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에 호출된 ‘악령...살인인가, 지배인가’
차 뒤쪽 창에 흐릿한 뭔가 있었어요. 아니 내 옆자리인지도 몰라요
[최보식의언론=엄상익 논설위원]
2003년 9월 28일 오후 2시 30분. 서울 형사지방법원 311호 법정.
나는 변호인석에 앉아 있었다. 서기 책상 위의 하얀 모니터 속에서 커서가 살아 있는 듯 깜빡거렸다. 나는 긴장하고 있었다. 홍진욱의 속에 또아리를 틀고 있는 '그놈'을 법정에 드러내야겠다고 결심했다. 악령을 꺼내 법의 앞에 세우는 것이다.
그걸 심신미약으로 보든지 미신으로 치부할 것인지는 판사의 마음이다. 죽은 정은희의 아버지가 연기로 의심하든지 말든지 그의 자유다.
나는 악령의 존재를 믿는다. 악령이 인간을 지배할 수 있다. 악령이 유다에게 들어가 예수를 배신하게 했다. 남의 얘기가 아니다. 열 일곱살의 내가 직접 경험했다. 그 존재는 평생 나를 따라 다녔다. 내면에 숨어서 존재하지 않는 척했다. 교활한 놈이다.
나는 양경식 전도사를 증인석에 세웠다. 뇌를 연구하는 정신과 의사가 증인 자격이 있다면 영을 탐구하는 전도사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다.
사십대 중반의 그는 검은 정장에 넥타이를 맸다. 법정과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를 풍겼다. 영적인 세계에 사는 사람 특유의, 가라앉은 눈빛이었다. 내가 묻기 시작했다.
"홍진욱이 악령에 시달린다고 보십니까?"
"그렇습니다."
"어떻게 시달리고 있었습니까?"
"어두운 영에 눌리고 있습니다. 이상한 소리가 들리고 귀신이 보인다고 했습니다. 퇴마의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방청석이 술렁였다.
"사건이 발생 한 달 전쯤 진욱이가 악령에 시달리니 도와 달라고 했어요. 악령이 주변에서 강하게 작동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나는 안다. 지금도 나는 귀신을 본다. 며칠 전 밤이었다. 넓은 창을 통해 한 남자가 언덕 아래로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검은 바지 위에 낡은 검은 점퍼를 입고 있었다. 빗지 앉은 뒷 머리가 부수수했다. 산책이나 운동을 하러 나가는 모습은 아니었다. 순간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다시 봤다. 그는 없었다. 주위를 살펴봤다.
사람이면 보여야 했다. 그러나 그는 없었다. 종종 그런 경험을 했다. 산을 혼자 다닐 때였다. 더러 바위 밑에 사람이 다리를 뻗고 앉아 나를 보곤 했다.
돌아보면 순간 그 존재는 증발해 버렸다. 그들이 보이지 않는 순간 내 속으로 들어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내게는 익숙한 일들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정신병자는 아니다.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 전도사가 말을 계속했다.
"진욱이는 자기 안에 악령이 있다고 했어요. 그 악령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장악하고 조정한다는 겁니다."
그럴 수 있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모른다.
"부인인 정은희 씨의 인식은 어떻든가요? 악령의 존재를 믿고 있던가요?"
"은희 씨는 진욱이가 악령이 들었을 때면 전혀 다른 사람 같은 말과 행동을 한다고 했어요. 그러면서 제가 악령을 퇴치하는 기도를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진욱이에게는 비밀로 해달라고 했죠."
그런데 왜 그랬을까. 그리고 죽었을까.
"친구로서 옆에서 홍진욱 부부를 봤을 때 사이가 어땠습니까?"
"서로를 누구보다도 아끼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부인을 죽일 이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다만 진욱이는 자신에게 들어있는 악령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치열하게 싸웠습니다."
다음은 검사가 물을 차례였다.
"증인은 악령이 실재한다고 믿으십니까?"
"믿고 있습니다."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습니까?"
"믿음은 증명의 문제가 아닙니다."
검사의 얼굴에 냉소가 흘렀다.
"그렇다면 단지 증인의 주관적 의견이군요."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에는 법으로 판단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고 봅니다. 인간에게는 영혼이 있습니다. 그 영혼이 다른 존재에게 사로잡힐 때, 법은 그것을 인식할 수 있을까요?"
법정이 숙연해졌다.
"저는 십오 년간 영적 상담을 해왔습니다. 여러 사례를 봤습니다. 홍진욱은 악령이 들어 있습니다."
과학과 논리만이 전부라면 종교와 신학이 부정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내가 매일 읽는 성경 속에는 수 많은 악령이 들끓는다. 그리고 성경은 세상의 악령과 싸우라고 한다. 나는 귀신이 보인다. 그렇지만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전도사 양경식이 물러나고 강연지 피디가 증언석에 올랐다. 이십대 후반의 그녀는 찢어진 청바지에 긴 머리를 뒤로 묶고 있었다. 영화계 사람 특유의 자유로운 분위기였지만, 눈가에는 슬픔이 서려 있었다. 내가 묻기 시작했다.
"정은희 씨가 죽기 전날 밤, 홍진욱 부부와 함께 있었죠?"
"일 때문에 저는 두 사람이 있는 차 뒷자리에 앉아 있었어요. 부부가 차 안에서 싸웠어요. 홍진욱 팀장이 갑자기 '나타났다'고 소리치면서 공포에 질렸어요. 그걸 보고 부인인 은희 씨가 '더 이상 못 참아 같이 죽어 내가 죽던 당신이 죽던 죽어버리면 되잖아?'하고 악을 썼어요. 은희 씨도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어요."
"그걸 보면서 어떤 마음이었나요?"
"굉장히 걱정됐어요. 누군가 그 집에 있으면서 부부를 지켜봐야 할 것 같았어요."
"그럴 사람이 없었습니까?"
"은희 씨는 다른 사람이 집에 오거나 있는 걸 아주 못마땅해 했어요. 하다못해 가정부가 집에 있는 것도 싫어했어요."
나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녀는 혹시 보지 않았을까.
"그날 밤 다른 이상한 일은 없었나요?"
내가 에둘러 물었다. 그녀가 망설이는 눈빛이었다.
"사실---이상한 걸 느꼈어요."
나는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그게 뭐죠?"
"차 뒤쪽 창에 흐릿한 뭔가 있었어요. 아니 내 옆자리인지도 몰라요. 홍진욱 팀장도 느낀 것 같아요. 그래서 소리친 거죠."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혹시 가로등이나 다른 차의 헤드라이트가 만든 그림자는 아니었을까요?"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어요."
"홍진욱 부부는 어떤 사이였나요?"
"죽은 은희 씨는 대학생 때부터 홍진욱 감독을 짝사랑했어요. 홍진욱 감독은 영화의 연출자였고 은희는 제일 밑에서 막심부름을 하는 학생이었으니까 은희에게 홍진욱 감독은 완전히 우상이었죠."
"홍진욱은 어떤 사람이었어요?"
"홍진욱 팀장을 우리가 큰언니라고 불렀어요. 아침에 출근하면 회사 전체를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는 싹싹한 분이었어요. 또 팀원이 지각을 해도 절대 잔소리를 하는 성격이 아니예요."
큰언니. 남자답지 못한 걸 놀린 것일까. 부드럽다는 건가. 그녀가 말을 계속했다.
"그 지각을 한 팀원보다 항상 먼저 나와 일찍 나오도록 유도하는 분이었죠. 어떤 면에서는 지나치게 친절한 점도 있었어요."
지나친 친절. 그건 약함의 표시 아닐까. 악령은 약한 사람에게 들어온다.
"반면에 일할 때는 아주 집요한 사람이었어요. 아이디어도 많았구요."
"아내인 정은희는 옆에서 볼 때 어떤 사람이었나요?"
"유명한 감독의 딸인 은희 씨는 야망이 큰 커리어우먼이었죠. 일중독증이었어요. 일하다가 얼굴이 마비된 적도 있고 하혈을 했던 적도 있어요. 살찌면 안 된다는 강박 때문에 아무리 늦은 시각이라도 거의 한 시간씩 무리하게 조깅을 했어요. 친한 사람에게는 잘해주고 다른 사람은 경계하는 타입이었죠. "
그녀가 잠시 말을 멈췄다. 뭔가 떠올리는 눈빛이었다.
"은희 씨는 남편을 영화계 거물로 만들려고 했어요. 돈은 자기가 벌 테니까 남편은 대작을 만들라고 몰아쳤어요. 그러면서 홍진욱 팀장을 저희와 떼어놓고 점점 고립시켰죠."
나는 잠시 생각했다. 악령이 그녀에게 야심을 불어넣었던 건 아닐까. 계모 밑에서 자란 아이. 인정받고 싶은 욕망. 아버지를 능가하고 싶은 마음. 두 악령이 만난 건 아닐까. 남편 속의 악령과 아내 속의 악령. 사랑한다면서 서로를 파괴했다. 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강연지의 말이 계속되고 있었다.
"외골수로 돌진하는 정은희는 남편에게 상처를 준 적도 많아요. 반복해서 최고가 되기를 요구하면서 무자비하게 몰아갔어요. "
갑자기 그녀가 감정이 복받쳤는지 "흑" 하고 흐느꼈다. 그녀가 증언대 위에 놓인 크리넥스로 눈물을 닦았다.
"홍진욱 팀장님은 작은 일이라도 감사하며 색깔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어했어요. 그런데 정은희씨는 남편이 무조건 크고 유명해지기만을 바랐죠."
"왜 그렇게 남편을 만들고 싶어했을까요?"
강연지가 잠시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대단한 감독을 만들어 아버지를 능가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순간 방청석에 앉아 있는 정일경 감독이 보였다. 정은희의 아버지. 굳게 입을 닫은 표정이었다. 강연지가 말이 이어졌다.
"정은희 씨는 남편이 다른 사람을 만나지 못하게 했어요. 어떤 때는 우리 팀원들이 그 집 근처에 가서 회식을 할 때 남편을 불러내도 못 나가게 했어요. "
고립. 악령이 원하는 게 그것 아닐까. 혼자 있는 영혼을 장악하는 것.
"사건 무렵 홍진욱의 상태는 어땠나요?"
"홍진욱 팀장한테서 제게 문자메시지가 왔어요.
'어느 날 내가 없어지면 다른 사람 구해서 일해라. 그리고 잘 살아라'라는 거였어요."
"그 메시지를 어떻게 해석했나요?"
"홍진욱 팀장이 정은희 씨와 같이 죽으려고 하는 것 같았어요. 홍진욱 팀장은 머리가 좋기 때문에 정말 사람을 죽이려고 마음 먹었다면 아주 치밀하게 죽일 사람이예요. 미리 철저히 준비할 사람이지 엉성하게 할 사람이 아니예요."
"피고인 홍진욱은 그날의 상황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은데요?"
"홍진욱 팀장은 아프고 나서부터 이상하게 나쁠 때 상황은 전혀 기억하지 못해요. 자기가 좋은 것 그리고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해요."
나의 신문이 끝났다. 이번에는 검사가 그녀에게 물었다.
"어떻게 그렇게 홍진욱의 사생활을 잘 알죠?"
"저희 업계는 팀으로 일해요. 홍진욱 감독이 팀장으로 계실 때 그 밑에서 제가 함께 작업을 했죠. 24시간 내내 같이 있고 쉴 때도 같이 영화 보고 밥 먹고 여행하고 그렇게 지내요. 그러니까 서로 간의 사생활이 거의 없는 셈이죠."
"혹시 홍진욱을 좋아하시지 않았나요?"
"홍진욱 팀장은 능력이 탁월했습니다. 그리고 같은 팀원들에게 마음을 써주는 좋은 상사였습니다. 그런 면에서 좋아했습니다."
"죽은 정은희 씨에게 혹시 경계 대상은 아니었나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정은희 씨는 남편이 출세의 사다리를 타고 높이 높이 올라가기를 바랐기 때문에 사람들과 거리를 두게 한 거죠."
"홍진욱은 혹시 아내를 심하게 의심하고 분노한 적은 없나요?"
"그런 점은 느끼지 못했습니다."
"증인에게 마지막으로 한가지 확인하겠습니다."
검사의 눈에 호기심이 비쳤다.
"증인은 차 뒷유리창에서 뭔가를 봤다고 했는데 뭐였죠?"
"잘 모르겠어요."
"모르는 걸 왜 말합니까"
검사가 잠시 말을 중단했다가 다시 물었다.
"증인은 그날 몇 시간 일했습니까?"
"열여섯 시간쯤----"
"피곤하셨겠네요. 헛걸 본 건 아닙니까?"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정은희 씨가 죽었습니다. 홍진욱 팀장님은 살인을 한 성품이 아닙니다."
증인 신문이 끝났다.
나는 그녀가 차 뒤에 뭔가 있는 걸 느꼈다는 말이 어떤 것인지 알 것 같았다. 나 역시 여러 번 경험했다. 운전을 하고 갈 때 텅 빈 뒷좌석에 어떤 존재가 앉아서 나를 조용히 지켜보는 걸 여러 번 느꼈다. 백미러로 뒤를 보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그 존재는 분명히 있다. 느껴졌다. 홍진욱도 그 존재를 감지한 것이다.
재판의 끝이 다가왔다. 막막했다. 재판장은 악령을 믿지 않을 것이다. 속으로 비웃을 것이다. 홍진욱이 미친 척한다고. 법은 홍진욱을 죽은 정은희의 아버지 앞에 무릎 끓리고 빌게 해야 한다. 억지로라도 참회하게 해야 한다.
재판장의 은은한 분노가 전해지는 것 같았다. 마지막 공판을 앞두고 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보는자들 #착한살인자10 #엄상익변호사 #엄상익에세이 #엄상익못다한이야기 #아내살인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