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캐리커처와 함께 ‘I’m HUUUUGE(나는 엄청 크다)’란 글자?
[박정원 실버벨] 현대는 사실상 '다부다처(多夫多妻)사회
[최보식의언론=박정원 객원논설위원(더시그넘하우스 연구소장)]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정치적 상처를 크게 입을 수 있는 사진 몇 장이 며칠 전 미국 민주당에 의해 공개됐다.
미성년 성 착취 혐의로 유죄 선고를 받고 감옥에 복역하다가 고인이 된 억만장자 제프리 앱스타인과 함께 있는 사진이다.
트럼프 캐리커처와 함께 ‘I’m HUUUUGE(나는 엄청 크다)’란 글자가 새겨진 콘돔도 등장한다. 9만 5,000여 장의 사진 중에 불과 19장만 공개했다고 한다. 빌 클린턴과 빌 게이츠, 우디 앨런 등 내로라하는 유명 유력 인사들도 제법 등장한다.
단순한 흥밋거리를 넘어 이 사진들을 보면서 또 ‘권력자와 젊은 여성인가’와 함께 이런 현상이 왜 반복해서 발생할까에 대한 궁금증이 들었다. 그러면서 개인의 도덕적 일탈을 넘어 현대사회의 구조적인 문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여기서 더 나아가 현대사회는 법적으로는 '일부일처'이지만 사실상 합법인 결혼과 이혼, 그리고 재혼을 반복하면서, 법 외적으로는 은밀한 성 거래가 이뤄지는 다부다처인 세상 아닌가 하는 생각에까지 도달했다.
사실상 다부다처인 세상 아닌가에 대해서 혹시 그런 연구나 이론이 있는가 하고 살펴봤다. 그런데 실제로 현대사회에 '다부다처'적 성격을 띤 현실 사회에 대한 연구가 있었다.
다 아는 얘기지만 다시 한번 되새겨보자면, 전통 인류학에서 일부다처(polygyny)는 한 남자가 ‘동시에’ 여러 아내를 두는 결혼제도를 말한다. 예를 들면, 전통 이슬람의 엘리트들과 아프리카 농경‧목축 사회의 상층부는 현재까지도 이러한 전통을 유지한다. 미디어를 통해 이 모습을 가끔 접할 수 있다.
다음으로 일처다부(polyandry). 한 여성이 ‘동시에’ 여러 남편을 두는 결혼제도이다. 티벳과 네팔 고지대에서 형제들이 공동으로 한 아내를 공유하는 형태가 가장 뚜렷한 사례에 속한다. 이들은 험난한 산간지대를 경작해서 살아야만 해서, 경작지가 매우 협소하고, 더욱이 그 토지를 나눠야만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현실적 조건을 반영한 생존 방식이다.
형제가 각자 결혼하면 산간 지역의 좁은 땅이 쪼개져서 생계가 불가능해진다. 그래서 형제들이 아내 한 명을 공유해 가족 농장을 하나로 유지하고, 노동력을 집중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생존 전략이기 때문에 이러한 결혼 방식을 선택했다고 인류학자들은 해석한다. 남자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토지를 지키기 위한 환경적 조건, 즉 경제‧인구 전략으로 일처다부를 유지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부다처(group marriage). 남녀 여러 명이 서로를 모두 배우자로 공유하는 형태이다. 인류학자들은 실제로는 거의 없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의 핵심은 ‘동시성(concurrent)’이라는 조건이다. 한 시점에 법이나 관습상 정식 배우자가 여러 명이냐, 아니냐가 초점이 된다.
하지만 동시성을 무시하고(not concurrent group marriage) 현대사회도 ‘연속 일부일처(serial monogamy)’로 보자면 다부다처와 거의 비슷한 효과를 낸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연속 일부일처’는 한 번에 한 사람과만 결혼(혹은 사실혼) 관계를 맺지만 인생 전체로 보면 여러 번 이혼‧재혼‧동거를 반복하면서 다처, 혹은 다부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여러 배우자를 두는 '다부다처'가 아니라 기본 패턴인 '일부일처'를 유지하면서 시간을 두고 여러 명의 파트너를 바꿀 수 있다.
가까운 예로, 한국 사회에서 세 번의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면서 각각 아버지가 다른 세 자녀를 둔 소설가 공지영을 들 수 있다. 법적으로는 언제나 일부일처였지만 생애 전체를 놓고 보면, 세 번의 결혼과 동거를 반복하면서 사실상 다부다처인 셈이다.
실제로 인류학과 진화인류학 쪽에서는 이에 대해서 연구한 <Serial monogamy as polygyny or polyandry?>라는 논문이 있다.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남녀 모두 이혼과 재혼을 반복하면서 전 생애 동안 여러 배우자를 거쳐 가는 형태의 결혼도 실존한다. 해당 남성에게는 다처적, 해당 여성에게는 다부적 성격을 볼 수 있다.
하지만 학계에서는 이를 ‘다처다부 사회’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법적으로 배우자를 한 명만 인정하고 중혼을 금지하기 때문이다. 세금과 상속, 연금‧양육권 등 모든 규범과 제도가 결혼은 일부일처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부 학자들은 ‘연속 일부일처는 사실상 다부다처 효과를 낸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법적으로 일부일처에다가 실제 짝짓기 혹은 성행위가 이뤄지는 시스템은 느슨한 일처다부에 가깝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표현으로는 가능하지만 학술 용어로는 부적절하다는 입장이다. 동시성과 법적 인정, 그리고 가구 구조가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학자들도 이를 ‘연속 일부일처+높은 이혼과 재혼율+다자 연애와 동거를 동시에 가진 법적인 일부일처 사회’라고 규정하기도 하지만 절대 '다부다처'라고 정의하지는 않는다. 무늬(현실)는 분명 다부다처적 요소가 명확하지만 속(법률)은 절대 다부다처라고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장기 커플, 즉 페어본드(pair bond: 암수 한 쌍)로 진화했고, 동시에 다수 파트너를 원할 수 있는 성적 전략 둘 다 가능한 종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각각의 사회는 환경‧경제‧성비‧전쟁‧재산 구조에 따라 일부일처, 일부다처, 일시적 파트너 교환, 모계나 부계 또는 양계 친족 구조 중에서 자기 조건에 맞는 조합을 선택하면서 적응 살아왔다.
같은 시대라도 환경 조건에 따라 또한 서로 다른 생존 전략이 공존한다. 히말라야 고지대에서는 토지 분할을 막기 위해 일처다부를 선택하고, 사막과 목축사회에서는 부와 권력이 집중되는 일부다처, 일부 어촌과 군사사회에서는 남성 장기 부재 시 임시 다부적 요소, 그리고 현대 산업 도시사회에서는 법적으로 일부일처이지만 비공식 동거와 외도, 성매매, 스와핑이 암암리에 이뤄지는 환경은 생존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트럼프의 사진과 한국에서 암암리에 이뤄지는 비정상적인 성관계는 결국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볼 수 있다. 진화론적으로도 그렇고, 현대사회의 성‧권력‧도덕‧구조적 갈등이 응축된 상징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개인의 일탈 혹은 일부일처제 일탈로만 보기에는 세상은 너무 복잡하고 다층적 구조를 띤다.
굳이 나눠서 해석하자면, 개인적으로는 일부일처 규범을 가진 사회에서 일부 권력자 남성에게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다처적 생활양식의 한 단면일 수 있고, 사회‧정치적으로는 성과 권력‧불평등‧도덕을 둘러싼 현대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노출한 한 장면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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