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노른자위' 한국대사관 부지 기증한 재일교포의 남긴 말?

“조국이 부끄러우면 안 된다.”

2026-01-07     서재원 객원논설위원

[최보식의언론=서재원 객원논설위원]

영화 '광해'

도쿄 한복판, 지금 시세로 1조 원이 넘는 땅 위에 대한민국 대사관이 서 있습니다. 이 부지는 재일 교포 서갑호 회장이 조국에 기증한 것입니다.

대사관 1층에는 그를 기리는 작은 공간이 있고, 거기에는 짧은 문장이 남아 있습니다.

“조국이 부끄러우면 안 된다.”

이 말은 돈 많은 사업가의 수사가 아닙니다.

대한민국이 가난하던 시절, 특히 일본에서 차별받고 멸시받던 재일 교포들에게 “그래도 우리는 나라가 있다”는 자존을 지켜주려는 결단이었습니다.

국가는 크기보다 태도로 기억됩니다. 영화 ‘광해’에서 가짜 왕 광해는 명나라 사신단이 요구하는 과도한 상납 목록을 듣고 이렇게 일갈합니다.

“나라를 갖다 바치시던가.”

“부끄러운 줄 아시오.”

명나라는 이미 기울고 있었고, 금나라는 떠오르는 신흥 강국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조정은 현실을 외면한 채, 체면을 명분 삼아 굴욕을 반복합니다.

광해가 분노한 이유는 하나입니다. 국익도, 존엄도 없는 굴종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장면이 지금 다시 회자되는 이유는 우연이 아닙니다.

“큰 봉우리, 작은 봉우리”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은 중국을 두고 “큰 봉우리 같은 나라”라 표현했고, 한국을 “작은 봉우리”에 비유했습니다.

말의 의도와 별개로, 이 표현은 국제사회에 명확한 신호를 줬습니다. 대한민국 스스로를 종속적 위치에 두겠다는 인식입니다.

국제정치는 감정이 아니라 해석의 세계입니다. 한 나라의 지도자가 스스로를 낮추면, 상대는 반드시 그만큼을 요구합니다.

최근 한중 정상회담을 보며 많은 이들이 데자뷰를 느꼈습니다. 과거 이재명 대선후보가 중국을 향해 했던 이른바 ‘셰셰 외교’가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웃으며 넘길 수 있는 외교 제스처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반복되는 패턴입니다. 불편한 요구 앞에서 침묵하고, 원칙 대신 분위기를 택하며, 주권 문제를 ‘실용’이라는 말로 덮는 태도, 이것은 실용이 아니라 회피입니다.

주권은 ’선언‘이 아니라 ’대응‘입니다 주권은 “우리는 주권국가다”라고 말한다고 생기지 않습니다. 주권은 매 순간 어떻게 대응하느냐로 증명됩니다. 강대국의 요구에 어디까지 응할 것인가, 경제 의존을 어떻게 분산할 것인가, 국민에게 무엇을 설명하고 무엇을 감내할 것인가. 이 모든 선택의 합이 국력입니다.

서갑호 회장이 남긴 말은 그래서 지금 더 무겁습니다. 그는 부유해서 당당했던 것이 아닙니다. 나라가 부끄러워지지 않기를 원했기 때문에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았습니다.

영화 ’고지전‘에는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이 싸움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영화 ’광해‘는 묻습니다.

“이 나라의 주인은 누구인가.”

지금 우리가 다시 이 영화들을 떠올리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대한민국이 또 다시 작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낮추고 있는지 돌아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나라는 작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작다고 고개를 숙일 이유는 없습니다.

조국이 부끄러워지지 않게 하는 것. 그것이 외교의 출발점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선택의 문제이지 운명의 문제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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