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이 왔어’ ... 살인사건 녹음테이프에 남은 정체불명의 목소리
[엄상익 관찰인생] 나는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이겼다. 홍진욱은?
[최보식의언론=엄상익 논설위원]
녹음 테이프 속에 이상한 인물의 목소리가 있었다. 형사와 홍진욱이 대화를 하던 사이에 딱 한 번 끼어들었다. 살인사건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을 것 같았다. 그가 누굴까.
30대 초반의 장영식이었다. 홍진욱의 심복 노릇을 해 왔던 조감독이었다. 그는 홍진욱을 형이라고 부르면서 좋아했다. 심지어는 홍진욱이 사는 빌라 근처에 원룸을 빌려 혼자 살고 있었다. 나는 사건을 맡긴 홍진욱의 친구 목사에게 그를 한 번 만나보고 싶다고 했다.
이틀 후 그가 나의 사무실을 찾아왔다.
"살인사건 현장을 제일 먼저 보고 신고한 게 저입니다. 진욱이 형도 피를 흘리고 있어서 병원에 같이 갔었죠. 형사가 와서 조사할 때도 옆에 있었습니다."
"그날의 상황을 자세하게 얘기해 주시죠."
나는 수첩을 펼쳤다.
"사건이 일어나던 그날 새벽 진욱이 형이 메시지를 보냈어요. '그놈이 왔어. 무서워'라는 내용이었어요. 무슨 의미인지 몰라 제가 '누구?'라고 다시 메시지를 보냈죠. 더러 얘기하던 '그놈'이었어요. 또 헛걸 봤구나 생각 했죠. 그리고는 더 연락하지 않고 잠잠해졌어요."
장영식이 휴대폰을 꺼내 보여주었다.
'그 놈이 왔어. 무서워'
글자가 낄낄거리고 웃는 검은 그림자 같았다. 화면에 찍힌 시간은 새벽 3시 27분이었다. 어둠이 지배하는 시간이다. 악령들이 활발히 활동하는 순간인지도 모른다. 17세 소년 시절 내가 가위 눌려 깨던 시간이었다.
"그날 오전 11시경 진욱이 형이 사는 빌라 주차장을 가 보니까 형수 차가 그대로 있는 거예요. 그날 아침 10시에 미팅이 있다고 들었는데 차가 그대로 있을 리가 없었어요. 형수는 시계같이 정확한 여자였거든요. 예감이 이상했어요."
"그래서요?"
"주차장 위에 있는 진욱이 형 집으로 올라갔어요. 문이 닫긴 채 인기척이 없더라구요. 핸드폰으로 전화를 했는데 받지 않았어요. 뭔가 벌어진 것 같은 예감이 드는 거예요. 그 무렵 진욱이 형이 거의 미쳐가는 느낌이었거든요. 허공을 보고 말을 하기도 하고 그랬죠. 문을 따고 들어가려고 파출소에 연락했죠. 경찰관이 가족이 입회해야 한다고 하더라구요."
장영식은 많은 걸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제가 진욱이 형 여동생에게 연락했어요. 오후 3시경에 여동생과 누나가 왔어요. 열쇠공과 함께 파출소 순경 두 명과 119구조대원들이 왔죠. 열쇠공이 문구멍으로 들여다 보더니 '안전핀이 걸린 걸 보니까 안에 사람이 있어요'라고 했어요. 밖이 소란스러운데도 안에서 전혀 반응이 없었어요. 119 구조대원이 베란다를 통해 집 안으로 들어가서 문을 열었어요."
"장영식 씨도 들어갔습니까?"
"네. 들어갔죠."
장영식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형수가 안방 침대 위에서 똑바로 누운 채 죽어 있었어요. 얼굴이 거무스름했어요. 그 옆에 진욱 형이 등을 돌린 채 누워 있었고요. 팔목에서 피가 조금씩 흘러내리고 있었어요."
나는 머릿속에 그려지는 장면을 수첩에 세밀하게 적었다. 같이 죽으려고 했던 것일까.
"방 안 분위기는 어땠습니까?"
그가 잠시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진공 같이 조용했어요. 무덤 속의 고요라고 할까. 무거운 공기가 꽉 들어차 있었죠. 방바닥에 문방구용 카터 칼이 떨어져 있었어요. 침대 머리에 흰색 끈이 묶여 있었죠. 구조대원들이 부부를 구급차에 태워 응급실로 데려갔어요. 제가 바로 따라갔죠."
"병원에서는요?"
"의사들이 손목을 처치하고 검사했어요. 이십 분쯤 걸렸어요. 처음엔 독약을 먹은 것으로 생각하고 위세척을 했는데, 나중에 보니 술을 마신 거였대요. 한참 후에 진욱이 형이 깨어났어요."
그날 밤의 광경이 어렴풋이 떠오르는 것 같았다.
"진욱이 형이 누나를 보고는 미안하다고 하면서, 은희하고 같이 죽으려고 그랬는데 왜 자기만 살아 있느냐고 울먹였어요."
"부부 사이는 어땠습니까?"
왜 같이 죽으려고 했을까.
"나쁘지는 않았어요. 그것보다도 그때 한참 업계에서 뜨고 있는 형수로서는 남편의 아이디어와 도움이 절대적이었죠. 형수의 광고 카피 작품들은 사실상 뒤에서 남편이 만들어주고 카메라 각도까지 세심하게 기획해 줬으니까요."
"홍진욱 씨가 더러 이상한 증상을 보였다는데 그게 뭡니까?"
장영식이 나를 보았다. 내가 믿을지 살피는 눈빛이었다.
"저한테 '그놈' 말을 많이 했어요. 저도 납득할 수는 없었지만요."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요?"
"한 번은 형이 집에서 명상을 하고 있는데 이마 중앙이 뜨거워지면서 뭔가가 쑥 들어오더래요."
나는 수첩에 쓰던 걸 멈췄다.
'쑥 들어온다'
나는 안다. 그 느낌을. 열일곱 살의 여름 밤. 어둠 속 공중에 떠 있던 그 하얀 덩어리가 쑥 들어와 머리를 휘저었다. 그 감각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리고 그다음의 공포, 혼란.
"그리고 잠시 후 통곡이 나왔다는 거예요. 한참을 울다 보니까 자기가 우는 게 아니고 들어온 그놈이 울더래요."
나는 수첩에 적었다. 가슴이 떨렸다. 소년 시절의 일인데 왜 아직도 단단히 붙어 떨어지지 않는지.
"또 다른 일은요?"
"한 번은 집 안 거울을 보는 데 그 놈이 있더래요."
거울. 나는 지금도 밤에 거울을 볼 때 무섭다. 다른 게 나를 쳐다볼까 봐.
"그 놈이 자기 뒤에 서 있더래요. 기겁을 해서 형수한테 얘기했는데 형수는 거울을 보더니 아무것도 없다고 하면서 형이 몸이 허해서 그렇다고 했대요."
보통사람은 모른다. 그게 보이는 사람과 안 보이는 사람이 있다. 홍진욱은 봤고 부인은 못 봤다. 나는? 봤다. 지금도 더러 본다. 다만 보지 않으려고 애쓴다.
"형은 거리를 걸을 때도 그놈이 따라오는 걸 느꼈대요. 사무실에 있다가 창문 밖을 보면 그 놈이 길거리에서 올려다본대요. 무서워했어요."
"진짜 길에 '그놈'이 있던가요?"
"저는 아무것도 못 봤죠. 그냥 평범한 거리였죠."
사람들은 흔히 환각을 얘기했다. 그러나 내 경험은 다르다. 그들과 영적으로 주파수가 맞으면 보일 수 있다. 그게 귀신이든 아니면 신이든.
"형이 저를 보는 눈빛이 이상할 때가 있었어요. 진욱이 형 눈이 아닌 것 같았어요. 안에 누가 들어 있는 것 같다고 할까. 그럴 때 섬뜩했어요. 그래서 제가 형수한테 정신과에 가보자고 했죠. 그랬더니 버럭 화를 내더라구요. 남편이 최고의 영화감독이 될 텐데 정신병자를 만들려고 그러냐구 하면서요."
"그래서 어떻게 했습니까?"
"도저히 그냥 둬서는 안되겠더라구요. 제가 형을 잘 달래서 형수 몰래 정신과에 갔어요. 의사가 진찰을 하더니 정신분열증이라고 했어요. 입원하라고 했어요. 형수가 그걸 알고 말도 안 된다고 하면서 거부했어요. 저하고도 더 이상 연락을 하지 못하게 남편을 방에 가뒀어요. 그때 형이 척추협착증도 있고 아팠거든요."
부인의 야망이 남편을 궁지로 몰았던 면이 있는 것 같았다. 그가 덧붙였다.
"형이 제게 전화로 연락을 했어요. 잘 때 자기 몸에서 빠져 나와 천장에 떠서 자고 있는 자기를 본대요. 몸과 천장의 자기 사이에 뭔가 연결되어 있다고 했어요. 은빛 끈 같은 게요. 그걸 누군가 잡아당겨서 죽지 않고 있다고 했어요."
나는 수첩에 적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런 경험이 있었다.
"이만하면 충분합니다.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장영식이 일어났다.
"진욱이 형을 도와주세요.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니에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 이틀 후, 나는 양경식 목사를 만났다. 처음 나를 찾아왔던 사람이다. 교회 근처 작은 카페였다. 작고 아담한 창을 통해 오후 세 시의 비스듬한 햇살이 들어왔다. 잔잔한 음악이 공기 중에 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그가 구석 자리에 앉아 성경을 읽고 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그가 성경을 덮고 일어나 손을 내밀었다. 따뜻한 손이었다.
"오늘은 목사가 아니라 진욱이 친구로서 얘기하고 싶습니다."
그가 앉으며 말했다. 성직자 특유의 차분한 느낌이 들었다.
"진욱이와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친하게 지내 왔어요."
양경식이 잠시 틈을 두었다. 아련한 먼 기억을 떠올리는 표정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저는 진욱이 집을 오가면서 그 집에서 많이 잤습니다. 자상한 진욱이 어머니는 친구들이 그 집에 가면 '우리 자식들'이라고 하면서 사랑해 주셨죠. 겨울이면 따뜻한 군고구마를 주시고 그 집에서 자고 다음날 학교 갈 때면 도시락까지 싸 주셨어요."
그의 눈이 촉촉해졌다.
"온화해 보이시는 진욱이 아버지와 누나 여동생들. 그 집안은 유복하고 화기가 넘치는 집안이었습니다. 그때 진욱이가 참 행복해 보였어요."
"홍진욱 씨는 부인과 어떻게 만났습니까?"
"제가 미국 신학대학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진욱이가 부인이 될 정은희를 소개했어요. 그 자리에서 정은희는 진욱이를 자기의 우상인 오빠라고 했어요. 적극적으로 애정을 표현했어요. 진욱이는 은희 씨한테서 큰 위로를 받는 것 같아 보였죠."
양경식이 잠시 말을 끊고 뭔가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교회에서 치러진 두 사람의 결혼을 사람들이 진정으로 축복해 주었죠. 두 사람은 주위 사람들이 닭살 돋는다고 말할 만큼 사랑을 표현하면서 살았어요."
"언제부터 문제가 생겼습니까?"
"진욱이가 아파서 정상적인 사회 생활을 못 하고 집에 있게 되면서부터죠. 은희 씨가 신경질적으로 진욱이를 대하게 됐어요. 진욱이의 재능을 누구보다도 높이 평가하던 은희 씨가 언제부턴가 진욱이의 조언을 귀찮아하는 태도를 보였어요."
양경식이 심각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어느날 진욱이가 영적으로 어떤 눌림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영적 눌림이요?"
나는 수첩을 다시 펼쳤다. 이 부분이 중요할 것 같았다.
"한 번은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진욱이가 자신이 영적으로 어두운 실체들을 구체적으로 느끼고 있다고 했어요. 그 얼마 전 직장 동료 장례식에서 뭔가 섬뜩한 경험을 했다는 거예요. 그 뒤로 어두운 영에 눌리고 있다고 했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경험이었습니까?"
"이상한 소리가 들리고 귀신이 보인다는 거였어요. 그날 저는 진욱이를 위해 기도해 줬죠."
양경식의 표정이 무거워졌다.
"사건이 발생하기 한 달 전쯤 진욱이로부터 악령에 시달리니 도와달라는 연락이 왔어요. 상당히 예민해져 있었어요. 진욱이 말로는 악령이 자기 주변에서 강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거예요. 은희 씨도, 그리고 주변 사람들도 그 악령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했죠."
나는 수첩에 적다 말고 잠시 펜을 멈췄다. 악령이 배회하면 주위가 전염이 되는 것일까.
"본인 안에도요?"
"네. 진욱이 안에도 악령이 있는 걸 느낀다고 했어요. 때로는 그 악령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장악하고 조정한다는 거였어요."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내가 겪었기 때문이다.나는 펜을 멈추고 양경식을 보았다.
"목사님은 그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셨습니까?"
양경식이 잠시 생각하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변호사님, 목사로서 30년 가까이 살아오면서 저는 영적 세계가 실재한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정신의학도 존중합니다. 진욱이의 경우... 둘 다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둘 다요?"
"네. 정신분열증이라는 의학적 질병이 있고, 동시에 그 질병이 영적 취약성을 만들어 어두운 것들이 침투할 수 있는 틈을 준 것일 수도 있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둘 다일 수 있다. 17세의 나는 정신과 의사에게 갔다. 약을 먹었다. 영의 세계를 아는 의사는 약으로 치료할 증상이 아니라고 했다. 두려워 하지 말고 그 존재와 맞서라고 했다. 의학과 영은 함께 존재할 수 있다.
흥미로운 관점이었다. 의학과 영성을 배타적으로 보지 않고 함께 볼 수 있다는.
"부인인 정은희 씨의 생각은 어땠습니까?"
"은희 씨는 진욱이가 정신분열증상을 겪고 있다고 봤어요. 저는 대화 중에 은희 씨로부터 신경질과 걱정이 교차하는 걸 봤죠. 그날 진욱이를 위해 기도하고 돌아왔어요."
양경식이 앞에 놓여 있던 식은 커피잔을 들어 한모금 마셨다.
"다음날 아침 은희 씨로부터 전화가 왔어요. 진욱이가 악령이 들었는지 전혀 다른 사람 같은 말과 행동이 나타났다고 했어요. 그러면서 제가 매일 한 번이라도 전화를 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은희 씨의 부탁을 진욱이에게는 비밀로 해달라고 했죠."
"그 후로는요?"
"일주일 후 진욱이 집을 방문했어요. 은희 씨는 하루 전 진욱이와 심하게 다툰 사실을 알렸어요. 아무것도 없는데 자꾸만 뭔가 나타났다고 해서 싸웠다는 겁니다."
"부부 싸움을 봤습니까?"
"네. 진욱이와 은희의 대화를 옆에서 들었는데 은희씨가 공격적으로 쏘아 붙이는 반면 진욱이는 시종 부드러운 논리로 동생 챙기듯 은희에게 대했어요. 조금 후 두 사람은 냉정을 찾았고 서로를 챙기는 이야기와 서로 자신이 잘못했다고 이해를 구하며 화해를 했어요.“
양경식이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 후 저는 정신없이 몇 주 바쁘게 지내다 사건이 발생한 날 오후 늦게 전화를 받았습니다. 진욱이가 병원 응급실에 들어가 있고 은희 씨는 사망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목사님, 한 가지만 여쭤보겠습니다."
나는 수첩을 덮고 그를 똑바로 보았다.
"진욱 씨가 정말 악령에 사로잡혔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정신병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양경식이 한참 나를 보았다.
"변호사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양경식이 조용히 물었다. 나는 순간 까마득한 세월 저쪽의 검정교복을 입은 소년을 보고 있었다.
17세 여름 밤. 내 방에 들어왔던 그것. 나는 그 존재를 안다. 두려웠다. 그 존재가 나를 지배했다. 나는 달라졌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봤다. 집에서, 골목에서, 어두운 빈 방에서,
나는 깨달았다. 그들의 세계가 있고 나의 세계가 있는 걸 알았다. 마치 텔레비전 채널처럼. 주파수가 맞으면 보이고 틀리면 안 보인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두려워하면 진다. 두려움만 없다면 그들은 털끝 하나도 해치지 못한다. 나는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이겼다. 홍진욱은? 두려워했다. 그리고 졌다.
"정신병인지 악령인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그냥 변호사일 뿐입니다."
양경식이 조용히 말했다.
"한 가지는 확신합니다. 진욱이는 악을 도모해 본 일이 없이 꿈을 가지고 인생을 이해하며 살아왔다는 것. 그리고 진욱이는 정신적인 문제를 겪으면서도 자신의 그런 상태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자신 안에 존재하던 것과 치열하게 싸우던 친구였다는 것입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사건은 한 영혼이 무너져 내리는 과정이다. 법정에서 나는 무엇을 주장해야 할까. 정신 분열증으로 인한 심신미약? 악령에 의한 범행? 그건 법정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재판장이 코웃음칠 것이다. 검사가 비웃을 것이다.
나는 카페를 나섰다. 서서히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거리는 퇴근을 한 사람들로 붐볐다. 평범한 사람들. 저들은 알까. 바로 옆에 다른 세계와 존재들이 있는 것을.
나는 지하철역으로 걸어가면서 생각에 잠겼다. 법정은 과학적 증거와 논리를 원한다. 합리적 설명을 원한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정신 분열증? 심신미약?
그런데.
17세 이후 내가 정신분열증이었던가? 심신미약이었던가.
나는 멀쩡했다. 결혼했다. 아이를 낳았다. 변호사가 되었다.
나는 안다. 그들이 있다는 것을.
그러나 법정에서 그걸 말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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