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반미주의자들, 왜 '불타는 이란 모스크' 장면에 침묵할까

신의 이름으로 여성의 머리카락을 가리고, 율법을 어기면 딸도 잔인하게 공개 참수하는 '신정 체제의 질서'

2026-01-11     박주현 객원논설위원

[최보식의언론=박주현 재담 엔터테인먼트 대표]

SBS 뉴스 캡처

이란 테헤란의 부촌에서 모스크가 불타고 있다. 시위대는 신학교의 경전들을 거리로 끌어내 재로 만들었다.

이것은 단순한 정권 퇴진 시위가 아니다. 1979년 혁명 이후 이란 국민을 지배해 온 '신성(神聖)이라는 이름의 감옥'을 부수고 나오는 탈옥(脫獄)이다.

어찌 보면 미국이나 이슬람 둘다 무언가를 개인의 의사에 상관없이 억지로 떠먹이려 한다 욕할 순 있겠다. 

허나 필자는 이 장면을 보며 한국의 반미주의자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은 늘 미국이 "오만하게 자유주의를 강요한다"고 비난했고 각 나라의 문화와 주권을 존중하지 않는 제국주의적 폭력이라 했다. 

그렇다면 대답해 보라. 저 불타는 모스크가 상징하는 '신성한 독재'와 미국이 이식하려 했던 '세속적 자유' 중, 인간을 더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저울에 올려보자. 한쪽에는 때로 무례하고 시끄러운 '미국식 자유'가 있다. 반대편에는 신의 이름으로 여성의 머리카락을 가리고, 율법을 어기면 딸도 잔인하게 공개 참수하는 '신정 체제의 질서'가 있다. 

결과 값은 명확하다. 테헤란의 여대생들이 맨얼굴로 화염 앞에 선 이유는 하나다. 아무리 외세의 산물이라 폄훼당해도, 자유가 채찍과 히잡보다는 인간의 본질에 가깝기 때문이다.

한국의 소위 진보 세력은 기이한 이중성을 보인다. 입으로는 성평등과 인권을 외치면서, 정작 여성의 존재 자체를 지우는 반미 국가들의 인권 유린에는 침묵한다. 

미국이 시장 개방을 요구하면 "주권 침해"라고 길길이 뛰면서, 중국이나 이란이 자국민을 사법 살인하는 건 "그들만의 특수성"이라며 눈을 감아준다.

이것은 관용이 아니다. '반대만을 위한 반대'다. 미국을 깔 수만 있다면, 악마와도 손을 잡겠다는 삐뚤어진 아집이다. 그들이 옹호해 온 '문화적 고유성'이라는 포장지 아래서, 누군가의 삶은 실시간으로 삭제당하고 있었다.

일전에도 언급했지만 세계 지도를 펴보면 '레드팀'의 도미노가 보인다. 중국을 믿던 캄보디아는 돈줄이 말랐고, 반미의 기수 베네수엘라는 미군 특수부대의 '새벽 배송' 작전에 정권이 증발했다. 쿠바는 쌀을 구걸하는 처지가 됐다. 그리고 이제 이란마저 내부에서부터 무너져 내리고 있다.

이 거대한 붕괴는 무엇을 말하는가. '반미'는 밥을 먹여주지 않으며, '신정'은 영혼을 구원하지 못한다는 냉혹한 현실 증명이다. 자유를 강요당하는 고통이 아무리 크다 한들, 신이나 독재자의 이름으로 삶을 압수당하는 지옥보다는 낫다.

테헤란의 불길은 낡은 운동권 대본을 태우고 있다. 아직도 1980년대식 세계관에 갇혀 "미국 탓"만 되뇌는 이들이 있다면, 넷플릭스를 끄고 뉴스 화면을 보라. 억압받던 인간들이 히잡을 벗어 던지며 지르는 비명, 그것이 바로 당신들의 위선에 내리는 역사의 선고다.

 


#이란시위 #자유와신정 #반미위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