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이후, 건강검진은 어디까지 필요할까
조기 발견의 역설, 고령 사회의 의료
[최보식의언론=김선래 기자]
채종일 메디피스 이사장(서울대 의대 명예교수)의 에세이 ‘건강검진 공포’를 읽었다. 의사수필동인 박달회의 52번째 수필집 ‘언어의 정원’(도서출판 지누)에 수록된 31편 중 하나다.
채 이사장은 서울대 의대 교수를 역임한 후 한국건강관리협회(건협) 회장 및 세계기생충학자연맹(WFP) 회장 등을 역임했다. 2023년부터 메디피스 이사장으로 재임하며 직접 의료 소외지역과 재난지역을 찾아 의료 지원을 하고 국제보건 관련 연구조사 활동을 국내외에서 직접 챙기고 있다.
그는 국가 검진서비스를 책임져 온 건협 회장직을 꼬박 6년간(2016~2021) 수행했다. 이러한 이력의 필자가 쓴 글이니, ‘건강검진 공포’라는 역설적인 제목을 붙였다고 해도 종합건강검진을 홍보하는 글이려니 생각했다.
그런데 그는 글의 서두에서부터 얼마나 ‘건강검진’을 꺼려하는지 시시콜콜 설명한다.
대개 사람들이 건강검진을 꺼리는 것은 그 과정보다 결과 때문일 텐데, 필자 역시 결과지에서 ‘이상 있음’ 소견을 보게 될까 두렵다고 고백한다. 스무 살부터 거의 60년간 의료현장에 있었던 필자의 직업병도 있다. 혹시라도, 병세가 있어서 연구활동에 지장을 줄까 우려하는 것이다.
술을 즐기는 애주가로서의 면모 때문이기도 하다. 실제 건협 회장 재임 당시 검진 결과에서 필자는 간장질환 중 감마지티피 값이 높게 나온 적도 있었다. 감마지피티는 건강검진 결과지의 간장질환 관련 항목 3가지 중 맨 아래 수치에 해당된다.
채 이사장의 경우 감마지티피와 중성지방 값이 높게 나왔고, 술이 주요 원인일 거 같아서 음주 횟수와 양을 줄이고 밥도 반 공기 이상 안 먹는 습관을 가졌더니 눈에 띄게 증상이 호전되었다고 한다.
노화와 함께 증가하는 각종 질환들, 이를 테면 고혈압에서부터 높은 중성지방, 고콜레스토롤혈증, 당뇨 전 단계, 심실조기박동, 부정맥, 심장관상동맥 협착, 헬리코박터 감염증, 대장 용종, 그리고 암 표지자 중 하나인 proGRP 수치가 정상치보다 높은 것이나 비타민 D 부족 같은 자잘한 에피소드들에도 의학정보가 쏠쏠하게 들어 있어 단숨에 읽어내려갔다.
모르긴 몰라도 채 이사장과 비슷한 또래의 70대들에게는 꽤 쓸모 있는 건강검진 체크리스트로도 요긴할 듯싶다.
특히 ‘이석증’을 식별해내는 과정은 대수롭지도 않은 내용인데 깊이 있게 다가왔다. 어느날 아침, 일어났는데 갑자기 온 사방이 빙글빙글 돌며 어지럽고 가만히 서 있기도 힘들고 구토까지 나와서 출근도 하지 않고 쉬면서 인터넷 의학상식을 뒤졌다고 한다.
채 이사장은 몇 가지 어지럼증 중에서 ‘이석증’일 가능성을 높게 내다보고 자가 진단 후 이석정복술과 전정기관 강화법 요법을 그대로 따라서 해보았다. 그렇게 증상을 완화시킨 필자는 동네 이비인후과에 갔더니 이석증이 맞았다고 한다.
이석증의 원인은 매우 많은 것들이 제시되지만 비타민 D 결핍과 상당한 관계가 있다고 한다. 이후 전정기관 강화 운동과 이석정복술 등을 부지런히 하고 비타민 D를 꾸준히 복용하였더니 어지럼증이 다시 재발하는 일은 없었다는 경과도 소상히 알려준다. 하지만 경구 복용 비타민 D는 장내 흡수가 잘 되지 않는다는 조언을 듣고서는 “햇볕을 더 자주 쬐도록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한다.
놀라운 것은 그가 위내시경 검사와 대장내시경 검사를 포함한 종합건강검진을 처음 받은 것은 건협 회장을 끝낸 후인 2023년 5월이라는 점이다. 지난해 5월에 동일한 종합건강검진을 받은 그는 두 번의 종합검진에서 위 헬리코박터균 양성 판정, 그리고 위궤양과 대장 용종이 발견되었다는 소견을 받았다. 위 헬리코박터균은 항생제 처방으로 제균했고, 위궤양은 약을 처방받아 복용 중이며, 대장 용종은 검진 과정 중 발견 즉시 제거했다.
필자 자신이 직접 체험한 건강검진을 통한 질병의 조기 발견과 치료라는 건협의 시스템은 그야말로 건강관리에 코페르니쿠스적인 혁명을 가져왔고, 한국인의 평균 수명 연장에도 큰 기여를 했다.
나라의 기둥인 중장년층에게는 ‘건강검진의 천국’이라는 말이 부족하지 않다. 노년층에게도 그럴까. 채 이사장은 노년기로 접어든 70대부터는 과다한 건강검진이 부적절한 면이 있다고 지적한다. 건강검진 자체가 부담스런 짐이 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다. 그는 그 이유를 이렇게 밝힌다.
“최근 서울대 의대 조ㅇ연 명예교수께서 어느 기관지에 기고한 글 중에 ‘70대 후반의 노인에게 무분별하게 시행되고 있는 건강검진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라는 의견을 주셨는데 와닿는 바가 크다. 잔여 수명이 10여 년 정도 남아 있는 사람에게 매년 건강검진을 하여 암을 조기 발견한다고 한들 무슨 큰 의미가 있겠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하셨기 때문이다. 기대수명이 크게 늘어나기는 어렵고 여러 가지 시술과 치료로 환자가 고생하는 경우가 많이 때문일 것이다. 암이 생겼더라도 공격저으로 대하기보다는 내게 찾아온 귀한 손님 정도로 알고 친하게 지내며 조심조심 대하는 편이 훨씬 나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어느 원로 교수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 채종일의‘언어의 정원’ 1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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