은 무엇인가’를 중심으로 논지를 구성한다. 이는 FT가 스스로를 판사나 검사로 착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 조선일보 사설의 윤리적 결함과 문제

이와 비교할 때 조선일보 사설의 문제는 분명하다.

첫째, 사실과 평가의 구분이 무너졌다.

‘위헌적’, ‘헌법 파괴’와 같은 표현은 사설의 주장일 수는 있어도, 마치 이미 확정된 사실처럼 사용됐다. 사설의 집필자는 재판관으로 착각한 듯하다. 익명 뒤에 숨어서는 안 된다. 언론이라면 권력을 가진 자보다 약자를 보호하는 게 언론의 태도 아닌가? 진정한 검투사는 시체에 칼을 꽂지 않는다.

둘째, 형벌을 도덕적 응징의 도구로 전용했다.

사형 구형을 계기로 ‘부끄럽다’, ‘참담하다’는 감정적 단어를 남발하며, 법적 판단을 인격적 단죄로 변환했다. 이런 용어를 사용하는 조선일보는 이러한 사태가 되도록 무엇을 했는가? 언론의 사명을 다했다고 자신있게 국민들 앞에서 말할 수 있는가? 광화문 조선일보 사옥 근처에서 벌어지는 광화문집회를 올바르게 보도하는 태도를 견지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가? 신문과 방송을 안 본다는 국민이 대다수 인 줄 알면서도 이런 태도를 보이는가? 탄핵과정에서 주류신문이 택한 스탠스에 독자들이 느끼고 절독했던 분노를 계속 외면할 것인가?  

셋째, 제도 분석 대신 서사적 분노에 기댔다.

왜 이런 사태가 발생했는지, 헌법과 제도는 어떻게 작동했는지, 향후 어떤 안전장치가 필요한지에 대한 분석은 빈약하고, 정치 전체를 싸잡아 질책하는 냉소만 남았다. 87체제 헌법에서 삼권분립의 견제와 균형을 위해 고쳐야 할 방향을 심층분석하여 방향을 제시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가? 지금의 여당이 야당시절 줄탄핵을 할 때도 언론의 사명을 다했는가?  

◆ 사설은 감정을 배출하는 섹션(section)이 아니다

사설은 분노를 대신 표출해 주는 공간이 아니다. 특히 대표 언론의 사설은 독자의 판단 능력을 존중해야 할 의무가 있다. 판단의 자료를 제공하고, 다양한 해석 가능성을 열어두며, 사회가 이성적으로 다음 단계로 나아가도록 돕는 것이 사설의 역할이다.

그런 점에서 문제의 사설은 독자에게 생각할 여지를 주지 않고 있다. 이미 내려진 결론을 감정적으로 반복하며, “이것이 옳다”는 일방통행 만을 강요한다. 이는 가치중립적 경고가 아니라, 시류에 편승한 도덕적 선언에 가깝다.

◆ 대표 언론일수록 더 중립적이고 표현에 숙고해야 한다

언론의 자유는 권리이지만, 대표 언론의 사설은 공적 책임이다. 해외 유력지가 보여주는 절제의 이유는 그들이 덜 비판적이어서가 아니라, 비판의 힘이 절제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주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일보가 진정 ‘대표 언론’을 자임하려면, 판결을 대신하는 언어가 아니라 판단을 돕는 언어, 분노를 확산하는 사설이 아니라 사고를 확장하는 사설로 돌아와야 한다. 그리고 이런 사태가 초래된 근본원인, 제도적 문제, 헌법적 문제에 대한 냉철한 자성을 촉구하고 국민들이 이성적 판단을 하도록 돕고 권력이 부패하거나 난폭해지지 않도록 균형을 잡아주는 사명이 언론윤리가 요구하는 최소한의 품격이다.

다음은 조선일보의 14일 자 사설 '윤석열 사형 구형, 나라가 부끄럽다'의 전문이다. (편집자)

조은석 내란 특검팀이 13일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기소된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구형했다. 특검팀은 “비상계엄은 반국가 세력에 의한 중대한 헌법 파괴 사건”이라며 “사법부와 입법부를 장악해 장기간 집권할 목적이었다”고 밝혔다. 윤 전 대통령 측은 “계엄 선포는 대통령의 정치 행위이기 때문에 사법심사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전직 대통령에게 사형이 구형된 것은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기소됐던 전두환 전 대통령 이후 30년 만이다. 권위주의 시절의 유산으로만 여겨졌던 계엄 사태가 느닷없이 선포되고 그로 인한 대통령 파면으로 많은 국민이 충격을 받았고 국격이 추락했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은 사형이 구형된 지금까지도 국민에게 진심 어린 사과나 사죄를 한 적이 없다. 부끄럽고 참담한 일이다.

사형 구형을 계기로 대결과 대립만 있는 우리 정치도 이를 경고로 받아들이고 자성해야 한다. 계엄 이후 1년이 지났지만, 정치권은 달라진 것이 크게 없다. 국민의힘은 계엄에 대한 공식 사과를 하기까지 1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국힘은 계엄 이후에도 부정선거 음모론이나 극단적 정치 세력에 휘둘리거나 그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 장동혁 대표가 뒤늦게 사과했지만 아직도 당원 게시판 문제 같은 당내 갈등 요소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국힘은 과거와 단절하지 못하고 ‘윤어게인’ 세력이나 이와 연관된 인사들을 요직에 기용하며 정반대로 가고 있다. 

계엄 사태로 정권을 잡게 된 민주당은 민주주의 회복을 공언했다. 그러나 여당이 된 지금도 30명 넘게 탄핵하고 입법 폭주를 하던 야당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검찰을 해체했고, 위헌적 내란재판부법을 만들었고 이제는 법 왜곡죄와 법원행정처 폐지를 추진하고 있다. 최근에는 집권당 원내대표의 일탈 행위와 공천 뒷거래 문제까지 터졌다. 

계엄과 전직 대통령에 대한 재판 같은 국가적 불운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정치가 이번 일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그러나 미래로 가야 할 정치는 계엄 이전처럼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사형 구형이 더욱 참담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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