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관찰인생] “착했던 오빠”는 왜 무너졌을까 ... 세 자매의 증언
빵집 주인 아줌마가 진욱이가 착해 보인다면서
[최보식의언론=엄상익 논설위원]
홍진욱의 누나들과 여동생이 나의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세 자매가 조심스럽게 소파에 앉았다. 온순해 보였다. 근심의 검은 그림자가 얼굴에 드리워져 있었다. 그들의 모습에서 한줄기 선한 흐름이 느껴졌다. 유전인가. 홍진욱에게서 느껴지던 질감도 비슷했다.
"제가 맏딸이고 진욱이의 큰누나입니다."
자매 중 눈이 둥그런 여성이 입을 열었다.
"면회 가서 죄수복에 등이 굽어 있는 진욱이를 보니까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아요."
그녀가 말을 잇지 못했다. 눈이 바로 붉어졌다. 눈물이 그렁하게 맺혔다.
"어린 시절 제가 진욱이를 데리고 책방에 가서 동화책을 사 주던 기억이 나네요."
성장 과정이 따뜻했던 것 같다.
"진욱이가 대학 3학년 때 갑자기 집안이 기울었어요. 당장 하숙비가 걱정이던 진욱이는 휴학을 했죠. 저 역시 당시 생활에 쪼들려 진욱이를 밀어주지 못한 게 지금도 마음에 걸립니다."
속에서 슬픔이 치솟는지 그녀가 말을 잇지 못했다. 옆에 있던 다른 여성이 입을 열었다. 침착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저는 둘째 딸입니다. 아버지 사업이 망하면서 우리 집은 상계동 판자촌으로 옮겼어요. 방이 둘이었는데 하나는 중풍인 아버지가 쓰고 진욱이는 나머지 방에서 살았죠. 딸들은 결혼을 하고 따로 살았죠. 그 집이 어떻게 좁은지 누우면 발이 방 밖으로 나갔어요. 진욱이는 새우같이 등을 구부리고 자곤 했죠. 밤늦게 판자집으로 돌아오던 진욱이가 아버지에게 드리려고 빵을 얻어 왔던 기억이 나네요."
자매들의 얼굴에 맑은 눈물이 맺혔다.
"빵집 주인 아줌마가 진욱이가 착해 보인다면서 덤으로 빵을 주더래요."
홍진욱은 감옥 안에서도 안경을 쓴 하얀 얼굴이 천진난만해 보였다. 상 위에 올려 놓았던 그의 가늘고 긴 손가락이 떠올랐다. 그 손으로 살인을 했다. 왜? 나도 모른다. 그녀가 덧붙였다.
"돈이 없어 마을버스도 타지 못하고 온통 땀에 젖어 온 진욱이 얼굴이 지금도 눈에 생생하게 밟히네요. 언니는 이미 결혼했고 저도 그 무렵 도피하듯 결혼을 해서 나갔어요."
그들의 불행이 파도가 되어 내 마음 기슭을 치고 있었다.
"그런 환경 속에서도 진욱이의 집념이 꽃을 피웠어요. 여기저기 영화사에서 스카웃 제의도 들어오고 진욱이가 광고도 만든다고 했어요. 한번은 신문에 난 진욱이의 얼굴을 보고 제가 감격해서 주위 사람들에게 신문을 사다 나누어주기도 했죠."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여동생이 끼어들었다.
"우리 가족은 아버지 어머니 딸 여섯, 그리고 그 사이에 낀 오빠까지 모두 아홉 명 이예요. 단란하게 살았어요. 원래는 명륜동에 있는 아담한 한옥에서 살았죠."
명륜동의 한옥 동네가 떠올랐다. 조용한 골목에 단정하고 깔끔한 집들이 들어서 있었다. 집집마다 행복이 들어 차 있는 것 같았다. 나도 그런 집에서 나오는 웃음소리에 끼고 싶었다.
"우리 집은 늘 사람들로 북적였어요. 어머니가 사람들에게 베풀고 사셨기 때문이죠. 그 당시 동네에는 거지나 나병환자들이 많았는데 어머니는 그 사람들에게 항상 따뜻한 밥을 한 그릇씩 대접했어요. 우리 형제들은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나누며 사는 것을 배웠죠."
그랬다.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까지 아침이면 깡통을 든 거지들이 찾아왔다. 깡통의 바닥에 찬 밥 한 덩이와 얼음이 낀 하얀 곰팡이가 서린 김치 한 줄거리를 봤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오빠는 여자들 틈에서 큰소리 한번 내지 않고 살았어요. 아버님께서 조그만 회사를 운영하신 덕으로 우리 형제들은 부족함이 없었어요. 지금도 돌아가신 부모님께 감사하죠. 오빠는 귀한 아들이었어요. 밥을 먹을 때도 우리 밥상과 오빠 밥상은 뭐가 달라도 달랐어요. 오빠는 자기 앞에 올라온 생선 토막을 딴 형제들에게 미안해하면서 그걸 슬쩍 내 밥그릇 위에 놓아주었어요."
그녀의 말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그런 홍진욱이 살인을 했다. 모순이다.
"오빠가 차디찬 감옥에서 아픈 채로 누워 있는 이 순간, 그때 생각이 더 나네요. 오빠는 집이 기우니까 하고 싶은 영화를 하지 못했어요."
좌절되는 순간의 아픔을 나도 안다.
"그런 오빠가 언제부턴가 몸이 아프다고 했어요. 처음에는 과로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때부터 오빠는 병과의 싸움을 시작한 거죠. 척추에 발생하는 희귀병이었어요. 병원에서는 요양하면서 뼈들이 굳어가는 시간을 늦춰보자고 했어요. 오빠는 병을 이길 수 있다면서 굴복하지 않았어요."
악령은 왜 그를 타켓으로 한 것일까. 그의 행복과 재능을 질투한 것일까.
"오빠의 결혼 생활은 어땠습니까?"
내가 본론으로 방향을 돌렸다. 맏딸이 대답했다.
"진욱이가 첫 번째 결혼했을 때 부인에게 과민하게 집착했어요."
두 번째 결혼이라는 얘기였다. 그녀의 목소리에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그때 이미 척추병이 시작됐던 게 아닌가 합니다. 자신이 점차 무너져간 다는 걸 느꼈는지 진욱이는 필사적으로 아내를 붙들었어요. 진욱이는 같이 사는 장모가 원하는 건 뭐든지 해줬어요. 장모는 명품을 원했고 진욱이는 무리를 해서라도 그것을 선물했죠. 결국 진욱이는 많은 빚을 지고 이혼을 하게 됐습니다. 장모가 아픈 진욱이를 너무 무시했기 때문이죠. 그다음 결혼이 지금의 죽은 정은희였어요."
옆에 있던 여동생이 나섰다.
"어느 날 오빠가 짧은 커트 머리를 한 은희언니를 데리고 왔어요. 검은 피부가 건강해 보였어요. 미인이라기 보다는 다른 매력이 있었죠. 오빠는 '착한 후배야, 좋아하는 여자다' 그렇게 소개했죠 심성이 착해 보이고 오빠에게 잘할 것 같았어요. 두 사람이 결혼을 하고 열심히 살았어요. 우리 형제들은 모두 은희 언니에게 감사했죠."
자매들의 마음이 예쁜 것 같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오빠의 몸이 더 쇠약해져 갔어요. 은희 언니는 일에서 승부욕이 컸어요. 언니는 밖에 나가 일에 몰두하고 아픈 오빠는 집에 있었죠."
말끝이 떨렸다. 잠시 침묵 후에 말이 이어졌다.
"제가 가끔 들러보면 집안일은 거의 오빠가 다 했어요. 빨래에 설거지, 청소를 오빠가 다 했어요. 어떤 여자보다도 깔끔하게 잘했어요. 그런 모습을 보고 속상해하는 저를 보고 오빠는 은희 언니를 감싸고 돌았어요."
그들 부부의 균열은 어디서부터 생긴 것일까.
"은희 언니는 워낙 바쁜 사람이라 오빠랑 대화할 시간이 넉넉지 못한 것 같았어요. 일 때문에 항상 피곤에 절어 있기도 했구요. 더러 은희 언니의 직선적인 성격에서 튀어나오는 한마디에 마음 약한 오빠가 상처를 입는 것 같기도 했어요. 오빠 집에 자주 가고 싶었지만 은희 언니가 좋아하는 것 같지 않아 피했어요."
대충 부부 사이의 그림이 보이는 느낌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오빠가 얼마나 외롭고 힘든 시간이었을까 가슴이 메어 오네요. 그렇지만 은희 언니가 오빠를 무시하거나 천대하는 그런 사람은 아니었어요. 오히려 오빠의 능력에 늘 감탄을 하고 그렇기 때문에 오빠에게 거는 기대가 큰 것도 알게 됐죠."
여동생이 말을 마쳤다. 사무실에 침묵이 흘렀다. 나는 한 인간이 서서히 부서져 내리는 소리를 들었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기대가 그를 짓눌렀고, 숨쉬기도 힘들게 했던 것인지 모른다. 그때 '그놈'이 귓속에서 속삭인 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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