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월사령관 채명신에게 한국 보수정치가 배워야 할 것?
백 명의 선동가를 놓치더라도, 한 명의 국민을 적으로 만들지 마라
[최보식의언론=김요셉 기독교한국 대표(평택사랑의교회 담임목사) ]
채명신은 군사 지휘관으로서 탁월했다. 이순신 이후 최고의 명장이라는 평가도 있다. 정규전과 비정규전, 게릴라전과 안정화 작전의 본질을 꿰뚫어 보았고, 베트남전이라는 복잡하고 불리한 전장에서 독자 작전권을 관철하며 한국군의 명예와 실리를 동시에 지켜냈다.
그러나 그의 인생이 오래 기억에 남는 이유는, 그 뛰어남이 언제나 사람을 향해 있었다는 점 때문이다. 그는 병사를 소모품으로 보지 않았고, 지휘권을 권력으로 착각하지 않았다. 부하를 가족처럼 대해야 전투력이 나온다는 '골육지정'의 리더십은, 구호가 아니라 그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태도였다.
더 인상적인 것은, 그가 권력의 문턱 앞에서 언제나 한 발 물러섰다는 사실이다. 그는 5·16의 주역으로 참여했지만, 그 정치적 과실을 탐하지 않았다. 군사정변의 성공 이후 자연스럽게 정치의 중심으로 이동할 수 있었음에도, 그는 스스로를 군인의 자리로 되돌려 놓았다. 군이 정치를 대신하는 순간, 군도 정치도 함께 망가진다는 것을 그는 누구보다 분명히 알고 있었던 듯하다.
이후 유신 체제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대장 진급이 좌절되고, 사실상 군 인생이 조기 종결되는 과정에서도 그는 침묵과 자제를 택했다. 타협을 통해 자리를 얻는 대신, 군인의 명예를 지키는 쪽을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선택은 그 인생의 성격을 가장 또렷하게 드러내 주었다. 그는 현충원 장군 묘역에 안장되는 것을 거부했다. 대신, 자신과 함께 싸웠던 파월 장병들이 묻힌 사병 묘역에 자신을 눕혀 달라고 유언했다. 이것은 겸손의 제스처가 아니라, 그의 군인정신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보여 주는 상징적 선언이었다.
베트남전 당시 일시 귀국했을 때마다 그는 전사한 부하들의 묘역에 가서 눈물로 통곡하곤 했다. 중장 진급 신고를 위해 청와대에 가기전 현충원에 먼저 가서 지휘관 휘장이 다 젖도록 대성통곡하면서 그는 나중에 자신도 반드시 사병묘역에 묻히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그는 끝까지 위에 서 있는 지휘관이 아니라, 함께 있었던 사람으로 남기를 선택했다.
이처럼 채명신의 삶은, 군사적 탁월함과 인간적 품격, 정의에 대한 감각과 권력에 대한 절제가 한 인물 안에서 드물게 결합된 사례다. 그래서 그는 단지 한 명의 유능한 장군이 아니라, 시간이 흐를수록 다시 불러내어 생각하게 되는 하나의 기준점이 되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그의 군사 사상과 지휘 철학은 과거의 전쟁사가 아니라, 오늘의 정치와 사회를 성찰하는 데까지 확장될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
채명신의 군사 사상은 단편적인 전술 묶음이 아니라, 전쟁을 정치·심리·사회적 총체로 이해한 결과였다. 그는 베트남전을 단순한 전투의 연속으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이 전쟁을 “명분이 약한 미국의 전쟁”으로 규정하면서도, 대한민국의 안보 환경상 파병을 거부할 수 없다는 냉혹한 현실을 동시에 인식했다.
여기서 그의 사고는 감정적 반미나 맹목적 한미동맹론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미국 전략의 구조적 한계를 보았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한국군은 미군의 하위 전력이 아니라 독자적 목적과 방식으로 전쟁에 임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 인식의 실천적 결과가 독자 작전권 확보였다. 채명신에게 작전권은 단순한 지휘 편의의 문제가 아니었다. 작전권은 전쟁의 성격을 통제할 수 있는 정치적·도덕적 권한이었다. 독자적인 작전권을 상실한 군대는 전과를 내더라도 책임을 질 수 없고, 책임을 질 수 없는 군대는 결국 군기와 명예를 함께 잃는다는 것이 그의 주권적 군사관이었다. 그는 전과와 영어 브리핑, 그리고 현장의 결과로 미군을 설득했고, 한국군이 독자적으로 지역을 통제하고 작전을 설계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냈다.
이 독자적 지휘 철학 위에서 정립된 것이, 그의 양민 보호·안정화 중심의 대게릴라전 사상이었다. 채명신은 초급장교 시절부터 모택동의 저작을 꾸준히 읽으며 공산주의 게릴라전의 원리를 연구했다. 중요한 점은, 그가 공산주의 이론을 사상으로 수용한 것이 아니라, 적의 교범으로서 해부했다는 데 있다. 모택동의 “인민은 물이고 게릴라는 고기”라는 명제는, 채명신에게 공산 혁명의 작동 원리를 설명하는 구조적 공식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 공식을 그대로 답습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핵심을 역전시켰다. 게릴라를 제거하기 위해 물을 말리는 것이 아니라, 물을 지켜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공산게릴라의 지배하에 있는 양민들까지 적으로 돌리면, 게릴라는 아무리 죽여도 끝없이 재생산된다.
그래서 그는 베트남전의 본질을 “베트콩과 양민의 분리”로 규정했다. “백 명의 베트콩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양민을 보호하라”는 그의 원칙은 감상적 인도주의가 아니라, 장기 지구전에서 전투 효율과 정당성을 동시에 확보하기 위한 계산된 전략이었다.
이 원칙은 전술로 구체화되었다. 그는 미군식의 수색·섬멸 위주 작전 대신, 중대전술기지 개념을 도입했다. 중대 단위의 전술기지를 적과 양민들이 혼재되어 있는 지역에 분산 배치해 주민과 밀착하고, 단기간의 타격보다 장기간의 고착 통제를 통해 베트콩의 활동 기반을 약화시키는 방식이었다. 이는 베트콩의 Hit & Run에 대응하는 Hit & Stay 전략이었다. 적을 추격해 잠시 때리고 떠나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남아 주민들을 보호하며 함께 버티는 전쟁이었다.
그의 지휘철학의 밑바탕에는 병사 중심 리더십이 놓여 있었다. 채명신은 지휘관이 전장 후방에서 명령을 내리는 존재가 아니라, 항상 최전방에서 상황을 확인하고 병사들 곁에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는 전쟁을 “착오의 연속”으로 보았고, 그 착오를 최소화하기 위해 지휘관이 끊임없이 준비하고 분석하고 학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우의 시신과 부상자를 끝까지 수습하라는 지시는, 병사의 생명을 군 기강의 근간으로 삼았던 그의 윤리관을 상징한다.
이 모든 그의 군사 사상은 갑작스럽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제주 4·3과 태백산 공비 토벌에서의 초기 전투 경험은, 그에게 비정규전의 실체를 체득하게 했다. 주민과 무장 세력이 뒤섞인 상황에서 무차별 진압이 오히려 주민들의 반발을 키우고 그것이 공산주의 조직의 성장 토양이 된다는 사실을 그는 현장에서 배웠다.
특히 제주 4·3 당시 상관이었던 박진경의 주민 선무·보호·분리 기조는, 채명신에게 결정적 영향을 주었다. 박진경을 중산간 초토화 작전의 입안자로 단정하는 서술은 시기적으로도, 지휘 구조상으로도 부정확하다. 초토화 작전은 그의 사후 다른 지휘 체계에서 본격화되었고, 이 구분을 하지 못하는 것은 게릴라전 이해 부족에서 비롯된 역사 해석의 오류다.
이제 이 모든 것을 현대 한국 정치, 특히 보수 정치에 비추어 보자. 그러면 놀라운 평행선이 드러나게 되는 것을 알 수있다. 오늘날 보수 정치가 반복적으로 실패하는 이유는, 채명신이 가장 경계했던 바로 그 전략적 오류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 한국 보수 정치의 언어는 지나치게 쉽게 광범위한 국민을 적으로 규정한다. 자기 편이 아닌 국민, 중도층, 생활형 유권자들까지 “좌경화됐다”, “좌익이다”, 심지어 “종북이다”라는 말까지 사용하여 묶어 버린다. 이는 정치적 상대방의 핵심 인자와 일반 대중을 전혀 분리하지 못하는 사고 방식이다. 군사적으로 말하면, 이는 주민 전체를 잠재적 적으로 간주하는 초토화 작전 입안지의 사고와 다르지 않다.
채명신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전략적 자살'이다. 공산주의든 전체주의든, 그 힘은 소수의 조직 핵심이 아니라 그 조직과 느슨하게 연결된 중립 대중의 심리적 결합에서 나온다. 이 대중을 보호하고 분리하지 못하면 국가는 스스로 적을 키우는 것이다. 정치에서도 마찬가지다. 보수 정치가 광범위한 대중을 적으로 몰아붙일수록, 실제로 조직화된 반헌법 세력은 오히려 숨을 공간을 얻게 되는 것이다.
채명신의 원칙은 오늘날 이렇게 번역되어야 한다.
"백 명의 선동가를 놓치더라도, 한 명의 국민을 적으로 만들지 마라."
대한민국 건국 초기에도, 그리고 그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채명신과 같은 전략적 사고를 지닌 인물은 찾아보기 힘들다. 공산주의를 이념적으로 증오했을뿐, 공산 혁명이 어떻게 대중 심리와 조직, 선전과 공포를 통해 확장되는지는 이해하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 무지는 군사적 비극을 낳았고, 오늘날에는 보수의 정치적 패배로 반복되고 있다.
결국 문제는 애국심의 크기가 아니다. 문제는 적과 국민을 구분할 줄 아는 지성의 유무다. 채명신이 보여준 것은 강경함이 아니라 정교함이었고, 증오가 아니라 구조적 이해였다.
오늘날 한국 보수 정치가 진정으로 배워야 할 것은, 더 큰 목소리와 적에 대한 분노의 표출이 아니라 누구를 지켜야 이길 수 있는지를 아는 전략적 사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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