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은 그 사람의 마음이 새긴 인생을 말해줄까? ... 영화 '얼굴'의 반전

우리의 마음이 상대의 얼굴을 결정 짓는다는 피그말리온 효과

2026-01-10     최보식

[최보식의언론=윤정구 이화여대 경영대학 명예교수(인사조직 전략)]

'얼굴' 포스터

 

연상호 감독의 영화 '얼굴'은 2억 원의 제작비를 들여 극장 개봉해 110억 원의 매출을 올린 후, 지난 5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되었다. (편집자)

아주 가까운 지인과 넷플릭스에 올라와 있는 ​연상호 감독의 영화 ‘얼굴’을 스릴러라고 믿고 아무 생각 없이 보다가 연 감독의 통찰력과 천재성에 깜짝 놀라 까무러칠 뻔했다. 심지어 비스듬하게 누워서 거만하게 보다가 메시지의 심각성에 놀라 자세를 고쳐잡고 시청했다.

영화는 미스터리 스릴러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우리가 일상에서 운용하고 있는 연극 사회심리학자 고프만이 이론화한  '사회적 인식의 프레임'에 관한 잔혹한 보고서다.

영화는 40년 전 실종된 한 여성의 유골을 중심으로, 그녀를 기억하는 이들의 엇갈린 증언을 집요하게 추적한다. 여기서 '얼굴'은 단순한 신체 부위가 아니라, 관찰자의 내면이 타인에게 찍어 누른 낙인의 도장'이다.

​주인공 임영규는 시각장애인임에도 직업이 전각 장인이라는 설정은 매우 상징적이다. 전각 장인이 되기 전에는 도장을 파서 생계를 유지했는데 임영규는 눈이 보이지 않음에도 눈으로 볼 수 없는 상대에 가장 걸맞는 아름다운 글씨로 도장을 새기는 재능을 보유했다.

전각은 단단한 돌에 칼을 대어 이름을 고정시키는 작업이다. 이는 우리가 타인을 대할 때, 그 사람의 복합적인 진실을 보기보다 자신이 보고 싶은 모습이나 사회적 편견이라는 칼날로 상대의 정체성을 한 프레임 안에 가두어버리는 행위와 닮아 있다. 내 얼굴이 내 인감 도장으로 전각되면 인감을 버리지 않는 한 평생 바꿀 수 없다.

​극중 인물들이 기억하는 어머니의 '추한 얼굴'은 사실 그녀의 실제 모습이라기보다, 당시 가난과 폭력, 그리고 차별이라는 시대적 프레임이 그녀에게 찍어버린 도장 자국에 가깝다.

​영화는 박정민 배우의 1인 2역을 통해 프레임의 상대성을 극대화한다. 같은 배우의 얼굴임에도, '진실을 찾는 아들'의 프레임으로 볼 때와 '비극의 시초가 된 젊은 아버지'의 프레임으로 볼 때 관객이 느끼는 온도 차는 극명하다.

​우리는 흔히 얼굴이 그 사람의 마음이 새긴 인생을 말해준다고 믿지만, 영화는 반대로 우리의 마음이 상대의 얼굴을 결정 짓는다는 피그말리온 효과를 역설한다. 

내가 누군가를 '괴물'로 정의하기로 마음먹는 순간(프레임), 상대의 모든 주름과 흉터는 괴물의 증거로 변질된다. 결국 '복원된 얼굴' 앞에 선 인물들이 겪는 혼란은, 자신들이 평생 찍어온 도장이 가짜였음을 깨닫는 과정에서 오는 인지 부조화다.

​영화는 '공진화'시키지 못한 시대의 일그러진 초상이 얼마나 추악할 수 있는지를 묘사한다. ​사회적 관점에서 볼 때, 이 영화 속 비극은 타인을 온전한 주체로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프레임에 끼워 맞추려 한 '공감의 부재'에서 발생한다. 

삶의 본질이 타인의 진정성을 발견하고 함께 성장하는 것이라면, ‘얼굴’ 속 인물들은 서로의 진실을 은폐하고 각자의 프레임으로 상대를 난도질하며 함께 파멸해간다.

내가 프레임으로 세긴 타인들의 얼굴 도장은 어떤 문양일까?

​영화의 마지막, 희미하게 드러나는 진실의 얼굴은 관객에게 묻는다. "당신이 지금 마주하고 있는 그 사람의 얼굴은 진실인가, 아니면 당신의 마음이 찍어버린 도장인가?" 

‘얼굴’은 우리가 가진 프레임이 때로는 칼날보다 날카롭게 타인의 삶을 도려낼 수 있음을 경고한다. 내 마음의 도장이 편견과 혐오로 가득 차 있다면, 우리는 평생 진실의 얼굴을 마주할 기회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아름답거나 준수한 ​얼굴은 대표적인 유전자 복권이다. 연예인급 외모를 복권으로 받은 사람들은 이 후광에 기대어 평생을 편하게 살 수 있다. 하지만 신이 유전자 복권으로 주어서 인간이 어떤 프레임으로도 파괴할 수 없을 정도의 준수한 얼굴을 타고난 사람을 제외하고 평범한 얼굴을 가진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무리 화장과 치장을 해도 프레임의 감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영화 주인공의 어머니처럼 추한 인간으로 각인될 수도 있고 아름다운 풍모를 가진 사람으로 프래임될 수 있다. 영화는 실제로 평범한 얼굴이었던 어머니가 사회적 지위와 사건에 의해서 추한 모습으로 각인되는지를 그린다. 박정희 시절에 자란 어린이들이 김일성을 빨간 뿔달린 인간괴물로 믿고 살았던 것도 프레임 전쟁의 희생자였기 때문이다.

자신의 얼굴이 풍기는 프레임 인상에 책임은 오직 자기에 있다는 생각을 가졌던 우리에게 영화는 더 강력한 사회적 편견이라는 또다른 프레임이 있음을 경고한다.

영화는 제왕 노릇을 하던 때의 윤건희의 프레임과 감옥에 갇힌 윤건희의 엇갈린 프레임을 묘하게 오버랩시킨다. 한 마디로 대단한 영화다. 꼭 시청해볼 것을 추천한다.

 

윤정구 이화여대 명예교수 jkyoon@ewh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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