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철 헌정회장 냉면집 신년모임, 유난히 큰 배꼽 이야기
1월 4일 저녁, 장충동 평양냉면 집에서 정대철 전 대표의 생일을 겸한 신년 모임
[최보식의언론=조수진 전 국민의힘 의원(전 동아일보 기자)]
1월 4일 저녁, 장충동 평양냉면 집에서 정대철 전 대표의 생일을 겸한 신년 모임이 있었다. 정대철 전 대표가 좋아하는 겨울의 평양냉면, 이북식 만두 등을 함께 나눴다(부모인 정일형, 이태형 박사는 평안도 출신이다).
여야, 직업을 막론하고 많은 사람들이 일요일 저녁에 모였다.
96세가 된 권노갑 전 의원, 동교동계 특무상사 이훈평 전 의원, 이낙연 전 국무총리, 정운천 전 농수산장관, 손학규 전 대표, 유인태 전 대통령정무수석, 이부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 여상규 전 국회법사위원장, 김정숙 전 한나라당 의원, 성낙인 전 서울대 총장, <트윈폴리오>의 윤형주- 김세환 씨 등 많은 분들이 함께 했다.
권노갑 전 의원은 축사에서 "여와 야, 지금 있는 위치, 하는 일을 막론하고 모인 이 자리처럼 우리 사회, 우리 정치가 조화롭게 어우러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16대 국회를 출입할 때부터 인연을 이어온 정치인 정대철은 넉넉하고 솔직하며 정이 많다.
통화가 안 되거나, 답을 하지 않거나, 피할 때는 있었지만, 거짓을 둘러내는 법이 절대 없다. 노회, 권모술수라는 단어와는 관계가 없다.
2016년 가수 조영남 씨가 화투 그림 대작(代作) 혐의로 기소됐을 때의 일이다. 당시 사법과잉 논란도 상당했는데 조영남 씨를 변호하려는 사람이 없었다.
채널A '직언직설' 앵커였던 내가 연락한 분이 정대철 전 대표였는데, 듣자마자 OK라고 했다. 그는 예술 영역의 일을 기소를 통한 처벌이나 판결로 해결하려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러 번 이야기했다.
1970년대 초 '와우아파트 붕괴'를 풍자하는 노래를 불렀다가 구속기소된 대학생 조영남을 이화여대 법정대학장이던 이태영 박사가 멀리 충남 홍성까지 달려가 변호했던 것이 떠올랐다.
시간이 흐르면서 앤디 워홀 등 팝아트 작가들의 공동창작 사례가 이야기됐고, 조영남 씨는 무죄가 확정됐다.
2004년 말 정대철 전 대표로부터 연하장을 받았다. 발송 주소지는 서울구치소였다. 신문을 읽다 사회부 법조팀으로 옮긴 나의 근황을 알게 됐다면서 새해 덕담을 보낸 것이다. '정치인 정대철'의 그릇의 크기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나는 생각한다.
노무현 대선캠프에서 정치자금 모금을 맡았던 그는 대검 중수부의 여야 대선자금 수사로 구속돼 수감돼 있었다. 대선자금 모금은 연줄이란 게 중요했는데, 노무현 캠프에서 경기고-서울대 법대 출신은 그가 유일했다.
이태영 박사는 아들의 성품에 대해 아들의 책에 이렇게 썼다.
"중, 고, 대학에서 언제나 친구들과 단 돈 얼마라도 나누어 썼다. 친구를 위해 학비를 대신 냈다. 야속할 때도 있었다. 흐뭇한 적도 있었지만, 우리가 여유 있는 집이 아니었기에 걱정이 앞섰다.
대철이의 팔목시계는 전당포에 여러 번 갔었고, 겨울에 입는 속옷을 비롯해 제 장롱 속 내의, 양말 등을 준비해 놓으면 얼마가지 않아 친구들에게 나누어줘서 옷장은 늘 비어 있었다.
정대철에게는 흉도 많다. 남이 치사하다는 평은 않지만 남에게 주는 것이 정도에 지나치다. 자기 주장을 지키는 것은 좋다. 그러나 그것도 정도에 지나치면 좋지 않을 것이다. 고집이 너무 센 점은 고쳤으면 한다.
이런 정대철의 부족과 잘못은 결과적으로 내가 잘 돌보지 못한 탓이므로 내가 사과를 해야 될 것이다."
광복되기 한 해 전인 1944년, 이태영은 서울 현저동의 옆동네 냉동의 작은 한옥 문간방을 빌려 이불가게를 하고 있었다.
밤에는 선교사 댁 수위실 지하 시멘트 바닥에 가마니를 깔고 두 딸과 함께 잤다. 만삭이었지만, 여학교 교사만으로는 남편(정일형)의 옥바라지, 면회 비용을 충당할 수 없었다.
이태영은 이화여전(가사과)을 수석졸업(1935년)했다. 졸업하던 해에 결혼했지만, 정일형은 도산 안창호 선생의 강연 준비 등 항일운동을 하다 평양에서 구속됐다.
강추위가 불어닥친 1월 4일, 이태영은 산통을 시작했다. 동네 과부 할머니가 '아이를 길에서 낳으면 둘 다 죽는다'면서 자기 방을 열어주었지만 산파를 부를 수 없었다. 진통 끝에 아이가 태어났지만 다른 사람의 방에는 출산기구는 물론 칼이나 가위도 없었다.
평북 운산 북진에서 달려온 아기 외숙모는 발만 동동 구르다 아기와 산모를 연결하고 있던 탯줄을 이로 깨물어 끊어냈다. 이렇게 태어난 아기가 정대철 전 새천년민주당 대표(현 대한민국헌정회장)이다.
정대철 전 대표의 초중고, 대학 동기인 정상철 씨는 '정대철의 배꼽'에 대해 이렇게 소개한 바 있다.
"국민학교 시절 처음 본 정대철의 배꼽은 정말 희한한 모습이었다. 오이꼭지만하게 부풀어오른 모습도 기묘했지만 배꼽 위에 불규칙하게 오그라 붙은 탯줄 흔적이 남아 있었다.
자라면서 배꼽은 상대적으로 줄어들기 시작했고, 끝도 수그러들어 그런대로 목욕탕 출입을 하게 되었다. (중략) 이로 탯줄을 끊어 차가운 남의 집 장판 위에 내던져졌던 정대철 군. 비범한 탄생의 값을 자네는 해 줄 것이다."
정대철 전 대표가 새해에도 건강하게, 왕성하게 활동해주셨으면 좋겠다. 원로가 아쉽고, 그리운 시대다.
조수진 전 국민의힘 의원 assembly202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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