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은 왜 ‘탈북자’ 대신 ‘북향민’ 고집할까?
용어를 바꿔 뭔가를 건드리려는 허망한 시도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최보식의언론=곽대중 작가(개혁신당 이준석대표실 팀장)]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지난 19일 이재명 대통령에게 내년도 업무계획을 보고하는 자리에서 ‘탈북민’ 대신 ‘북향민’ 용어를 썼다.
정 장관은 "탈북자를 북향민으로 명칭을 변경하는 안에 대한 의견을 수렴 중"이라며 "탈북민들 전원이 기존 명칭, 탈북자라는 명칭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표시하는 것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그러자 이 대통령과 김민석 총리도 업무 보고 중 '북향민' 용어를 썼다.
통일부는 이미 내부적으로는 북향민 용어를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편집자)
탈북자 또는 탈북민에 대한 호칭 변경 시도는 여러 번 있어 왔다. 헤아려보건대, 정권마다 시도했던 것 같다.
노무현 정부 시기에 '새터민'이라는 용어를 정착시키려 했지만 실패했고, '북한이탈주민'이라는 호칭을 행정용어처럼 사용하기도 했지만 일상에 뿌리내리는 데에는 실패했다. 그 외에도 통일인, 하나민, 자유인, 별별 제안이 다 있었지만 실패했다.
가장 흔히 통용되는 용어는 역시 '탈북자' 또는 '탈북민'이다. 일상적으로는 "북한 출신" 또는 "북한에서 오신 분" 등이 흔히 사용되는 것 같다.
일상으로 굳어진 용어를, 혐오나 차별 표현이 아닌 이상, 그것을 굳이 바꾸려는 시도에 대해 근원적 거부감을 느낀다.
용어를 바꾸면 달라지는 것이 있을까?
유모차를 유아차로 바꾼다고 여성 인권이 근본적으로 달라질 것 같지 않고, 폐경을 완경으로 바꾸어도 마찬가지다.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니 '이거라도 바꾸자'는 식인데, 그것에서 지극한 형식주의 냄새가 난다는 것이다. 뭘 좀 했다고 스스로 만족하기에는 좋아도, 세상의 진보에는 별반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느니 하면서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으로 옮기면 만사형통하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뻐겼던 어느 정부가 생각난다.
탈북자들에게 여론조사를 해보면 '탈'이라는 용어 때문에 거부감을 느낀다는 응답이 많다.
한편으로, 초기 탈북인의 경우, "우리는 당당하게 탈출한 사람들"이라면서 오히려 그 용어를 자랑스러워하는 분들도 있었다.
2000년대 초반만 하여도 국내 입국 탈북자가 누계 2천 명 수준이었다. 지금은 대략 3만 명이 넘는 탈북자가 우리와 함께 살고 있다. 그들의 성향은 너무도 다양하여, 십여 년 전만 하여도 '탈북자' 하면 대단히 보수 성향으로 알려졌지만, 지금은 그들 사이에도 정치적 성향이 천차만별이다. 정말 오만 사람이 다 있다.
의견이나 여론을 취합해 명칭을 통일하려는 시도 자체가 허망하다는 뜻이다.
각설하고, 반복하건대, 사회적 통념으로 굳어진 용어는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으니 그냥 내버려 두는 편이 낫다. 용어를 바꿔 뭔가를 건드리려는 허망한 시도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폴 포트와 크메르 루주는 쁘띠부르주아 지식인을 척결하고 평등한 세상을 이룬다면서 '선생', '의사', '교수' 같은 직업 명칭을 금지하고 모든 사람을 '동지'라는 용어로 통일했다.
수용소에서는 사람의 이름을 빼앗고 숫자로만 호명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프놈펜을 점령한 1975년을 '0년'으로 선포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캄보디아 인민들이 행복하거나 평등해지지는 않았다.
언어는 사회의 결과이지, 명령이나 획일화 대상이 아니다. 존재가 의식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반복된 의식의 흐름이 결국 하나의 존재로 굳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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