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관찰인생] 억울한 감옥살이보다 더 분통 터지는 것

새로 임명된 총재가 나보고 나가 달라고 하는 거야

2025-12-24     엄상익 논설위원

[최보식의언론=엄상익 논설위원]

이진숙 전 방통위원장. 채널A 캡처

친한 대학 동기들이 몇 명 모여 점심을 먹는 자리였다. 한국은행 부총재로 있던 친구가 분노를 억누르면서 하소연하듯 이렇게 내뱉었다.

"정권에서 새로 임명된 총재가 나보고 나가 달라고 하는 거야. 대학을 졸업하고 평생을 있던 직장에서 내가 나갈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주위사람들에게 물어봤더니 돈을 먹거나 여자관계로 불미한 게 없다면 버티라고 하더라구. 

그래서 나는 못 나가겠다고 버텼어. 그랬더니 그다음에는 거짓 모략을 퍼뜨리는데, 해명할 길도 막연하고 못 당하겠어. 그래서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그만뒀어."

듣고 있던 다른 친구가 이렇게 대답했다.

"어떤 조직이든 간에 패가 갈려서 장(長)이 바뀌게 되면 자기 패거리가 아니면 모두 내보내는 사회 분위기야. 말을 듣지 않으면 모략을 해서 슬쩍 기자들에게 흘리지. 기자들이 나쁜 놈이야. 허위인 걸 알면서도 그걸 기사로 쓰는 거야. 그렇게 사람을 몰아내지."

"그러니까 우리 몸속에 들어있는 정자 하고 기자는 인간이 될 확률이 몇 십만 분의 일이라는 거라고 하지."

다른 친구가 끼어들어 말했다.

"나가라는 사인이 있는데도 버티면 확인 사살은 검사가 하지. 은행장이나 심지어 큰 민간기업의 사장도 버티면 검사가 나가라고 협박을 하잖아? 안 나가면 압수수색을 해서 먼지가 나올 때까지 털고 그래도 아무것도 없어서 무죄가 나오면 그만이고 하는 식으로 말이지. 

그러니까 한을 품고 자살하는 사람도 많잖아?"

"억울한 게 많은 세상이야. 그래도 참고 살아야지 어떻게 하겠어?"

친구들이 모인 자리에서의 결론이었다. 수사권은 국가가 가지고 있는 폭력수단이다. 그 폭력은 멀쩡한 사람들을 감옥으로 보낼 수도 있고 죽음으로 내 몰수도 있다. 그 힘으로 개인이나 국가의 인사권까지 결정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정권마다 수사권이 정치의 도구가 되는 걸 본다. 모임에 참석한 친구 중 한 사람인 전직 자유총연맹 총재가 말한다.

"내가 자유총연맹 총재로 입후보를 하기 전에 먼저 청와대 쪽으로 알아 봤어. 나가도 되겠느냐고 말이지. 알아서 기어야 후환이 없는 걸 나도 그쯤은 이미 알고 있거든. 그런데 알아서 하시라면서 더 이상 대답이 없는 거야. 

그래서 출마했지. 그러다 막상 선거가 시작되니까 청와대에서 추천한 대통령 측근이 입후보로 나서더라구. 그런데 이미 참모진도 뛰기 시작하고 발을 뺄 수가 없는 상황이었어. 버텼지. 

그랬더니 투표 사흘 전에 검찰에서 압수수색이 나오고 나를 감옥에 집어 넣더라구. 예전에 국회의원 출마할 때 선거사무실 보증금이 신고 절차에서 누락됐다고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건 거지. 그리고 억지로 뇌물로 걸었는데 그건 바로 무죄가 됐지. 

몇 달간 감옥에 살았는데 정말 분통 터지더구만. 정말 화가 나는 건 내가 그래도 경찰 총수를 했는데 검찰청에 올 때면 꼭 포승을 하고 수갑 찬 모습을 경찰관들이 보는 앞에서 조리돌림을 하더라구. 정말 죽고 싶을 정도로 수치스러웠지."

내가 그때 그의 변호인이었다. 담당검사는 너무나 태연하게 자기가 하는 일이 정무지 수사가 아니라고 했었다. 

나는 검사가 인권을 옹호하는 수사를 해야지 정치를 하면 되겠느냐고 그 자리에서 반박을 해 주었다. 그 자리에서 나는 쫓겨나고 검사의 압력으로 변호인의 자격이 박탈됐다. 

저런 변호사를 쓰면 결과가 나쁠 것이라고 포승줄에 묶여 있는 피의자에게 겁을 주었던 것이다. 수사권이 기울어진 논에 물이 고이듯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 물이 고인 쪽은 벼들이 썩어가고 있다. 물이 없는 바짝 마른 쪽의 벼들은 타들어가고 있다. 

서민들은 억울한 일을 당해 눈물을 흘려도 그걸 해결해줄 정당한 수사를 기대하기 힘든 것이다. 헌법에 규정된 적법절차와 기본권은 장식으로만 있는 게 아닌데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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