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보다 재밌다?... 국정보고 생중계가 보여준 ‘현실판 누아르’

북한 방송을 보면 ‘수령님’은 못 하는 게 없다

2025-12-18     최보식

[최보식의언론=박주현 재담엔터테인먼트 대표]

뉴스TVCHOSUN 캡처

이재명 대통령이 생중계 업무보고를 두고 “넷플릭스보다 재밌다”고 했다. 빈말이 아닐 것이다.

넷플릭스 순위권을 장악하는 콘텐츠들을 보라. 마약상, 조폭, 독재자, 혹은 법 위에 군림하는 빌런들이 주인공인 ‘피카레스크(악인이 주인공인 장르)’물이 즐비하다.

대통령이 국정보고에서 보여주는 모습이 딱 그 장르다. 주인공인 본인 눈에는 얼마나 흥미진진하겠나.

화면 속 미장센은 영락없는 누아르 영화다. 상석에 앉은 ‘보스’가 인상을 쓰며 호통을 친다. “행정은 상명하복”이라며 군기를 잡고, 마음에 안 드는 부하는 전 국민이 보는 앞에서 “도둑놈”이라고 모욕을 준다.

엘리트 관료들은 ‘조직원’처럼 고개를 숙인 채 받아적기 바쁘다. 반론도, 토론도 없다. 오직 보스의 지시와 복종만 있는 살벌한 조직도. 넷플릭스에서 수없이 봐왔던, 건달들이나 독재자가 지배하는 세상의 클리셰가 현실에서 라이브로 송출된다.

그런데 이 장면, 영화보다 더 닮은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하나 있다. 바로 북한 뉴스에서 보던 김정은의 ‘현지지도(現地指導)’다.

북한 방송을 보면 ‘수령님’은 못 하는 게 없다. 양식장에 가서는 물고기 사료 배합을 훈수 두고, 기계 공장에 가서는 부품 배치를 지적한다. 평생 그 분야만 연구한 박사들이 수첩을 꺼내 그 말을 필사적으로 받아적는다. 2025년 서울의 국무회의장 풍경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전문가는 없다. 오직 힘 센 형님이 만물박사처럼 해결책을 하달한다.

“환단고기 연구해라”, “탈모약 건보 적용해라”...비전문적인 지시가 떨어져도 토를 다는 순간 ‘배신자’로 찍혀 숙청 당할 분위기다. (영국 BBC는 이 대통령의 탈모약 건보 적용 발언을 "젊은 남성 유권자들을 겨냥한 매우 전략적인 제스처일 뿐이라며 '나도 당신을 걱정하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대통령의 즉흥적인 말 한마디에 대한민국의 수십 년 된 정책과 인사 시스템이 춤을 춘다. 영화 속 독재자가 지도를 펴놓고 엉뚱한 작전 명령을 내려도 장군들이 벌벌 떨며 따르는 블랙코미디와 판박이다.

체제가 갈라진 지 70년이 넘었는데도, 권력자가 폼 잡는 방식이 이토록 흡사한 걸 보면 헛웃음이 나온다. 우리는 어쩔 수 없는 ‘같은 민족’인가 보다. 권력을 쥐면 눈과 귀를 닫고 만기친람(萬機親覽)해야 직성이 풀리는 그 유전자가 남과 북에 똑같이 흐르는 모양이다.

이러니 대통령 입장에선 '재미'가 없을 수가 없다. 영화는 각본이라도 있지만, 이건 각본 없는 리얼리티다. 절대권력을 쥐고 흔드는 쾌감, 내 말 한마디에 국가 시스템이 일사불란하게(혹은 엉망진창으로) 움직이는 걸 보는 도파민은 넷플릭스가 주는 자극을 넘어설 것이다. 자신이 작가이자 감독이고 주연 배우인 이 거대한 세트장에서, 그는 완벽하게 ‘절대자’ 배역에 심취해 있다.

문제는 장르의 착각이다. 대통령은 본인이 ‘해결사’ 역할을 맡은 히어로물을 찍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지켜보는 국민은 재난 영화를 보고 있다. 전문성 없는 권력자가 독단적으로 핸들을 꺾을 때 버스가 어디로 굴러떨어지는지, 우리는 역사를 통해 스포일러를 이미 알고 있다.

“대통령은 경청하는 자리”라는 식의 고리타분한 훈계는 하지 않겠다. 어차피 듣지 않을 테니까.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넷플릭스 속 건달이나 독재자의 말로는 대부분 좋지 않다. 그게 장르의 법칙이다.

시청자는 넷플릭스가 재미없으면 구독을 끊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대통령이 주연인 이 위험한 ‘현실판 누아르’는 국민이 강제로 시청해야 하고, 심지어 막대한 제작비까지 대야 한다. 팝콘을 먹으며 즐기기엔, 리스크가 너무 큰 리얼 버라이어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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