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관찰인생] ‘보이지 않는 공범’… 그는 정말 살인자인가
은희가 어떤 남자하고 일본으로 여행을 가서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고 했어요
[최보식의언론=엄상익 논설위원]
높은 회색 콘크리트 벽과 거대한 철문을 통과했다. 넓은 광장에 납작 엎드려 있는 상자 같은 사동들이 나타났다. 그중 한 사동이 구치소의 변호사 접견실이다.
건물 앞에 섰다. 자동제어장치가 설치된 철창이 금속성의 소리를 내며 열렸다. 안으로 들어섰다. 바로 옆에 동굴 같은 지하통로가 입을 벌리고 있다. 어둠 속에서 죄수들이 귀신같이 하나둘 올라오고 있다. 그들을 볼 때마다 지하의 저승에서 올라오는 성경 속의 사무엘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사람들의 발길로 닳아진 계단을 걸어 올라갔다. 층계참의 벽에 죄수들이 그린 그림이 붙어 있다. 심연에서 허우적거리는 듯한 답답함이 그림에 묻어 있다. 2층의 변호사 접견실로 들어갔다.
늙은 교도관이 내가 내민 신청서에서 그의 이름을 보더니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이상한 사람입니다."
"어떻게요?"
"글쎄요, 하여튼 조심하세요. 뭔가 씌여서 살인을 했다니까요. 살인범 중에 그런 경우가 종종 있어요."
유리상자 같은 접견실은 좁고 삭막했다. 회색 테이블 하나, 플라스틱 의자 두 개. 형광등 불빛이 파랗게 내려앉아 있었다. 고여 있는 공기에서 정체불명의 냄새가 났다.
그가 들어왔다. 수갑을 차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내 목을 조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일까. 가냘픈 몸에 허리가 굽었다. 병색이 완연한 얼굴. 여자처럼 가는 손가락. 의외였다. 이 사람이 정말 사람을 죽였을까? 쥐 한마리도 잡지 못할 것 같았다.
그의 눈동자를 보는 순간 움찔했다. 유리알 같이 투명한 수정체 뒤에 흙탕물이 소용돌이 치는 느낌이었다. 그 뒤에서 어떤 존재가 나를 응시하는 것 같았다. 명함을 내밀며 말했다.
"엄상익 변호사입니다. 친구인 양경식 목사님께서 부탁하셔서 왔습니다."
그는 명함을 보지 않았다. 나를 빤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관찰하는 눈길로. 한참을.
"조직의 부탁을 받고 왔죠?"
형사의 눈빛같이 예리했다.
"예?"
내가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제가 경찰이라고 가장해서 먼저 온 분에게는 입맛에 맞게 진술해 드렸는데, 그만하면 되지 않았어요? 왜 또 왔어요? 다들 연결되어 있잖아요?"
그가 갑자기 주위를 보며 두리번거렸다. 겁먹은 얼굴이었다.
"뭘 하세요?"
우리 둘뿐이었다.
"그 남자요. 어디든 있거든요"
뭔가 보이는 모양이다.
"부인을 죽였습니까?"
나의 페이스를 찾기로 했다. .
"말도 안 돼. 내가 은희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보는 것만 해도 아까운 사람인데."
그의 눈빛이 달라졌다. 방금까지의 날카로움이 사라지고, 어린아이처럼 순진한 눈망울이 나타났다.
"제가 죽이지 않은 건 확실해요. 그렇지만 은희가 죽어 있는 걸 발견한 건 사실이죠."
"그날 상황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나는 메모하던 수첩을 내려놓고 두 손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의 말을 진지하게 듣겠다는 신호였다.
"우리 부부는요, 보통 때는 제가 먼저 일어나서 커피를 타고 토스트를 구웠어요."
목소리가 부드러워졌다. 추억을 더듬는 눈빛이었다.
"더러는 깨울 때 은희가 칭얼거리면서 더 잔다고 했어요. 그런 사이였죠, 저희는."
그가 잠시 말을 멈추고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죄인들의 발길에 닳은 차디찬 콘크리트.
"그날 아침에 제가 일어나 보니까 시계가 아홉 시를 가리키고 있었어요. 은희를 평소같이 살짝 건드렸어요. 그런데 느낌이 이상한 거예요. 얼굴을 보니까 색이 거무스름했어요. 코 밑에 피가 약간 굳어 있었고요."
시신의 환영이 눈 앞에 나타났다.
"손가락을 코에 대 봤어요. 숨이 안 나왔어요."
그의 눈에 물기가 맺혔다.
"무서웠어요."
침묵이 흘렀다.
그때였다.
그의 얼굴이 변했다. 입꼬리가 올라갔다. 웃고 있었다. 눈도 웃고 있었다. 각시탈이 나를 보고 있었다.
"이 지점에서 왜 신고를 바로 안 했느냐고 물어보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나는 순간 숨이 멎었다. 마치 그가 대본을 들고 있고, 나더러 거기에 맞춰 연기하라고 지시하는 것 같았다.
"...그렇군요. 왜 신고를 바로 하지 않았죠?"
나는 추임새를 넣었다.
"할 수 없었어요."
그의 목소리가 한 옥타브 낮아졌다.
"왜요?"
"그게... 제가 아니었거든요. 작년부터 이상한 현상이 내게 나타났어요."
그가 나를 똑바로 봤다. 관찰의 눈길이었다.
"그게 어떤 건데요?"
"한 남자가 나타났어요. 혼자 있을 때 더러 나타나곤 했죠. 문이 잠겨 있는데도 내 방으로 안개같이 스며 들어오곤 했어요. 내게 비밀을 알려주더라구요. 은희가 어떤 남자하고 일본으로 여행을 가서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고 했어요. 마약도 한대요. 그 남자가 수시로 내게 나타났어요"
그 남자가 누구일까. 악령일까.
"그날 새벽이었어요. 아내 옆에서 자고 있었죠. 창문 쪽에 뭔가 그림자가 움직였어요."
그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수갑이 테이블에 부딪혀 작은 소리를 냈다.
"창문을 봤어요. 형체가... 없었어요. 그런데 있었어요. 검은 안개 같은데, 안개는 아니었어요. 어둠 같은데, 어둠보다 진한 덩어리였어요. 그 남자 였어요."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어느 틈엔가 그 남자가 들어와 있었어요. 자고 있는 은희 옆에 서서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는 거예요. 그가 자는 은희 목 쪽으로 살며시 양 손을 가져갔어요. 목을 잡고 서서히 졸랐어요."
그의 얼굴에 땀이 맺혔다.
"은희가 잠시 꿈틀했어요. 그리고는 조용해졌죠. 저는 너무 무서워서 움직일 수가 없었어요. 몸이 빳빳하게 굳어버렸어요. 나는 옆에 그냥 있었어요."
나는 얼어붙었다.
"제 손이 저절로 움직였어요. 은희 목으로 갔어요. 제가 아닌데, 제 손이었어요. 조였어요. 제가 조른 건지, 그 남자가 조른 건지 모르겠어요. 제 손이었는데, 제가 아니었어요."
그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정신을 차려보니까 새벽이었어요. 제 손에는 그 느낌이 남아 있었어요. 제 손에."
나는 그의 손을 봤다. 가늘고 떨리는 손. 수갑에 채워진 손. 그 손이 사람을 죽였다. 아니, 어떤 존재가 그 손을 통해 그의 아내를 죽였다. 그게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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