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악령을 불러들일까 ... '착한 살인범'의 고백
홍진욱은 징역 7년을 살았다
[최보식의언론=엄상익 논설위원]
법원은 홍진욱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다.
그는 착한 살인범이었다. '착한' 이라는 단어와 '살인'이라는 말이 합쳐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그의 누나와 여동생도 백지같이 착했다.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나쁜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사건이 일어났다.
도대체 살인의 동기가 무엇이었을까. 정신병일까. 그의 말대로 악령이었을까.
판결 후 일주일쯤 지났을 때 이상한 의뢰인이 찾아왔다. 영험하다는 무당이었다. 선거철이면 정치인들이 줄을 서서 기다린다고 했다. 점을 쳐서 강남에 빌딩을 소유할 정도로 부자가 됐다. 그런데 무당의 남편이 살인을 해서 내게 변호를 맡기러 온 것이다.
나는 무당을 경멸해 왔다. 미신이고 사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홍진욱 사건을 처리하면서 악령의 정체를 알고 싶었다. 악령을 알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 추상이고 관념이었다. 무당은 혹시 악령을 알고 있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무당에게 물었다.
"왜 무당이 되셨죠?"
"영이 내게 들어와 어쩔 수 없이 됐죠."
17세 그날 밤, 내 안으로 들어온 것. 그건 분명 어떤 영이었다. 나는 그 영에 붙잡혔었다. 벗어나기가 정말 힘들었다. 저항하면 할수록 늪 속에 빠져들었다.
"어떤 영이 들어왔어요?"
"장군 영이 들어왔어요."
"악령이에요?"
"아니요, 괜찮은 분이에요."
영의 종류도 다양한가 보다.
"안 괜찮은 영도 있어요?"
"그럼요, 더러운 귀신들도 많죠. 그것들도 영이예요. 식탐을 하는 귀신이 사람에게 들어오면 그냥 돼지같이 먹어요. 음란한 귀신이 들어오면 하루 종일 그것만 생각해요. 원한을 품은 귀신이 들어오면 자기가 들어간 사람을 이용해서 복수를 하려고 해요. 귀신 세계가 그래요."
나도 성경 속에서 악령들에 대해 읽었다. 군대 귀신, 염소 귀신, 일곱 귀신 등 별별 귀신이 많았다. 예수님이 가는 곳마다 쫓느라고 바쁘셨다. 홍진욱도 말했다. 자기 안에 그놈이 들어왔다고. 그놈이 마귀라고 했다.
"영이 들어와서 어떤 능력이 생겼죠?"
성경을 보면 성령이 들어오면 아홉 가지 열매가 맺힌다고 했다. 다른 영이 들어와 점을 치는 경우도 있었다.
"새벽에 일어나서 기도하고 내가 받은 인물 사진을 청수에 담그면 한 장면이 눈 앞에 영화 장면같이 떠올라요. 그걸 해석해 주는 거죠."
진지한 표정이었다.
"그렇지만 하루에 한 번 정도예요. 사람들이 수도 없이 몰려오는데 나머지는 사기를 치는 거죠."
"그런 능력을 받아서 부자가 됐군요"
"복 받았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절대 그렇지 않아요. 왜냐하면 귀신이 들어온 사람의 종말을 나는 아니까."
"그게 무슨 소리죠?"
"귀신을 섬기면 우선 돈이 들어올 수도 있고 어떤 자리에 갈 수도 있어요. 그런데 마지막에는 귀신이 그 사람을 패대기쳐서 망하게 해요. 나는 그걸 알아요."
나는 숨을 멈췄다. 그런 경우를 종종 봤다. 의외로 점을 치고 굿을 하고 도사를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다.
권력을 잡았다가 하루아침에 감옥을 갔다. 재벌이 됐다가 거지 신세로 전락했다. 그들이 귀신과 황금송아지를 섬겨서 그런 것은 아닐까.
"어떤 패대기쳐지는 경험을 하셨어요?"
궁금했다.
"점을 치고 저녁에 주점에 가서 소주를 마셨어요. 그다음은 기억이 깜깜한데 새벽에 깨어보니까 더러운 쓰레기 속에 내가 쳐박혀 있더라구요. 술이 취해서 그런 게 아니예요. 귀신을 섬기는 끝이 그렇다고 저는 봐요. 제 남편이 살인한 것도 더러더러 이유 없이 발광을 해요. 귀신이 들락날락 하는 거죠. 이번의 살인도 점 보러 온 제 손님하고 다투다가 그런 거예요."
잃어버린 시간. 홍진욱도 그렇게 말했다. 기억이 없다고. 깨어 보니까 아내가 죽어 있더라고. 귀신은 기억을 지우고 그 순간에 작업을 하나보다.
나는 속으로 30년간 묻어뒀던 질문을 꺼냈다. 17세 그날 밤 이후 단 한 번도 입 밖에 낸 적 없는 질문. 내게 들어왔던 그것의 정체가 뭐였을까.
"혹시 성령이라는 말을 들어봤어요?"
흑이 있으면 백이 있고 양이 있으면 음이 있다. 악령이 있으면 성령도 있어야 한다. 성경 속 주역들은 대부분 성령에 의해 움직였다. 성령이 인간의 영혼 속에 들어와 그를 움직이게 하는 게 기독교의 기본 구조다. 사도 바울은 길에서 예수의 영을 만났다. 그리고 그 이후 평생 예수의 영에 이끌려 그 아바타로 살다가 죽었다. 예수가 죽으면서 성령을 보낸다고 했다. 예수의 영이 성령인가? 잘 모르겠다.
"그럼요, 제가 무당이지만 성령을 잘 알아요. 영 중에서 가장 힘이 센 영이예요. 저는 장군신에 잡혀서 꼼짝 못하지만 엄 변호사님이 성령을 믿으시면 그걸 꼭 잡고 절대 놓지 마세요."
무당은 영의 세계를 알고 있었다. 열일곱 살 때 어떤 존재가 내게로 들어왔을 때부터 나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걸 본다. 나는 미친 건 아니다. 그냥 보인다.
7년이 흘렀다.
나는 성경을 삶에서 놓지 않는다. 평생 끊임없이 읽어왔다. 130번이 넘게 읽었다. 성령을 부르고 악령에게 당하지 않기 위해서다. 경전은 단순한 종이나 책이 아니다. 거기에는 신령한 힘이 있다고 믿는다.
어느 날 홍진욱에게서 전화가 왔다.
"징역을 다 살고 나왔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악령은 어떻게 됐습니까?"
"감옥에 들어가 살게 되자 재미없는지 가 버리더라구요."
"잘됐네요. 어둠의 골짜기를 힘들게 통과하셨네요."
그에게 하는 말이지만 나 자신에게 하는 것이기도 했다.
"뭐가 그 악령을 불러들였을까요?"
전화 저쪽에서 그가 잠시 침묵했다.
나도 숨을 죽였다.
"나의 야망과 욕심이 초대했을 겁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악령은 인간에게 야망과 욕심을 불어넣는 것을. 그리고 한껏 부풀려 올렸다가 깊은 나락으로 던져 버리는 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살 겁니까?"
"가장 낮은 자리에서 들꽃같이 욕심 없이 살다가 가려고 합니다. 아내의 명복을 빌어주면서요. 변호사님 감사했습니다."
그로부터 다시 15년이 넘게 흐른 지금 나는 동해 바닷가에서 이 글을 쓴다.
며칠 전 방에서 드럼을 치는데 갑자기 양 팔에 소름이 돋았다. 뭔가 옆에 있었다. 안 보이지만 확실히 거기 있었다.
17세 때는 두려웠다. 지금은 두렵지 않다. 우리들의 삶은 그들과 공존하는 것 같다.
우리는 매일 아침 일어나 선택한다. 어떤 영을 초대할 것인가. 성령인가 악령인가. 증오인가. 아니면 사랑인가.
홍진욱은 지금 어딘가에서 살고 있을 것이다. 들꽃처럼, 낮은 자리에서. 악령이 다시 찾아오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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