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독재와의 투쟁이 나를 독재화시켰다!
대통령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해서는 안 된다
[최보식의언론=장성민 국민의힘 안산시갑 조직위원장(전 대통령실 미래전략기획관)]
구소련과 과거 공산독재 국가들에서 나타나고 있는 새로운 통치 유혹이 있다. 그것이 바로 ‘독재의 유혹’이다.
그렇다고 민주국가가 예외는 아니다.
현실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그 결과 과거의 추억이 포만상태에 이르면, 과거를 그리워하는 새로운 시대의 추악한 향수가 독재의 씨앗이 된다. 러시아의 푸틴, 중국의 시진핑, 벨라루스의 루카셴코, 북한의 김정은, 베네수엘라의 마두로, 아프리카와 동남아 등지에서 여전히 독재의 유령은 배회한다.
민주국가에도 반민주적 '역류 현상이 일고 있다. 민주정을 가장한 다수의 폭정에 기반한 억압적 통치 체제가 엄연히 작동한다.
민주적 후발국가군에서는 눈이 휘둥그레질 변화와 혁신의 미명 하에 엄청난 정치보복이 자행된다. 그 정치보복이 몰고 온 찬바람의 결과는 국민의 피눈물로 쌓아 올린 법치와 민주주의를 한순간에 무너뜨린다. 참혹한 비극이다.
이 비극을 초대한 것 역시 독재의 유혹이었다. 초라한 정치적 오판이자 치명적 실수였다. 그래서 대통령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은 역사적 통찰이자 명언이다.
과거로 다시 돌아갈 생각은 없다. 과거에 집착할 여유도 없다. 그것은 곧 현재와 미래를 잃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거는 새로운 소환의 대상이 된다. 과거를 현재와 미래의 지배 수단으로 삼거나, 현재와 미래를 과거의 연장으로 이용하려는 세력 때문이다. 어제의 ‘민주투사’가 바로 그들이다.
어제의 민주투사는 오늘 범죄국가의 주역으로 퇴락했다. 어제의 민주가 오늘의 독재로 전향한 것일까? 우리는 지금 민주와 독재가 혼용된 민주독재, 독재적 민주가 발아된 시간 속에 갇혔다. 적과 싸우면서 적을 배우고 적을 흉내 낸다는 속담이 현실화되었다. 기가 막힐 일이다.
과거 독재와의 투쟁이 나를 독재화시켰다. 과거가 오늘과 내일의 발목을 잡고 있다. 아니, 원래 민주주의에 대한 확신적 가치, 신념, 철학이 체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민주’라는 이름은 권력 추구를 위한 노랫말에 불과했는지도 모른다.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자 그들의 무지가 전방위로 노출된다. 세상을 모른 거리의 낭인이었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들이 바로 독재의 유혹에 빠진 시대의 오판자들이다. 그 오판자들이 권력을 갖기까지의 국정 공백은 크다. 그리고 그 공백을 불안, 공포, 불확실성을 동반한 혼란이 채운다.
바로 이 순간, 과거증후군인 독재 현상이 더 강하게 출현한다. 현실 불만으로 독재의 유혹은 일부 국민에서부터 권력의 욕망자들에게까지 나타난다.
민주국가에서 정부·여당의 실책이 치명적일 경우 그 역풍은 피할 수 없다. 그리고 그에 따른 반사적 이득은 야당이 무위독식한다. 이렇게 주어진 권력으로 야당에서 여당이 된 집권당은 무소불위의 권력 횡포를 부리기 쉬운 또 다른 독재의 유혹에 빠진다.
대중은 일순간 그들의 권력 횡포를 용인한다. 치명적 실수를 한 정당의 오판으로 대중은 정치 무관심의 블랙홀 상태에 빠진다. 이것 또한 독재의 유혹을 키운다.
이처럼 독재의 유혹이 현실이 되는 경우는 대중의 현실 불만, 권력자의 통치 욕망, 집권 세력의 통치 불능, 절제 없는 권력 남용, 대중의 무관심, 경제의 쇠퇴 등이 동시에 발생할 때다. 마침내 독재자가 등장할 정치 환경의 충분조건이 갖춰진다. 마치 땅속 애벌레가 땅 위로 나와 해충으로 성장하는 그 과정과 사뭇 흡사하다.
독재의 유혹에 끌림을 받는 국가들은 크게 세 가지 유형이다.
첫째, 구 공산 독재국가들이다.(민주 빈곤)
둘째, 제3세계의 개발도상국들이다.(경제 빈곤)
셋째, 후발 민주주의 국가들이다.(시민의식 빈곤)
그런데 이 모든 나라들에는 세 가지 공통점이 있다. 완전한 민주주의 국가로의 체제 이행이 공고화되지 못한 국가, 현실적으로 경제적 문제가 많은 국가, 지도자의 권력 욕망이 강한 국가가 그것이다.
독재의 유혹에 빠진 나라들은 과거 독재국가였거나 독재의 통치 역사나 경험을 갖고 있는 나라인 경우가 많지만, 독재국가에서 민주국가로의 체제 전환이 미숙한 나라들도 이에 해당한다.
이는 민주주의 국가로의 체제 이행이 아직 완성되지 않은 나라, 혹은 민주주의 국가로 이행되었다고 평가되지만 지도자의 민주적 리더십의 결여, 정치제도의 결함, 민주적 가치의 미성숙으로 정치적 반동 현상이 속출하며 독재체제로의 역진 현상이 일어나는 나라들이다. 설령 민주주의 국가로 인식된 나라라 하더라도 민주적 리더십이 충분히 학습된 지도자가 아니거나 독특한 캐릭터의 리더가 출현할 경우, 안정된 민주주의는 새로운 재난 상황을 맞는다.
결국 법치와 민주주의의 지배 가치에 기반한 민주주의 체제는 순식간에 밑바닥까지 곤두박질치게 된다. 이런 상황이 발생할 경우, 정치적 자유, 민주주의, 경제적 번영, 사회정의는 동시에 파편화된다. 이런 나라의 경우 독재자의 권력 횡포는 더욱 커진다.
그리고 정치, 경제, 사회의 구석구석에 권력자의 의지, 욕망, 광기, 사술이 위기의 틈바구니를 비집고 들어와 마치 성취와 환희라는 이름의 현학적 수사로 집단을 선전선동한다. 결국 집단이성을 마취시킨다. 그 순간부터 믿었던 사회적 가치, 규범, 도덕, 자유와 민주체제에 대한 배반 현상이 속출하고 사회 전체에 분열, 이기심, 적대심, 극단적 허위의식이 만연한다. 이는 정치 양극화, 경제 양극화, 사회 양극화로 극단화된다.
극단주의가 팽배하게 될 사회정치적 기원은 이렇게 갖춰진다. 결국 양극화된 정치사회는 그 안에 새로운 재앙인 집체적·전제적 정권을 허용하면서 법치와 민주주의를 향한 반동체제를 구축한다. 이로써 자유시장에 기반한 경제, 자유민주에 기반한 정치, 자유사회에 기반한 정의의 가치가 깨지고, 독재의 유혹은 더 성숙해지며 독재자의 권력 횡포는 더 흉포해진다. 문명국가의 새로운 위기는 이렇게 생성된다. 베링턴 무어의 『독재와 민주주의의 사회적 기원』을 펼쳐 들 필요조차도 못 느낀다.
이런 위기적 상황은 누가 키우는가? 이런 독재의 유혹을 키운 원초적 이유는 무엇일까? 정상배들의 나쁜 권력 욕망, 나쁜 정치권력이 키운다. 마치 국민을 향해 새로운 영광을 재현할 것처럼 환상을 심고 국민 사기극을 연출한 나쁜 권력자들이 그 주인공이다.
독재자의 나쁜 권력 의지를 간파하지 못한 시민의식의 결핍도 중요한 요인이다. 무관심과 정치적 문맹 때문에 독재자의 전면적 통제, 권력 횡포를 견제할 수 있는 저항의 축은 사라진다. 이로 인한 민주체제의 작동 불능 상태는 더 큰 국가 위기를 초래하면서 사이비 민주주의자인 독재자의 권력 의지와 충돌한다.
권력 초기의 얼마 동안은 정치적 동원이 시작되면서 마치 독재정치가 성공한 듯한 착시현상에 빠지기도 한다. 집권 세력들은 모두가 집권자인 독재자의 눈치를 살피면서 그로부터 권력의 낙점을 기다린다. 그늘진 곳에 앉아 오물 권력의 낙수를 기다린다.
그 순간부터 이 거대한 정부·여당이라는 권력집단은 독재자와 일체화되면서 집단지성, 집단이성을 잃고, 집단통제, 집단동원의 정치적 수단, 정치적 도구로 전락한다. 자유의지는 상실되면서 국민의 공권력은 새로운 노멘클라투라의 전유물, 사유물로 전락한다. 국민에게 약속한 공적 성취와 환희가 사라진 대신, 국민의 삶을 피폐화시키는 잔혹한 대가만이 돌아온다.
다시금 국민은 독재자 이전의 안정된 민주주의, 안정된 번영, 공정한 기회를 보장하는 자유롭고 정의로운 사회에 대한 향수가 커진다. 이것이 독재자에 대한 새로운 불만이 되며 더 나은 과거에 대한 향수를 소환하며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한다. 체제의 배반으로 현실에 깊은 불안감, 불만감을 키우고 국가를 쇠약시키는 역사에 상처가 되는 민주로 포장된 독재를 다시 타작한다.
민주주의가 정상궤도를 이탈할 경우 국민은 민주주의를 비토한다. 체제 순응도 거부한다. 민주주의 자체가 비토크라시로 전환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비토크라시를 지향하고 지지한다.
나쁜 권력자가 민주주의를 독재자의 권력 수단으로 악용할 때도 국민은 독재자를 비토한다. 국민의 좋은 권력이든 나쁜 권력이든 비토하기 시작할 때는 이미 현실에 대한 불만이 증폭된 상태이다. 이런 상황에서 독재자는 더 많은 위선을 행하며 더 많은 복지의 유혹을 키워 국민을 달래려 노력한다. 하지만 이미 늦은 상황이다.
갈수록 독재자의 거짓말은 노출 빈도가 심해지고 언론과 대중들은 예민한 감각을 갖고 감시하는 관찰자가 된다. 독재자의 말에 감춰진 오락성도 꿰뚫고 비유도 캐치하며 의도한 진상을 번역가처럼 해석해 낸다. 이름하여 진상 폭로다.
그러면서 도덕적 판단도 더 엄격해지며 독재자의 잔혹하고 허위적이며 불공정한 언행에 대한 불만은 더 커진다. 실직과 소득 불만족은 생활의 불만을 키워 현실의 고통은 미래의 기대를 지운다. 이는 광기 어린 정책이 빚어낸 재난의 결과로 받아들여지고 국민의 모든 비판의 말 화살은 독재자로 향한다.
이런 상황이 되면 역사는 또다시 새로운 재앙으로 갈 것인지 더 나은 미래로 갈 것인지 기로에 서게 된다. 독재자의 권력 유혹이 더 커지면 이 권력욕은 더 나은 문명을 꿈꾸는 국민과 정면 충돌한다. 이런 상황이 되면, 매우 빠르게 권력의 숭배자들은 썰물처럼 사라질 것이고, 내부의 새로운 권력자가 독재자를 향해 도전의 칼을 뽑는다. 독재자는 국민과 충돌하면서 동시에 내부의 도전자와 충돌하는 이중의 충돌 상황을 맞게 된다.
내부의 도전자가 결코 독재자의 편이 될 수 없는 것은 민주주의 체제이기 때문이다. 권력의 도전자는 국민 편에 설 것이고 또 서야 한다. 독재자가 무너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민주주의가 독재체제보다 더 무섭다는 말은 여기서 나온 것이다. 국민과 충돌하기 이전에 내부의 도전자는 독재자의 폭력을 무너뜨리는 체제가 민주주의 체제이다.
독재체제의 경우는 이런 도전이 쉽지 않다. 완전히 통제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경쟁체제이기 때문에 도전자에 대한 완벽한 통제란 불가능한 체제이다.
지금부터 이재명 정권의 내홍은 시작될 것이다. 그런 만큼 압제가 심하면 내부 도전도 심할 것이다. 우리는 지금 과거를 잊고 칼춤을 추는 또 한 명의 독재의 유혹에 빠진 정치인을 목격 중이다. 그러면서 또 한 명의 추악한 권력자의 퇴락, 권력집단의 추락, 권력 동업자들의 부패로 인한 국민 혐오감이 언제까지 인내할 수 있을지를 가늠한다.
그와 동시에 독재의 유혹에 빠진 권력 횡포자들에 대한 새로운 심판으로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더 큰 정치혁명을 잉태한다. 이번에는 이 권력의 잉태가 불임이 되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대한민국의 위대한 역사는 어떤 경우에도 독재의 유혹, 독재자의 권력욕을 허락해 본 적이 없다. 지금 이재명 정권의 내란몰이 정치의 대약진 운동이 정치적 대재앙의 길이 될 것이다. 그래서 반대자들의 비판을 묵살하면 안 된다. 다수결의 수의 독재를 갖고 의회 폭정을 주도하면 안 된다. 야당의 비토 행위를 단순히 반대당의 반대 행위로만 인식해서도 안 된다.
이를 못 보는 지도자라면 그의 미래도 불행이다. 그는 민주적 지도자가 아니라 이미 독재자이다. 그래서 그는 지금 불행한 미래로의 행진 중이다. 이재명의 승리가 국가 재난이자 국민 재앙으로 인식되는 국민이 많아지고 있다. 이런 현실이 심화되고 길어지면 현실은 실제로 재난과 재앙으로 변한다.
전과 4범 이재명 대통령의 리더십은 탄핵 속에서도 과반을 넘지 못했다. 여러 재판 리스크를 안고 출범했으며, 이 재판을 재개해야 한다는 국민적 여론도 60%가 넘는다는 말이 나온다. 대통령의 자리는 재판받는 자리이다. 국민으로부터 심판받는 자리이다. 대통령의 자리는 심판하는 자리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권력관이기도 하다.
대통령 민주주의인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의 자리는 사법 리스크와 상관없이 역사적 재판정이었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한다. 대통령의 자리는 내 죄를 덮기 위한 권력 횡포의 자리가 아니라 ‘국민 피고석’이다. 어떤 경우든 독재의 유혹에 빠지면 죗값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자리가 대통령의 자리이다. 대통령이 누리는 권력의 자유는 반드시 의무를 수반하며 책임을 동반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 무서운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재명의 사법 리스크가 대한민국 재난의 원인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지금이라도 그를 포함한 권력집단이 민주라는 탈을 쓴 역사의 왜곡자, 국민이 가장 증오하는 독재자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내란몰이가 모든 것을 정당화해 주고 미래의 권력을 보장하며 법의 지배를 피할 수 있게 해 줄 것이라는 착각은 이제 여기서 멈추길 바란다. 내란몰이를 멈춰 세우지 않고 이 통제 불능의 재앙 버스를 계속 운행한다면 이 운전석에 앉아 있는 이 대통령, 그 버스의 승객인 국민이 어떤 참혹함을 겪게 될 것인지는 안 봐도 비디오다. 내란몰이 재앙 버스를 멈추지 않으면 이것이 재난의 원인, 불행의 씨앗이 될 것이다.
역사의 붉은 태양은 절대로 밤에 뜨지 않는다.
#독재유혹, #내란몰이