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벌을 피하려 생쑈를 한다” ... 장인의 증언에 얼어붙은 법정

[엄상익 관찰인생] '생쑈'라는 말에 홍진욱이 순간 눈을 질끈 감았다

2025-12-26     엄상익 논설위원

[최보식의언론=엄상익 논설위원]

정일경 감독이 증언석에 올라왔다. 영화계의 중진이다. 검은 쟈켓 안에 회색 셔츠를 받쳐 입은 60대쯤의 세련된 신사였다. 피고인석에 앉아 있던 홍진욱이 그를 보자 화들짝 놀라면서 벌떡 일어났다. 고개를 깊이 숙였다. 어쩔 줄 모르는 겁먹은 표정이었다. 당황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안 좋은 일로 나오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재판장이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증인을 보았다.

"괜찮습니다."

감정을 자제하는 어조였다.

"사위 홍진욱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재판장이 물었다. 무엇을 알고 싶은 것일까. 느낌이 좋지 않았다.

"법정에 증인으로 나오기 바로 전에 감옥에 있는 저 친구한테서 편지를 한 통 받았습니다. 합의서나 탄원서를 부탁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는 새사람이 되겠다고 했습니다."

말 끝이 떨렸다.

"편지를 보낸 것은 제가 증인으로 출두하니까 잘 말해 달라는 것으로 밖에 해석할 수 없습니다. 저는 저 친구가 정말 뻔뻔스럽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얼굴에 붉은 기가 피어 오르고 있었다.

"편지를 보면서 정말 화가 나고 불쾌했습니다. 저 친구는 먼저 죽여 달라고 해야 맞습니다. 처벌을 달게 받겠다고 했어야 합니다. 그리고 죽어서라도 사랑하는 아내에게 가겠다고 해야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뭡니까? 합의해 주고 증인으로 나가 말을 잘해 달라니요? 제가 증인으로 출두하니까 비로소 그런 편지를 썼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분노의 물결이 그의 이성의 둑을 넘고 있었다.

재판장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버지의 감정이 이입된 것 같았다. 재판장이 엄한 눈길로 홍진욱을 보면서 따졌다.

"편지를 왜 썼죠?"

"가정을 못 지킨 건 저의 죄입니다. 이유야 어떻든 아내를 죽인 건 저입니다. 사죄를 하고 싶었습니다."

증인석의 정 감독이 재판장을 향해 소리쳤다.

"제가 괘씸하게 생각하는 것은 저 친구가 자신을 정신병자로 만들어서 처벌을 피해 가려는 점입니다. 결혼 당시부터 여러 번 봤는데 멀쩡합니다. 얼마 전까지도 제 작품의 타이틀을 만들었습니다."

그의 뺨이 부르르 떨면서 경련을 일으켰다.

"내가 저 친구에게 얼마나 잘하고 저 친구를 좋아했는지 본인 스스로 잘 알 겁니다. 그건 내 딸이 외롭게 자랐기 때문에 나 대신 사랑해 주고 아껴 주었으면 해서 사위에게 잘했던 겁니다. 사위를 그럴 만한 사람으로 봤었습니다."

그의 눈에 물기가 스몄다.

"우리 은희가 훌륭한 남편을 만나 행복하게 살길 바랐습니다. 작은 집에서 살기 때문에 제가 돈이라도 모아 아파트를 사 주려고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저는 저 친구를 지금도 좋은 놈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도대체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저놈 말대로 귀신이 씌었는지 저는 너무나 가슴이 아픕니다."

그가 주먹으로 가슴을 쳤다. 그의 입에서 나온 '귀신'이라는 단어가 순간 나의 심장에 비수같이 박혔다. 

나는 '그놈'이라는 귀신이 죽였다고 믿는다. 그러나 지금은 법정이다. 이성의 영역이다. 장인이었던 증인은 지금도 좋은 놈이라고 하고 있다. 좋은 놈이 왜 아내를 살해했을까.

"죽은 딸 아이의 생모가 따로 있습니다. 가정적으로 복잡한 사연이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딸 아이는 엄마 없이 눈치 보면서 컸습니다. 그런 애를 죽이다뇨."

그가 울음을 참지 못해 꺽꺽거렸다. 어깨가 흔들렸다.

재판장이 안 됐다는 눈빛을 지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아버지가 내색하지 않으면서 감싸 주시려고 했던 것이군요."

재판장의 눈빛이 이미 아버지 편이었다.

"그러면 피고인 홍진욱이 보냈다는 그 편지의 사본을 재판부에 제출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양형에 참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엄벌에 처해 주겠다는 의미였다.

법정에 정적이 흘렀다. 재판장의 눈에서 분노가 일었다. 방청객들이 홍진욱의 등 쪽으로 분노의 화살을 쏘고 있었다. 나는 높고 두꺼운 담을 마주하고 서 있는 느낌이었다.

"검사 신문하시죠."

재판장이 말했다. 검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증인이 처음으로 사위 홍진욱을 봤을 때 인상이 어땠나요?"

"딸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친구가 결혼하겠다고 오면서 머리에 노란 물을 들이고 귀고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나이에 걸맞지 않게 너무 꾸민 태도였어요. 솔직히 탐탁치 않았습니다."

옆에서 듣고 있는 홍진욱의 온 몸이 귀인 것 같이 느껴졌다.

"딸이 좋다는데 제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제대로 된 애비 노릇도 못한 입장이었습니다. 저는 이왕 그렇게 된 이상 사위를 사랑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빨리 할아버지가 되고 싶다고 그랬죠. 그럴 때마다 저 친구는 걱정 마세요. 빨리 될 거예요 하더라구요. 그러면서 지나치게 나한테 친절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좋은 부부 사이를 연출하기도 했죠."

듣고 있는 홍진욱의 눈꺼풀이 미세하게 떨렸다. 마주 잡은 양손에 가득 힘이 들어가 있는 게 보였다.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저 친구가 딸에게 애정 표현을 하는 게 어쩐지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저 친구가 명절 때 제 앞에서는 술을 입에도 못 댄다고 했는데 집에는 양주병을 쌓아 두고 마시는 걸 뒤늦게 알았어요. 이중적이었다고 봅니다."

검사가 신문의 방향을 바꾸었다.

"피고인의 정신이 정상을 일탈했다고 보신 적이 있나요?"

"아닙니다. 저 친구 생쑈를 하는 겁니다."

'생쑈'라는 말에 홍진욱이 순간 눈을 질끈 감았다.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비쳤다. 낭패감일까. 아니면 자학일까. 알 수 없었다.

"나도 영화판에서 시나리오를 쓰면서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아마 저 친구의 머리에서는 여러 외국 살인 영화의 장면과 대사들이 슬라이드 화면같이 나타났다가 사라질 겁니다."

"검찰 측 증인 신문 마치겠습니다."

검사의 얼굴에 승리감이 번졌다. 그가 자리에 앉았다.

내 차례였다. 정신이상이라는 카드가 검사의 선제 공격으로 초토화됐다. 눈을 감고 1초 정도 기도했다. 심호흡을 하고 증인에게 다가갔다.

"증인은 사위가 정신 병력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계시지 않았나요?"

그렇게 말하면서 준비해 온 진단서를 그에게 보였다.

"저는 그 진단서를 믿지 못하겠습니다. 제가 보기에 저놈은 지금도 멀쩡하다고 생각합니다. 저기 법정에 차분히 앉아서 내 얘기를 듣는 걸 보세요."

"딸이 결혼한 이후 그 집에 몇 번 정도 방문하셨나요?"

"글쎄요 제가 워낙 바빠서."

"제가 듣기로는 간 적이 없다고 하던데요."

"그건 그렇습니다."

"여기 진단서는 피고인이 결혼 전에도 정신병원을 다닌 적이 있는 것으로 나와 있는데 그때도 쑈로 다녔을까요?"

"아무튼 저는 쑈로 봅니다. 정신병도 중증이 있고 경증이 있고 여러 형태가 있을 겁니다. 현대인은 누구나 약간씩은 그런 증상을 보일 수도 있구요. 제가 생각하는 건 저 친구가 처벌을 앞두고 정신병 쪽으로 범죄의 동기를 돌리고 있다는 겁니다."

"증인이 일에 바빠서 딸과 사위가 사는 집에 간 적이 없지만 부인을 대신 보낸 적은 있죠? 어떤가요?"

"그런 적이 있습니다."

"부인이 딸네 부부가 사는 집에 갔다 와서 그 집 책상이나 선반 위에 일본도나 재크 나이프 개스 총이 있더라는 말을 전한 적이 없나요?"

내가 읽었던 수사 기록의 검찰 진술조서 중 그 부분이 있었다.

"그런 말을 들은 기억이 없습니다."

"증인이 사위인 피고인에게서 폭력성을 발견한 적이 있나요?"

"그런 적은 없어요. 항상 계집애같이 나긋나긋 했어요. 얻어맞을 사람이지 누구를 때릴 사람은 아니라고 봤습니다."

"그런 성격이라면 왜 그런 칼이나 무기들을 집에 가져다 놓았을까요?"

"그건 제가 답변할 사항이 아닌 것 같습니다만."

"피해망상으로 자기를 방어하기 위해서 그런 건 아닐까 생각하셨던 적은 없나요?"

"나는 잘 모르겠습니다."

"사위인 피고인이 건강은 어땠습니까?"

"자주 보지는 않았지만 제가 보기에는 빌빌거렸습니다."

"딸의 건강은 어떤 편입니까?"

"그 애는 건강에 신경을 쓰고 운동도 집요하게 했어요. 매일 아무리 바빠도 조깅을 건너뛰는 성격이 아니죠. 건강했습니다."

"딸과 사위의 애정 관계가 원만하다고 보셨나요?"

"그건 제가 바빠서 잘 모르겠습니다."

"죄송한 질문을 하나 해야겠습니다. 양해해 주시겠습니까?"

"하시죠."

나는 질문을 할까 말까 망설였었다. 딸의 은밀한 사생활을 법정이라는 공개된 장소에서 까발려도 되는 것인지 주저했다. 그래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사건이 일어난 후 딸의 집에 가서 집안을 살펴보신 적이 있죠? 딸과 사위의 소지품 중 특이한 것들이 있었는데 기억하시나요?"

"대충은 압니다."

"딸의 서랍에서는 자위용 기구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사위의 서랍에서는 비아그라가 나왔습니다. 강한 체력의 딸과 약한 사위 사이의 부부관계가 원만치 못했던 거 아닌가요?"

정 감독의 얼굴이 굳어졌다.

"잘 모르겠습니다."

대중 앞에 선 벌거벗은 딸에게 담요를 덮어주는 아버지의 정이 담겨 있었다.

"딸이 스태프들과 함께 해외나 국내 촬영을 가서 며칠씩 묵고 온 적이 있다고 하는데 어떤가요?"

"이따금씩 해외 촬영을 간다고 애비인 저한테 전화를 하곤 했습니다."

나는 마지막 질문을 꺼냈다. 수사기록에서 발견한 것이었다. 휴대폰 통화기록. 사건 이틀 전, 새벽 2시에 아버지에게 걸린 15분짜리 통화.

"증인께서는 딸이 죽기 이틀 전, 새벽 2시에 전화를 받으신 적이 있죠?"

정 감독의 표정이 순간 얼어붙었다.

"......있습니다."

"딸이 뭐라고 했습니까?"

침묵이 흘렀다. 방청석이 숨을 죽였다.

"......너무 힘들다고 했습니다."

"무엇이 힘들다고 했습니까?"

"......살기가."

나는 더 묻지 않았다. 정 감독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때 피고인석에서 작은 소리가 들렸다. 홍진욱이 고개를 숙인 채 어깨를 떨고 있었다. 울고 있는 것일까.

"신문을 마치겠습니다."

아버지는 딸의 삶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게 없는 것 같았다. 아니,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것은 아닐까. 그들 내부에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깊은 균열이 있었던 것 같았다. 그놈이 조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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