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살인자'의 범행 2일전, 왜 가족들은 안심했을까
[엄상익 관찰인생] 잘나가는 광고PD 아내와 영화감독 남편
[최보식의언론=엄상익 논설위원]
그들이 온 지 2시간이 넘었다. 한마디 한마디가 조심스러웠다. 과장이 없고 진실했다. 어느새 수첩에 여러 장 빼곡하게 메모한 게 들어찼다. 창밖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사건 직전 홍진욱 씨의 상태는 어땠습니까?"
본인이 마귀가 들어왔다고 스스로 절규했는데 왜 못 막았을까. 큰누이의 눈빛이 진지했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한번은 진욱이가 집으로 왔어요."
그날로 돌아간 표정이었다.
"얼굴이 많이 야위었고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한 것 같았어요."
"그게 언제쯤이었나요?"
"사건 두 달쯤 전이었을 거예요. 진욱이가 그때 말했어요. 자기가 은희를 사랑하지만 은희는 이혼을 요구한다고."
나는 메모하던 손을 잠시 멈췄다. 고개를 들고 그의 누나를 바라보았다. 안타까운 눈빛이었다. 동생을 걱정하면서도 그 부인을 원망하는 눈빛은 아니었다. 그들의 사랑이 식은 걸까, 아니면 지친 걸까.
"진욱이는 은희가 자기에게는 최상의 여자지만, 은희가 이혼할 마음이 있으면 기회를 주어야 할 것 같다고 했어요."
"누나의 입장에서 어떻게 하셨나요?"
동생의 보호자인 셈이었다.
"제가 올케인 은희한테 이혼할 의사가 있느냐고 물어 봤어요. 은희는 펄쩍 뛰면서 진욱이가 없으면 자신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했어요."
모순이었다. 남편은 아내가 이혼을 원한다고 했고, 아내는 남편 없이는 못 산다고 했다. 둘 중 누가 진실일까. 둘 다일까.
"진욱이 증세는 은희도 잘 알고 있는 것 같았어요."
나는 펜을 멈췄다.
"어떤 증세를 알고 있었다는 건가요?"
"진욱이가 기도원에 가 있고 싶다고 했대요. 그런데 은희는 그건 절대 안 된다고 했답니다."
"왜요?"
"북 치면서 몸에 든 귀신을 쫓아내는 기도원은 안 된다고."
귀신. 다시 그 단어였다. 죽은 부인은 그것의 존재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그녀가 말을 이었다.
"은희한테 며칠 간이라도 부부가 떨어져 있어 보는 게 어떠냐고 권유했어요. 은희는 부부 문제니까 자기가 알아서 한다고 일축했어요."
"사건은 그 후 얼마 만에?"
도대체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한 달쯤 후요."
막을 수 있었다. 그때 떨어져 있게 해야 했다.
"요즘 면회를 가면 진욱이가 물어요. 자기 때문에 '그놈'한테 협박 받은 일이 없느냐고. 장인어른도 협박을 받느냐고."
그놈. 홍진욱은 여전히 잡혀 있다.
"진욱이를 진찰했던 정신과 의사를 만났어요. 그분도 입원을 시키지 못한 게 너무 안 됐다고 하더라고요."
그녀가 말을 멈췄다. 눈이 붉어졌다. 손끝으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훔쳤다. 옆에 앉은 둘째가 언니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둘째 누나가 조용히 말을 이었다.
"은희가 빈 집에 진욱이를 두고 외국으로 갔을 때가 있었어요."
목소리에 원망이 살짝 묻어있다.
"우리 형제들은 멀리서 안타까워했어요. 어린아이처럼 혼자 남겨진 채 먹지도 자지도 않고. 두려움과 외로움 속에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 동안 집을 비웠나요?"
"일주일이요. 아니, 열흘쯤."
나는 짐작이 갔다. 그동안 홍진욱은 혼자 그 놈과 사투를 벌였을 것이다. 얼마나 두렵고 힘들었을까. 나도 겪어 봤다. 열일곱살의 여름 그날부터 겨울까지. 그 놈은 내 주변에서 그림자처럼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한밤중 혼자 방안에 있을 때의 공포. 그놈은 검은 유리창에서 하얀 탈 같은 모습으로 웃다가 사라졌다. 어두운 구석에서 안개같이 희미하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도 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었다. 홍진욱도 그랬을 것이다. 나보다 훨씬 더.
큰누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진욱이가 몸이 마비된 어머니한테 올 때면 손에 손에 생활에 필요한 도구며 반찬이며 가지고 왔어요. 가정주부가 다 되어 있었죠."
그녀의 목소리에 애잔한 감정이 실려 있었다.
"구부러진 허리를 펴지도 못한 채 엉거주춤 앉아서 두 눈을 감고 힘에 부쳐하는 진욱이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해요."
말을 잇지 못했다. 눈이 다시 붉어졌다. 여동생이 티슈를 꺼내 언니에게 건넸다. 이번에는 여동생이 언니의 말을 이어갔다.
"사건 한 달 전쯤 오빠가 많이 아파서 우리 집으로 실려 온 적이 있어요."
"실려 왔다니요?"
"거의 사람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모습이었어요. 뼈에 가죽만 입혀 놓고, 죽조차 삼키기 어려운 상태였으니까요."
나는 펜을 놓았다. 그 정도였나.
"침대 시트는 땀으로 범벅이었어요. 헛소리를 하면서 두려움에 떨고 있었고요. 제가 죽을 끓여서 조금씩 먹였어요."
그놈은 즐기고 있었다. 애처러운 짐승을
"은희 언니가 해결점을 찾았어야 했는데."
원망 섞인 목소리였다.
"너무 바빠서 신경을 못 썼어요"
여동생이 멈췄다.
"아니, 쓰지 않았어요. 언니가 오히려 저한테 전화를 걸어 오빠 때문에 너무 힘들다고 했어요."
"오빠가 어떻게 하길래 힘들다고 하던가요?"
"'그놈'이 가족과 친구 동료까지 해칠 거라면서 계속 불안해한다고 그랬어요. 그놈은 없다고 했죠."
망상의 확장인가.
"은희 언니는 그런 증세 자체를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았어요. 귀신이든 정신병이든."
"왜 그랬을까요?"
"창피했던 거 아닐까요. 남들 시선이."
그게 맞는 것 같았다. 유명한 영화감독의 딸, 잘나가는 광고 PD. 남편을 영화계 최고의 감독으로 만들려는데 정신병자라고 하면 그녀에게는 절망이었다. 여동생이 계속했다.
"언니는 오빠가 기도원을 간다고 해도 안 된다고 했어요. 서로 떨어져 시간을 갖자고 해도 안 된다고 했고요. 병원에 가는 것도, 다른 사람들이 상태를 아는 것도 싫어했어요."
예정된 죽음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러면서도 언니는 오빠한테 영화 타이틀을 집에서 만들라고 다그쳤어요. 밤새 콘티를 짜게 하고 촬영장으로 데려가기까지 했죠."
"몸이 그렇게 안 좋은데?"
"네. 오빠를 부리면서 말도 가려서 하지 않았대요. 한마디 한마디에 예민한 오빠는 점점 더 자극을 받고 병들어 간 거죠."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촬영장에서 오빠는 촬영이 다 끝나는 걸 보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대요. 몸이 안 좋아서요."
나는 수첩에 적으면서 생각했다. 그녀에게 남편은 어떤 존재였을까. 사랑하는 사람? 동료? 도구?
"그날 오빠랑 통화했는데, 잘 찍었으니 걱정 말라며 은희 언니 칭찬만 하더라고요. 촬영 현장에서 속이 상했을 텐데도."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렇게도 사랑할까 싶었어요. 은희 언니는 사실 예쁘지도, 그리 능력이 있는 것 같지도 않았거든요. 집도 부유한 것도 아니고."
목소리에 섭섭함이 완연히 묻어났다. 나는 다음말을 조용히 기다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유는 사랑이었어요. 자신을 희생하면서 누군가를 끝없이 사랑하는 게 오빠였으니까요."
듣고 있던 큰누이가 말을 받았다.
"사건 발생 며칠 전 우리 형제들은 불안했어요. 뭔가 일어날 것 같았거든요."
"예감이었나요?"
"그런 것 같아요. 병원에 가야 할 것 같아서 찾아갔어요. 하지만 은희의 단호한 거절 때문에 돌아와야 했죠."
"그게 마지막이었나요?"
"아니요."
고개를 저었다.
"사건 이틀 전에 진욱이가 왔어요."
"상태가 어땠나요?"
그녀가 잠시 망설였다.
"의외로 좋아진 것 같았어요. 완전히 정상을 되찾았어요"
"어떻게요?"
"눈빛이 맑았어요. 오랜만에 보는 예전의 진욱이였죠."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래서 안심했어요. 이제 괜찮아진 줄 알았어요."
꺼지기 전에 순간 활짝 타오르는 불꽃이었나.
"눈물이 흘렀어요. 진욱이는 그간 신경 쓰게 해서 미안하다고 하면서, 더 열심히 일하고 가족을 편하게 살게 하겠다고 했어요."
"회복된 것처럼 보였다는 건가요?"
"네. 그런데..."
목소리가 굳어졌다.
"그리고 나서 이틀 후에 일이 벌어진 거예요."
갑자기 상태가 좋아졌다? 그리고 아내를 죽였다. 어떻게 된 것일까. 꺼지기 직전의 촛불이 활짝 피어 오른 것일까. 옆에 있던 여동생이 덧붙였다.
"저는 지금도 오빠가 살인을 했다는 걸 믿지 못하겠어요.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그렇게 할 이유가 없잖아요."
그녀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믿을 수가 없어요. 오빠는 워낙 착하고 바른 사람이니까요."
나는 수첩을 덮었다. 창밖에 서서히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자매들이 일어섰다.
"저희 얘기가 재판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어요."
큰누이가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들이 나간 후, 나는 창밖에 보이는 잎떨어진 나뭇가지를 보면서 생각했다. 착한 살인범. 그런 게 있을까. 아니,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무서운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40년 가까이 변호사를 하면서 수많은 살인범을 만났다. 악한 사람에게는 마귀가 다가왔다.
그러나 홍진욱은 달랐다. 착한 사람인데 살인을 저질렀다.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다. 그놈이 홍진욱을 도구로 사용했다. 내가 알고 있던 경계가 무너져 내렸다. 무서웠다.
#착한살인범8 #가족의증언 #광기와비극 #경계 #엄상익변호사 #엄상익에세이 #엄상익못다한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