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관찰인생] 박수무당과 영화감독의 차이가 뭘까
파일을 꽂고 재생 버튼을 눌렀다
[최보식의언론=엄상익 논설위원]
서재 벽의 전자시계 녹색 불빛이 밤 11시를 가리키고 있다.
"내 속에 악마가 들어 있어."
홍진욱이 친구에게 했다는 말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나는 머리를 강하게 가로저었다. 그만하자. 나는 변호사다. 영적인 세계가 아니라 현실에 발을 디디고 있다. 논리와 객관적인 증거로 말해야 한다. 환상이 아니라, 팩트를 봐야 했다.
30년간 변호사로 살아오면서 온갖 사이코패스, 연기하는 범죄자들을 봐왔지 않은가. 홍진욱도 그중 하나일 수 있다.
법원에서 복사해 온 수사 기록을 담은 상자를 뒤졌다. 녹음파일이 보였다. 형사가 병원에서 홍진욱을 최초로 봤을 때 한 대화 내용이었다.
파일을 꽂고 재생 버튼을 눌렀다. 잡음 섞인 소리가 흘러 나오고 있었다. 여성같이 약간 높은 톤이다. 홍진욱의 목소리다.
"당신 경찰이 맞아요? 그 남자하고 같은 조직원이죠? 형사라고 하는 거 거짓말이죠? 솔직히 말해주세요? 그러면 나도 말할게요."
극도로 긴장된 경계의 목소리다.
"어떻게 주변이 모두 적뿐이야? 동네 슈퍼 아저씨까지. 나도 이제 전략을 세웠단 말이야."
이게 무슨 소리지? 마치 루쉰의 '광인일기'에 나오는 미친 사람의 독백 같다. 미쳤나?
"어떤 조직이 홍진욱 씨를 공격하려고 하나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요?"
침착하게 받아주는 형사의 목소리다.
"그게 중요하세요? 다 아시면서."
"예? 그게 무슨 말이죠?"
목소리에서 형사의 혼란스러움이 느껴진다.
"저 담배 한 대 폈으면 좋겠어요."
말이 엉뚱하게 튄다.
"담배는 조금 있다 피우시고 먼저 말씀을."
형사가 업무 쪽으로 그를 끈다.
"담배 한 대 피우면 제가 다 말씀 드릴게요."
"조금 있다 드릴게요."
"아니에요 담배 안 주면 얘기 안 할래요. 진짜로 너무 오랫동안 담배를 못 피웠어요. 담배 없이는 얘기 안 해요."
"얘기를 다하면 담배 드릴게요."
"안 돼요."
"여기 병원이라 담배 못 피운다니까요."
이때 옆에 있던 누군가 끼어들었다.
"형 이따가 피면 되잖아?"
"필요 없어. 이건 나와 조직과의 싸움이야."
"여기 병원에서는 담배를 드릴 수가 없어요. 본인뿐 아니라 다른 환자들 때문에 안 됩니다."
형사의 목소리다.
"그럼 형사님이 다른 환자들한테 물어보고 주세요."
"다른 환자들 때문에 안 된다니까요."
형사의 짜증 섞인 목소리다.
"다른 환자들 상관없어요. 저는 저예요. 저한테 맞추시든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한테 물어보세요. 저는 담배를 안 주면 얘기 안 해요."
"빨리 얘기하고 담배 피우는 게 낫잖아요?"
"아니요, 제가 어린애인 줄 아세요?"
"의사가 담배 피우시면 안 된다고 그래요."
"그러면 의사랑 얘기하세요."
정상을 한참 벗어난 대화였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부인을 왜 죽였어요?"
형사가 자기 길을 가기로 한 것 같다. 본인이 어떤 대답을 하든 정해진 매뉴얼대로 가야 한다. 그리고 수사보고서를 써야 한다.
"얘기 안 해. 조직에서 내가 살인범인 걸로 만들기로 했잖아? 당신은 조직에서 형사로 위장해서 보낸 사람이잖아? 누굴 바보로 아는 거야? 내 말을 들으려면 조건이 있어."
"조건이 뭔데요?"
형사가 다시 말려 든다.
"담배."
잠시 말이 끊겼다.
"어제부터 오늘 새벽까지의 상황을 기억나는 대로 얘기해 봐요."
형사가 다시 자기 페이스를 찾았다. 잠시 후 말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일 년 전부터 일방적으로 와이프를 괴롭혔어요. 제가 바람을 피워 놓고는 반대로 와이프가 바람을 피웠다고 덮어씌우고 괴롭혔죠. 아내가 이럴 바에야 같이 죽자고 했어요. 새벽 3시경이었어요. 처는 자고 있었고 저는 옆에 앉아 발렌타인을 병째 들고 마셨어요."
순간 사실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갑자기 외로움이 느껴졌죠. 옆에 아내가 누워 있어도 남 같았어요. 아픈 저나 바쁜 아내나 죽으면 편안해 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먼저 아내를 저 세상으로 보내고 내가 따라 가자고 마음먹었어요. 아내가 깊이 잠들어 있었죠. 저는 아내의 얼굴에 키스를 하고 양손으로 아내의 목을 졸랐어요. 아내가 몸을 약간 움직이는 것 같았어요. 그리고는 모르겠습니다. 그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졌습니다. 아내의 몸에 아무런 반응이 없었어요. 얼굴을 보니 코에 피가 묻어 있었어요. 싱크대로 가서 거기 있는 종이 티슈를 가져다가 코피를 닦아주고 손가락을 아내의 코에 대 봤어요. 숨을 쉬지 않더라구요. 죽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가 구치소에서 했던 말과 일부 일치했다.
"이제 제가 갈 차례가 됐죠. 끈으로 올가미를 만들어 방문 손잡이에 그 끈을 묶고 앞으로 체중을 실어 넘어졌어요. 나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손을 뻗어 바닥을 짚었어요. 올가미를 다시 침대 머리 쪽에 묶고 체중을 아래로 내리는 시도를 했어요. 죽어지지가 않았어요.
그래서 제 방에 가서 문구용 칼을 가져다가 왼 손목을 그었어요. 피가 뿜어져 나오더라구요. 그대로 아내 곁에 누웠어요. 잠시 후에 보니까 손의 피가 멈췄어요. 좀 쉬었다가 다시 시도하려고 했어요. 갑자기 기절할 듯이 잠이 쏟아졌어요. 깨어보니 병원에 있었습니다."
그가 손을 다쳐 병원에 갔던 건 사실이었다.
"이런 스토리면 마음에 맞으실지 모르겠어요."
나는 재생을 멈췄다. 잘 나가다가 이게 뭐지? 머릿속의 실타래가 엉키는 것 같았다. 아니다. 이건 그냥 범죄자의 전형적인 패턴일 수 있다. 미친 척 하기. 스토리 만들기. 내가 30년간 수없이 본 것들이다. 그래도 이상한 점이 있었다.
형사에게 스토리를 점검 받고 있다. 그건 뭘까.
나는 다시 재생 버튼을 눌렀다.
"담배 안 주면 얘기 안 해요."
홍진욱의 목소리다. 집착이었다. 강박이었다. 전형적인 정신분열 증상? 아니면 연기?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진정하자. 이건 분석이다. 수사 기록 검토다. 감정이입을 하면 안 된다. 다시 재생 버튼을 눌렀다.
"침대에 묶여 있던 그 끈으로 부인의 목을 조른 건 아닌가요?"
형사의 목소리다.
"아 그렇구나 그 쪽이 더 스토리 전개가 낫겠네. 내 작업실에 있던 흰색 노끈을 가져다가 아내의 목을 감아 졸랐습니다."
"반항하지 않던가요?"
"목을 조르기 전에 이불로 먼저 아내의 어깨까지 덮고 베개로 얼굴을 덮고 그 위로 올라가서 반항을 못 하게 했다면 어떨까요? 더 그럴 듯한 것 같아요."
목소리 톤이 바뀌었다. 간교한 다른 목소리가 그의 입을 통해 겹쳐 나왔다. 분명 두 사람의 목소리다.
"살해 동기는 뭐죠?"
형사가 해야 할 질문이다.
"너무 사랑하는데 아내가 섹스를 거부하고 바람을 피워서 그렇게 했다면 어떨까요? 그렇게 쓰세요."
"혹시 부인이 자살한 건 아니예요?"
"자살할 사람이 아니예요. 얼마나 겁이 많은데"
"죽을 때 반항하거나 그러지 않았어요?"
"영화에서는 그런데 실제는 그렇지 않던데."
녹음을 다 들었다. 결론은? 홍진욱은 정신분열증 환자다. 아니면 천재적인 연기다. 어느 쪽이든, 이건 법과 정신의학의 문제다. 영적인 문제가 아니다. 절대 아니다.
녹음기를 껐다. 머릿속에서 파도가 출렁였다. 그 물결을 타고 바닥에 깊이 잠겨 있던 기억의 조각 하나가 떠올랐다.
박수무당 살인범.
비닐하우스에서 농사를 짓는 평범한 남자였다. 이웃 할머니에게 채소를 가져다 주는 마음이 넉넉한 사람이었다. 그는 비닐하우스 구석에 신당을 차려놓고 새벽이면 목탁을 치면서 염불을 했다.
그가 도끼로 사람을 찍어 죽였다. 대담하고 잔인했다. 수사를 받을 때 그는 지능적이고 교활했다. 가상의 살인범을 만들어 그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했다. 자기가 죽인 여자의 주위에 그 남자가 배회하는 걸 봤다고 했다.
홍진욱의 얘기 패턴도 비슷했다. 수사 기록에 홍진욱의 직업은 '영화감독'이라고 되어 있었다. 박수무당과 영화감독의 차이가 뭘까.
나는 변호사다. 이성적인 지식인이다. 열일곱 살 때도 그 존재에게 빠져들지 않았다. 그냥 봤을 뿐이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걸 보는 경계인으로 살 수 있었다.
그런데 홍진욱의 속에 있었다는 악마의 이미지가 잔상으로 남아 있다. 그게 왜 지워지지 않는 것일까. 내가 열일곱 살 때 본 존재와 같은 것들일까.
벽에 걸린 전자시계의 녹색 불빛이 깜빡이고 있었다.
#겹쳐진목소리 #착한살인범4 #엄상익에세이 #엄상익변호사 #엄상익못다한이야기 #아내살인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