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출신이 본 '이혜훈 사과문'...‘메기' 없는 탕평의 눈속임
도구는 항상 용도가 끝나면 불필요하니 폐기처분된다
[최보식의언론=김진안 전 삼성전자 중동구 지역장 전무]
"내란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불법적 행위", "과거 언행은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 "헌법과 민주주의 앞에서 용기 있게 행동하지 못한 책임은 오롯이 저에게"
이혜훈 예산기획처 장관 후보의 사과문 내용을 보고 기가 막힌다.
필자는 작년 정치상황에서 비상계엄이 절대로 정당하지 않았고 계엄의 책임을 물어 당연히 대통령을 탄핵시켜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내란'이냐에 대해서는 동의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혜훈 후보는 탄핵 당시에 계엄을 옹호했고 '윤어게인'을 외치며 탄핵에 반대했던 인물이다. 장관 자리를 얻기 위해 하루아침에 자신의 소신을 뒤집는 언행을 하니 놀란 것이다. 장관 자리를 위해 한순간에 자신의 학자로서의 소신과 과거를 모조리 부정해버렸다.
필자가 어제(30일) 국민의힘이 이혜훈 후보를 당에서 제명한 것에 대해 전략도 없고 현명하지 못하다는 비난글을 올렸다. 오늘(31일) 이혜훈 후보의 사과 발언을 보고 어제 쓴 글을 다시 읽어보니 필자 글에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
원래 의미하고자 했던 중요한 전제 조건이 빠져 있었다. 바로 이혜훈 후보가 "소신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가 야당 인사들이 현 정권에 참여하는 것이 좋다고 권했던 것은 현 정권이 너무 좌편향 정책을 펼치니 내각에 들어가서 견제 역할을 하고 '메기' 역할도 하라는 의미였다.
과거 삼성은 '순혈주의'로 유명하고 대부분 공채 출신들로 채워져 간혹 경력직들이 입사해도 배타성이 강해 주변의 비협조로 몇 년 버티지를 못하고 퇴사하곤 했다. 과거 삼성전자 본사와 해외법인에서 글로벌라이제이션(Globalization)을 추구할 때 강력한 조치를 취했다.
삼성전자가 진정으로 초일류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더 이상 순혈주의로는 안 되고 다른 경험을 가진 외부 전문인력들이 대거 들어와 경험을 공유하고 '메기'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판단했다. 소니, 토요다 등 일본 기업들이 규모는 커졌지만 일본인 순혈주의를 채택하여 진정한 글로벌 기업이나 현지화된 기업이 되지 못했던 것에서 교훈을 얻었다.
그래서 2000년경부터 국내외를 막론하고 세계적인 IT경쟁사 기업들로부터 많은 전문인력들을 영입했다. 그리고 과거의 실패를 교훈 삼아 영입된 전문 외부 인력들을 흔드는 행위를 금지시켜 보호했다.
CEO가 임원회의에서 만일 외부 인력을 나무 위에 올려놓고 흔드는 행위를 하면 해당 임원을 인사조치하겠다고 선언하였다. 그렇게 세계 각지에서 입사한 외부 인력들은 본·지사에 정착했고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고위급 요직에서 일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필자가 은퇴할 때쯤 이미 본사 여기저기에 세계 각지에서 영입된 전문인력들뿐 아니라 신입으로 입사한 외국인들이 많이 보였고 그들과 소통을 해야 하니 자연적으로 영어가 사무실 공용어가 되었다.
영어로 문서를 작성하고 영어로 소통하고 회의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외국인 고위급임원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현지 법인장도 실질적으로 권한을 가진 현지인으로 교체하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글로벌 기업으로 변신한 것이다. 그 변화가 20여 년 전에 일어났다.
글로벌라이제이션은 말로 아무리 외친다고 되지 않고 사람부터 글로벌화시키고 권한을 주면 자연적으로 이루어진다.
필자가 이혜훈 장관후보에게서 이재명 정부 내에서 그런 '메기'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했던 것이다. 이번이 계기가 되어 이혜훈 장관이 역량을 발휘한다면 추가로 야권에서 제2의 장·차관이 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주장에는 위에서 말했지만 자신의 소신을 지키고 메기 역할을 해준다는 전제가 앞선다. 들어가자마자 진보세력에 동화된다면 외부 수혈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혜훈 후보처럼 저렇게 쉽게 소신을 뒤집어서야... 입각해서 '기본소득은 말도 안 된다'고 목청 높여 외치던 보수경제학자로서 자신의 뜻을 펼치기 불가능해 보인다. 그냥 진보정권의 정책을 충실히 수행하는 순한 양으로 변신한다.
그럴 바에야 이재명 정권도 굳이 야당 인사를 장관으로 영입한 의미가 사라지고 야권 입장에서도 그런 의지가 없이 정부 내각에 입각하는 것은 그냥 '변절'에 불과해진다.
이혜훈 후보의 기자회견을 보고 놀라고 씁쓸해진 이유다. 이혜훈 후보는 결국 자신이 어떤 큰 뜻을 품고 입각하려던 것이 아니라 그냥 장관 자리에 혹해 과거의 정치 소신과 보수 경제학자로서의 포부를 저버렸다. 이 정도면 그냥 '변절'로 폄하해도 좋겠다.
이혜훈 후보는 장관 자리를 제안 받았을 때 자신을 '위장 탕평'의 도구로 사용한다거나 소신을 버리고 정권의 지시만 충실히 따르라고 하면 안 가겠고, 만일 메기 역할을 해 달라고 하면 가겠다라고 확실히 밝혔어야 했다.
자신의 요구가 안 받아들여지면 제의를 거절했어야 했다. 자신의 주장이 받아들여졌더라도 당 최고위층과는 사전에 교감을 하는 것이 정도다. 그것이 당 중진으로서 도리에 맞는 태도다.
그리고 이재명 정권도 이혜훈 후보가 기자회견을 통해 소신을 굽히게 압박을 하면 안 됐다. 자신의 소신을 꺾고 굴종하는 자세로 "충실한 개의 역할"을 요구했다면 탕평이 아니라 야권 분열을 획책하는 야비한 술책이었다는 의심을 피할 수 없다.
이혜훈 후보는 그렇게 소신을 꺾고 과거를 부정하며 평생 쌓아온 명예를 잃은 후에 장관 자리를 얻은들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이며 얼마나 오래 갈까? 어차피 대통령이 되었으니 정도를 걷고 잘해 주기를 바랐던 이재명 정권에도 크게 실망했고 이혜훈 후보에게는 인간적으로 배신감이 든다.
도구는 항상 용도가 끝나면 불필요하니 폐기처분된다. 달리 "토사구팽"이라는 말이 생겼을까? 정말 지조도 원칙도 없는 인물이다. 애초부터 이혜훈에게 딸깍발이 정신(눈앞의 이익보다 원칙과 지조를 지키는 고지식한 사람)을 기대한 것이 잘못이다.
jinannkim@gmail.com
#이혜훈논란 #소신과변절 #탕평의한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